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은 전쟁이다. 공격하는 나라와 방어하는 나라의 치열한 다툼이 있는 격전장이다. 나라 경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언제나 무역이다. 그래서 보다 자국에 유리한 쪽으로 전세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WTO, FTA 등 전세계 자유무역을 향한 선진국들의 행보는 계속되고 이를 피하기 위한 개발도상국들의 항변 역시 계속되고 있다. 눈에 보이는 보호무역은 세계 무역의 흐름상 공격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무역장벽을 만들기 위한 선진국들의 치밀한 작전이 소리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에 대두된 무역장벽이 환경규제다.
수출로 먹고 살아온 우리나라로서는 무역장벽이 최대의 난제일 수밖에 없다. 특히 그 동안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전자분야의 환경규제는 우리나라 수출의 목을 겨누는 칼로 등장했다. 일부 대기업에서는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대처하고 있지만 대다수 중소기업에서는 용어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보화시대 가장 중요한 먹거리 정보에 어두운 것이 현실이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유럽을 중심으로 시작된 환경규제는 내년 7월 ‘유해물질사용제한(RoHS)’의 시행으로 거의 전 산업분야, 전 품목에 걸쳐 모두 해당될 전망이다. RoHS는 납, 수은, 카드뮴, 6가크롬, PBB 및 PBDE 등 총 6종의 물질이 포함된 전기·전자제품에 대해서 EU시장에서의 판매가 금지되는 조치다. 적용대상은 대·소형 가정기기, IT 및 통신장비, 소비가전, 조명기기, 전기 및 전자공구, 완구·레저·스포츠용품, 자동판매기 등이다.
RoHS 뿐만 아니다. 전지·전자장비 폐기물처리지침(WEEE), 전기·전자장비 환경성 평가지침(EEE) 등도 수출의 발목을 잡는 환경규제다. 환경규제는 산맥을 이루고 있다. 하나의 산을 넘었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지역별로 수출환경이 다르고 그에 맞춰 제품을 생산해야만 시장에서 유효한 상품이 된다.
기업에 환경규제는 이제 생존의 문제다. 발빠른 일본 기업들은 이미 ‘그린경영’을 선포하고 환경규제를 넘는 묘수찾기에 나섰다. 최근 네덜란드에서 소니의 PS2에 대해 중금속 함유량이 많아 수입금지조치 한 것에 대해 소니는 아예 중금속 ‘0’상품으로 맞불을 놓았다. 더 이상 환경규제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대비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은 아직도 환경규제가 얼마나 치명적인 잘 모르고 있다. 국가청정지원센터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70% 이상이 RoHS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알고 있다는 30% 역시 대부분 용어 정도만 인지하고 있는 수준이어서 실질적으로 RoHS에 대해 대응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이 상태대로라면 내년 7월 EU국가에 대한 전기·전자제품 수출은 아예 포기해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다.
기술표준원 안종일 화학응용표준과장은 “올들어 환경규제에 대해 지방기업의 교육문의가 들어오는 정도로 그 이전에는 중소기업들이 환경규제에 대해 너무 무관심해 왔던 게 사실”이라며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환경규제가 얼마나 무서운 무역장벽인가를 기업에 알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국가청정지원센터 김성덕 전문위원도 “환경규제에 대해 정부기관이 지원하는 일은 분명 한계가 있다”며 “기업들이 앞장서 환경규제 무역장벽을 넘을 기술개발과 대처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경규제는 무역장벽만의 문제가 아니다. 친환경 제품을 선호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고, 친환경 경영을 하는 기업이 대우받는 사회가 되고 있다. 국가가 나서 환경규제를 하지 않아도 소비자 스스로 환경에 대한 인식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21세기 살아남는 기업의 조건 중의 하나가 ‘친환경 경영’이다.
이경우기자@전자신문, kwlee@etnews.co.kr
*국내 현황: 청정생산 `강 건너 불`아니다
청정 생산 및 환경 관련 규제는 이제 국내 업계에도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내년 7월 발효되는 EU의 RoHS 등의 환경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올해부터 생산 공정 및 공정 재료의 친환경화가 마무리돼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 업체들로서도 더 이상 친환경 공정 적용을 늦출 수 없는 시점에 이른 것이다.
이에 따라 관련 업계에서는 올해가 무연·친환경 공정이 본격 적용되는 첫 해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업체들의 준비 상황은 아직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대기업과 대기업 협력 업체들의 경우 비교적 준비가 잘 갖춰진 상태이지만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준비는 커녕 아직 관련 규제의 내용 파악조차 안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삼성·LG 등 대기업은 이미 무연 공정으로 생산된 제품을 일부 선보이고 있으며 올해 12월부터 중금속 함유 부품을 납품받지 않을 계획이다. 그러나 무연 제품의 특성을 기존 제품만큼 끌어올리는 것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중소기업에 대한 청정 생산 기술 지원과 친환경 경영에 대한 홍보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또 납·크롬·할로겐 등 환경 유해 물질을 제거한 공정 재료 및 장비의 개발과 국산화에 나선 업체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친환경 공정으로의 전환을 계기로 공정 장비 및 재료도 친환경 제품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일본 등 해외업체 중심으로 짜여진 기존의 시장 구도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반면 이번에도 외산 제품에 의존하면 핵심 장비·재료의 대외 예속이 더 심해질 것이란 우려가 높다.
에코조인·단양솔텍·청솔화학환경 등은 땜성을 개선한 무연솔더를 개발, 시장 개척에 전력하고 있다. 또 남아전자산업이 무연솔더용 리플로(reflow) 장비를 생산하는 등 친환경 장비 개발에 참여하는 업체들도 늘고 있다.
한편 소니 등 일본 주요 전자업체들도 이미 ‘그린부품’만을 받고 있으며 유럽·미국에서도 설계에서 생산까지 친환경화를 구현하기 위한 각종 도구들이 사용되고 있다.
한세희기자@전자신문, hahn@
*해외 현황: "친환경 생산은 국제적 화두"
제품에 대한 환경 친화성 향상을 위한 노력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미국은 90년대 초부터 산업계·공공단체·대학·연구소 등이 참여한 자발적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통해 친환경 제품 설계 활동을 진행중이며 지금까지 컴퓨터·디스플레이 등 약 13개 제조분야에서 이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다.
일본은 94년부터 경제산업성 지원하에 산업환경관리협회를 중심으로 위원회를 조직, 기업을 위한 생산자 중심으로 기법 개발을 추진해왔다. 2001년에는 QFDE(Quality Function Development for Environment)를 개발해 산업계에 보급하고 있다.
환경과 관련 가장 많은 규제를 두고 있는 유럽연합(EU)은 최종 제품 또는 서비스의 환경친화성에 역점을 두는 제품에 집중하고 있다. 유럽 위원회는 2003년 6월, 제품에 의해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감소하기 위한 전략 방안을 담은 통합제품 정책 최종안을 유럽의회와 이사회에 제출했다.
이 방안에는 자율적 합의와 표준화 유도 이외에 RoHS, WEEE, EuP 등과 같은 강제적 법적 규제도 포함하고 있다. 또 잠재적으로 가장 환경 성과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특정 제품군에 대해 집중 개발하는 방안을 지향한다. 시범 프로젝트를 통해 제품의 제조에서 폐기까지 전 과정 동안 제품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문서화하고 있다.
중국은 전기전자 제품 유해 물질 규제를 EU의 RoHS, WEEE를 근간으로 ‘전자정보제품 생산 관련 오염방지 및 처리규정’을 제정한 상태다.
우리 나라는 통합제품정책과 관련한 연구는 아직 일반적 원칙이나 가이드라인을 정립하고 있는 단계다. 산자부에서는 각종 조사와 휴대폰·냉장고 조립에 대한 환경친화적 설계기법과 교육을 지원하고 있으며 환경부에서는 에코디자인 일반지침서 및 소프트웨어 개발, 교육 매뉴얼 작업을 추진중이다. 환경마크제도·환경성적표지제도 등도 시행하고 있다.
김승규기자@전자신문, seung@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EU의 제품 중심 환경 규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