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개방형 혁신: 독불장군식 R&D 이젠 안통한다
국내 IT업계에 체스와 포커게임의 차이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던져졌다.
두 가지 모두 승부를 내는 게임이라는 점에서 별 차이가 없고, 더욱이 이것을 국내 IT기술과 연계해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 없다고 단정한다면 오산이다.
이런 사례도 있다.
인텔이 IBM PC에 장착될 8088마이크로프로세서 디자인 공모에 당첨됐을 때, 인텔은 우선순위 50에도 못 들었다. 또 IBM은 현재 인터넷 서비스 전략의 핵심이 된 SW프로젝트를 처음에는 포기하려고 했다. 화이자(Pfizer)에서 고혈압 치료제로 개발 중인 화합물 UK-92480은 긍정적 실험결과를 얻지 못했지만 이 물질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큰 이윤을 내는 비아그라의 근원이 됐다.
체스와 포커게임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불확실성이라는 점이다. 체스게임에서는 몇 단계 앞을 내다보고 계획을 세울 수 있다. 또 자신의 자원이 명백히 드러나며 동시에 경쟁자의 자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포커게임은 새로운 정보의 도착에 따라 이에 적응해야 하며 또 그 때마다 적용해야 하는 기술이 있다. 결국 두 게임에 상당한 차이를 부여하는데, 이는 불확실성이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최근 국내 IT기업들은 주력분야에 성장한계를 느끼며 시급히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해야 하는 필요성이 절박해졌다. 기업이 연구개발(R&D)을 통해 새로운 성장엔진을 발굴하고 이를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방법론적 이슈를 시급히 찾아야 하는 과제를 떠 안은 시점이다.
그러나 미래의 새로운 성장엔진이 될 신사업에 대한 R&D는 우리 기업들이 기존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추진하던 방식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크게 달라졌다는 게 문제다. 시장은 더 이상 각자의 자원과 수를 미리 보고 있던 과거의 체스판이 아니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정보와 불확실성이 판을 치는 포커게임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개방형혁신(Open Innovation)’이다. 이 개념은 특히 위험성이 높은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 분야의 전략을 제시한다.
그동안 회사 내부에서 이뤄지는 기술개발 R&D는 전략적 자산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주요자원과 장기계약 연구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대기업만이 이 분야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다. 연구개발에 중점을 뒀던 듀퐁·IBM·GE·AT&T와 같은 회사들은 각자의 산업에서 R&D에 가장 많은 투자를 했다. 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연구개발에 투자를 해온 이 업체들은 시장에서 성공에 이르는 기간이 매우 길어지는 경험을 했다. 또 긴 의사결정 과정에서 수많은 성과들이 사장되거나 다른 기업들에게 넘어가는 사태도 직면하게 됐다.
이들은 소위 ‘폐쇄형 혁신(Closed Innovation)’을 따르던 회사들로, 스스로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그것을 개발해 마케팅에 이르는 모든 업무를 스스로 해결하려 했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기업들에게 대단히 독립적이어야 할 것을 주문했고 이는 포커판과 같은 시장에서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됐다.
반면 새롭게 등장한 기업들은 스스로의 기초연구기술 없이 기존 기업들을 따라잡았다. 인텔·마이크로소프트·선·오라클·시스코 등과 같은 회사들은 다른 회사들이 개발한 연구기술로 혁신적 성공을 거뒀다. 이들이 구사하는 전략이 바로 개방형혁신이다. 이 개념은 기업이 내부의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외부의 아이디어도 이용한다. 또 내부의 아이디어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기 위해서 외부의 채널을 통해 시장으로 이동될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이같은 바람은 국내에서도 불기 시작해 LG화학에서 개방형혁신의 일환인 기술아웃소싱에 대한 비중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있다. 특히 LG화학은 자체 기술연구소에 근무하는 연구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 신기술확보와 경쟁사 동향파악을 위한 활동으로 아웃소싱을 가장 많이 꼽았다는 응답을 얻기도 했다.
앞으로 국내 기업들의 가져가야 할 신 성장에 전략적 수단은 과거의 것과는 매우 다른 양상을 띄며 이를 추진하기 위한 방법도 이전과를 달라져야 한다. 여기에는 M&A, 공동개발, 자체개발, 라이선싱, 컨소시엄, 자본참여 등 다양한 형태의 방식이 필요하게 됐다.
이제 기업 R&D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개방형혁신(Open Innovation)’이 자리잡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윤대원기자@전자신문, 1972@
*인터뷰: 백인형 한국IDC 상무
“개방형 혁신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자신만의 플랫폼을 가진 토대 위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백인형 한국IDC상무는 화두가 되는 개방형 혁신을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자신만의 특화된 플랫폼을 가지지 않으면 이는 폐쇄형 혁신만도 못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우선 국내 IT기술 분야에 개방형 혁신은 대세임을 전제한다.
“시장의 요구가 다양해지는 데 이것은 사용자들이 특정벤더에 대한 기술 의존도를 낮추고 값싼 서비스와 제품을 요구하는 것으로 집약됩니다. 또 다른 하나는 운영과 가격에 있어서 효율성으로 이용자 입장에서 특정솔루션을 도입할 때 투자대비 효용을 중시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과거 IT시장은 벤더가 특정기술과 솔루션을 주도했지만 이제는 사용자가 원하는 시장으로 변모하는 시대로 전환됐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기업의 시스템도 이 같은 추세를 반영하는 개방형으로 전환하는 것이 요구된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개방형 흐름에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있음을 그는 지목한다.
“개방이라는 것은 결국 IT흐름의 대세지만 결코 액면 그대로의 모든 개방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핵심기술은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그는 국내 업체들의 해외공장이전을 든다.
“개방형 혁신이라는 개념 하에서 상당수의 기술과 노하우는 외부에서 들어올 수 있고 안에서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국내 기업이 생산기지를 중국으로 갔을 경우를 생각하면 상황이 다릅니다. 제조업 기술도 노하우라고 봤을 때 현지에서 상당부분의 제조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점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삼성전자의 경우 반도체와 휴대폰과 같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방형혁신을 대폭 수용하기가 힘든 것도 이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거시적 관점에서의 개방형혁신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기업은 결국 경쟁업체가 넘볼 수 없는 자신만의 핵심기술은 품고 가야 한다는 상반되는 면이 있습니다.”
특히 수출이 기업생존에 막대한 역을 하는 국내 업체들의 경우 해외시장에서의 개방은 적지 않은 심사숙고를 필요로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는 또 아웃소싱 등을 비롯한 개방형 혁신을 추진함에 있어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시스템이 필요한데 이것은 기술·법률·사업 세 가지 부분에서 핵심역량을 갖춘 전문인력 육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그는 “사업부문의 합의에 의한 전사 차원의 강력한 의지가 없으면 R&D부문반의 주도로는 개방형혁신은 쉽게 추진되지 않는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기고:개방형 혁신 왜 필요한가-박성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sbpark@seri.org
개방형혁신(Open Innovation)은 기술혁신을 통해 신시장을 개척하고자하는 기업에게 새로운 혁신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내부의 연구주체들뿐만 아니라 외부로부터 새로운 아이디어를 확보하고 기업내부의 사업부서와 마케팅부서 외에 다른 기업들을 통해 아이디어나 신기술을 상업화함으로써 혁신속도를 가속화하고 지적자산의 활용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이해되고 있다.
최근 들어 개방형혁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데,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지식이 더 이상 어느 한 기업에 독점될 수 없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제록스PARC나 벨연구소 등 대규모 연구소에 재능 있는 인재들이 한자리에 모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교류하고 재창조함으로써 해당 분야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재능 있는 연구자들이 급격하게 증가했고 인재 풀이 전 세계적으로 넓게 퍼짐으로써 혁신적인 아이디어나 신기술의 상업화를 어느 한 기업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둘째, 사업화에 따른 위험이 어느 한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술의 융합화 및 시장의 불확실성 증가로 신기술의 활용가능성을 미리 예측하거나 테스트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벤처기업과 벤처 캐피털의 활성화로 언제 어디서 동일하거나 유사한 기술이 시장에 도입되고 성공을 거둘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개방형혁신을 추구하는 기업들은 아이디어나 신기술의 창조 능력보다는 기업에 맞는 기술 또는 연구자를 찾고 연결하는 능력을 중시한다. 이들은 소속기관과 지역에 상관없이 폭넓은 지식과 인력 교류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으며 기술의 소유보다는 남보다 먼저 접근할 수 있는가를 중시하고 있다. 그리고 내부 연구자들에게 내부나 외부에 무관하게 개발된 기술을 소화·흡수하고 보다 진보된 아키텍처를 구성해 상업화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주요 대기업들이 아이디어 확보, 기술개발과 사업화과정을 기업내부 통제 하에서 수행하는 혁신 관행을 고수하고 있다. 전반적인 벤처생태계가 미숙한 상황으로 개방형혁신 시스템의 본격적인 도입은 아직 시기상조일지는 모른다.
특히 사실상 완성되지 않은 기술을 자신의 핵심기술과 접목해 완성하고 이를 토대로 사업을 추진하는 형식은 아직까지 많은 우리나라 기업들에게는 생소한 일이다.
그러나 국내에는 80%이상의 이공계 박사들을 보유한 대학과 출연연구기관의 연구 인력이 생산하는 수많은 아이디어와 지적자산이 있다. 현재 국내 IT업체들이 이들 연구기관, 대학과 산학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이 같은 작업도 일부 대기업에 국한된 것이 대부분이다.
개방형 혁신은 이 같은 고부가가치 자산에 대한 활용도를 제고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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