도요타자동차는 최근 독특한 디자인의 컴팩트 자동차인 ‘팟소’를 내놓았다.
핸들을 상하로 조절하면 속도계와 액정 디스플레이가 언제든 잘 보이는 위치로 이동하는 ‘컬럼 미터(Column meter)’나, 뒷좌석의 시트 쿠션을 앞쪽으로 밀어서 평평하게 만들어 짐이 발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고안한 ‘롱 쿠션 모드’가 돋보인다. 이들 기능 모두 사용자의 편의성을 강조한 유니버셜 디자인(Universal Design, 이하 UD)을 채택한 것이다.
이 자동차는 도요탄자동차의 UD 전략의 일환으로 탄생했다. 도요타자동차는 환경 다음을 UD로 지목, UD 상품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UD는 연령과 성별, 신체 장애 유무 등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디자인을 일컫는다.
UD를 제품 개발에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동안 제품의 디자인 세련되고 보기에 좋은 것만을 강조했다면, UD는 사용의 편의성과 휴머니즘을 강조한 디자인으로, 일본과 미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채택 바람이 불고 있다. ‘쓰기 쉽고 알기 쉬운’ 디자인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기업들은 젊고 건강하며 판단력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만을 고려해 제품을 디자인했다. 이면에는 세련되고 예쁘게만 내놓으면 팔리겠지하는 생각이 깔려있다. 하지만 기능만을 고려한 복잡한 디자인은 무용지물이 되기 십상이다. 아무리 세련된 디자인으로 사람들의 눈을 유혹하더라도 정작 소비자들이 사용하기 복잡하고 어려우면 제품의 효용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 대안의 하나가 바로 UD다.
특히 일본 기업들은 UD에 기업의 사운을 걸 정도로 적극적이다. 최고경영자(CEO)들은 UD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기업들은 UD를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일본 마쓰시타전기산업은 세탁 드럼을 30도 기울인 전자동 세탁기(모델명 NA-V80)로, 가전업계의 UD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 제품은 기존 세로형 세탁기는 키가 작은 사람이 어린이들이 세탁조의 바닥까지 손이 닿지 않는 문제가 있고, 가로형의 드럼식 세탁기는 좁은 집에서 사용하기 어렵다는 점에 착안, 드럼을 기울이게 된 것이다.
이 제품은 판매가격이 경쟁사의 동급 제품에 비해 비싼데도 불구하고, 높은 인기를 구가중이다. 마쓰시타전기산업 경영층에는 ‘비싸더라도 사용자들에게 명확한 가치를 보여주는 제품은 잘 팔린다`는 의식이 확산됐다. UD가 상품의 부가가치를 올렸기 때문이다. 마쓰시타전기산업은 지난해 출시한 일반 소비자용 제품 238개중 약 16%인 38개 아이템을 UD 제품을 내놓았다.
지난해 일본에서 가장 UD를 잘 활용한 사례로 꼽힌 토토의 욕실제품들도 눈여겨 볼 만하다. 토토가 지난 6월 출시한 ‘레스팔트DX’는 업계 최초의 UD 화장실. 리모콘 하나로 욕실을 완전하게 자동화했다. UD추진본부 도무라 부장은 “종전에는 상품을 직접 눈으로 보고, 써보면 안다는 식의 자세였다. 하지만 UD 도입후 사용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려는 사고방식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은 90년대 중반부터 사회적으로 UD 도입에 대해 적극적이다. 일본에 비해 UD 상품화는 뒤떨어져 있지만, 장애인과 노약자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다양한 아이디어 상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트렌드는 어린이용 제품 등 일반 상품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제품이 트라이포드디자인의 ‘핸디버디’다. 악력(握力)이 없는 사람들도 사용할 수 있는 필기도구. 독일의 UD원회의 조사 결과 초기 파킨슨병 환자들은 핸디버디를 100% 사용할 수 있었다. 이 제품은 미국의 UD어워드를 수상하는 등 전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로 눈을 돌려보자. 한국은 세계 최고의 수준의 정보기기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휴대폰과 MP3플레이어, 디지털TV 등이 이에 해당된다. 세련되고 예쁘다. 하지만 사용이 편리한 디자인가라는 물음에는 의문이 생긴다.
최신 휴대폰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컨버전스(융합)으로 휴대폰 하나에 카메라·TV·MP3·뱅킹 등 복잡하고 어려운 기능들이 모두 들어있다. 사용방법이 그만큼 복잡해졌다. 게다가 각 사별로 사용자인터페이스(UI)도 틀리다. 물론 ‘메이드인코리아’ 휴대폰은 세계 최고 수준의 세련된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매년 세계적인 전신회에서 디자인상을 휩쓸고 있다. 하지만 무언가 부족한 게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국내 제품들은 전반적으로 인간의 감성과 교감하는 디자인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휴대폰·MP3플레이어 등 국내 기업들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제품들은 주고객층이 젊은층이어서 이들을 겨냥한 세련된 디자인이 대세를 이뤘지만, 조만간 시장이 포화되면 노인층으로 수요가 확대돼 새로운 디자인이 요구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성공 사례도 있다. 이건희폰으로 잘 알려진 삼성전자의 SGH-T100 모델은 국내 제품으로는 처음으로 UD를 채택,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휴대폰의 LCD창에 나타나는 글자 크기를 키워 누구나 보기 쉽게 디자인한 것이 주효한 것이다.
고영준 서울산업대 교수는 “국내는 UD 개념의 보급단계로 실제 산업에서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선진화되고 노령화될수록 UD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또 “전세계적으로 고령화가 급격하게 진행됨에 따라 UD의 시장 잠재력이 커지고 있다”며 “국내 기업들의 UD 월드베스트에 하루빨리 도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익종기자@전자신문, ijkim@
*성숙한 사회 이끄는 UD
UD의 개념이 확립된 것은 지난 90년초 미국에서다. 장애를 가진 미국인들을 위한 보호법인 ADA(Americans with Disadilities Act)법이 제정됐다. 식당, 호텔, 미술관, 스포츠 시설 등 공공시설과 서비스를 누구나 차별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법안에 따라 구체적으로 건물이나 시설 제작에 들어가면서 UD가 이론화됐다. 미국에서는 UD의 7가지 원칙이 만들어진다.<표> 당시 영국, 스웨덴, 독일 등 유럽에서도 ‘디자인포올(Design for All)’을 내걸고 디자인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재인식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UD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의 UD의 선두자인 트라이포드디자인의 나카가와 사장은 “인간은 석기시대부터 머릿속의 이미지를 만들어 사회를 형성해왔다”며 “디자인의 사회적 역할을 깨닫는 UD의 원점”이라고 말했다. 이런점에서 UD와 배리어프리(Barrierfree)는 다르다. 배리어프리는 장애(배리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지만, UD는 장애가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사용자의 편의성을 고려한 것이다.
일본의 한 조사에서, 현재 디자인에 불편함이나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87%나 된 것으로 나왔다. 상당수 사람들이 디자인 불편하지만 참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고령화 사회가 급진전되면 소비자들이 디자인의 불편함을 참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장애자, 고령자, 어린이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마인드가 생기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의 귀담아 새겨 들을 대목이다.
[ UD의 7가치 원칙 ]
1. 누구나 공평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2. 사용하는데 자유도가 높을 것
3. 사용법이 간단해서 바로 알 수 있을 것
4. 필요한 정보를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
5. 실수나 위험으로 이어지지 않을 디자인일 것
6. 무리한 자세를 취하지 않고 작은 힘으로 쉽게 사용할 수 있을 것
7. 접근하기 쉬운 공간과 크기가 공간이 확보돼 있을 것
*기고-임영모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유니버설 디자인의 진정한 의미는 특정한 계층을 위한 것이 아닌 사용자의 연령이나 능력에 관계없이 누구나 쉽고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제품과 사용 환경을 설계하는데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소비자의 사용상 불편한 점과 니즈를 파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트렌드와 미적인 요소를 강조했던 지금까지의 제품 디자인과는 달리 유니버설 디자인은 소비자의 사용편의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제품에 대한 반응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이를 디자인에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제로 유니버설 디자인을 활발하게 활용하고 있는 일본기업들은 사용자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이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디자인에 반영하고 있다. 또한 유니버설 디자인 기법을 제품 디자인뿐만 아니라 제품설명서, 포장 등 다른 영역으로 확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제품설명서를 만들 때 유니버설 디자인 기법을 활용하여 우선 요점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정리한 다음 조작 방법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떠올릴 수 있도록 큰 삽화를 많이 사용하고 설명문은 간결하게 작성하면 소비자들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최고경영진의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 단순한 제품 디자인이 아니라 소비자 존중이라는 철학이 전체 직원에 뿌리 내릴 때 유니버설 디자인이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으며, 사회가 발전할수록 노약자나 장애인에 대한 성숙될수록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한 요구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사진:UD를 적용한 다리미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UD의 7가지 원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