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훈, 그가 돌아왔다.
‘드로이얀’ ‘열혈강호’로 90년대 후반 국산 RPG 전성기를 이끌었던 KRG소프트의 수장 박지훈(37) 사장. 하지만 한 동안 게임업계에서 그의 이름은 잊혀져 있었다. PC 패키지 게임 ‘열혈강호’를 내놓은 이후 이렇다할 실적을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간 박 사장은 와신상담하는 자세로 세월을 보내야 했다. 전성기 70여명을 넘던 KRG소프트의 식구들이 2002년 초에는 7명으로 까지 축소해야 하는 좌절을 맛봤다. 야심차게 준비해온 ‘열혈강호 온라인’ 프로젝트도 개발비가 없어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초심으로 돌아선 그는 2년 6개월의 사투 끝에 ‘열혈강호 온라인’을 완성해 다시 돌아왔다.
공교롭게도 블리자드의 대작 온라인 게임인 ‘월드오브워크래프트’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시기에 그는 게임을 내놓았다. 무모하다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컴백은 오랜 기간 다져온 재기의 칼날 만큼이나 날카롭고 예리했다.
서비스 개시 두달여 만에 동시접속자 7만명을 돌파하며 ‘열혈강호’ 신드롬을 불러오고 있다. 당연히 잊혀졌던 그의 이름 석자도 다시 게임업계의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인기 비결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기본에 충실하려 했다”는 간단한 대답을 던진 그는 “2005년은 대한민국이 ‘열혈강호’에 열광하는 한 해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영화에서 게임으로 눈돌리다
박 사장의 어린 시절 꿈은 영화감독이었다. 감독이 되기 위해 그는 어린 시절부터 연극배우, TV 탤런트 등으로 활동하며 꿈을 키웠다. 하지만 연예계를 안좋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집안 사람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감독이 되고자 했던 그의 계획은 좌초되고 말았다.
게임과의 인연 때문이었을까. 마음을 잡지 못해 방황하던 그는 손노리에서 개발한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라는 게임을 접한 후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게임도 한 편의 영화 이상가는 깊이와 작품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찾아낸 것. 이렇게 게임과 인연을 맺은 박 사장은 LG게임스쿨에서 만난 5명의 교육 동기생들과 의기투합해 지난 96년 꾸러기소프트라는 아마추어팀을 만들면서 게임 시장에 첫 걸음을 내딛는다.
처녀작인 RPG ‘드로이얀’이 완성될 무렵에는 이름을 KRG소프트로 바꾸고 개인사업자로 등록한다. 그의 처녀작 ‘드로이얀’은 기대 이상의 대박을 터뜨렸다. 97년 영국에서 열린 ECTS 전시회에 출품해 호평을 받은 후 미국, 유럽, 동남아시아 등지의 13개국에 수출, 35만달러가 넘는 매출을 올렸다. 당시 우리 나라는 IMF 한파로 중견기업들마저 줄줄이 도산하는 위기였지만 박 사장은 800원대에 계약맺은 환율이 1600원까지 치솟으며 과외 소득까지 올렸다.
“게임을 좋아하는 열정만으로 덤벼들었는데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고 할 수 있죠. ‘드로이얀’의 성공으로 국민의 정부가 선정하는 신지식인으로 뽑히는가 하면 각종 대중매체에서 국내 대표 개발자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큰 성공을 이뤘다는 자만심에도 빠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 질곡의 시간
‘드로이얀’의 성공으로 급부상한 박 사장은 이후 ‘드로이얀 넥스트’ ‘드로이얀 2’ ‘열혈강호 모바일’ 등을 내놓으며 중견 개발사로 발돋움한다.
하지만 호사다마란 말이 있듯 그에게도 위기가 닥쳐왔다. 잇따른 성공에 자신감을 얻은 박 사장은 회사 인원을 70여 명으로 늘리는 등 다소 ‘방만한’ 운영을 펼쳤다. 야심차게 내놓은 PC 패키지 게임 ‘열혈강호’는 국내에서만 5만장이 팔리는 호성적을 올렸지만 KRG 소프트에는 엄청난 적자를 남겼다. 이 게임을 개발하는데 7억원 이상이 소요됐지만 판매 매출은 5억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열혈강호’를 즐긴 유저가 수십만명에 달했다는 점에서 국내에 만연한 불법카피가 KRG소프트 위기의 단초였다.
위기를 직감한 박 사장은 온라인 전환을 선택한다. 자신의 출세작인 ‘드로이얀’을 온라인으로 컨버젼해 새로운 비전을 모색하겠다는 것. 하지만 ‘드로이얀’의 실적도 기대에 못미치면서 KRG소프트는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개발 기간이 늘어나면서 제작비는 엄청나게 투자됐지만 수익은 기대이하였기 때문이다. 부채가 30억원까지 늘어났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를 감당할 수 없어 결국 2002년 말에는 70명에 달하던 직원을 7명으로 줄이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실시해야 했다.
“어려운 시절을 겪으면서 개발자가 사업을 운영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알게됐습니다. 회사를 처음 설립할 때만 해도 재무재표를 제대로 살필 줄도 몰랐으니까요. 또 초기 성공에 너무 도취된 나머지 미래를 차근차근 준비하는 노력도 부족했던 것 같네요.”
# 쉽고 재미있는 게임 ‘열혈강호 온라인’
뼈아픈 구조조정 후 6개월 가량 회사 부채 정리에 주력한 박 사장은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재기를 준비했다. 준비되지 않은 성공이나 영예가 얼마나 쉽게 허물어지는지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가 지난해 11월 내놓은 ‘열혈강호 온라인’은 장장 2년 6개월 간에 걸쳐 개발된 작품이다. 중간중간 개발비 문제로 중단됐던 시간까지 합치면 더 긴 시간이 투자됐다. 하지만 박 사장은 서두르거나 재촉하지 않았다. 대신 ‘게임은 쉽고 재미있어야 한다’는 그의 지론에 맞는 ‘기본에 충실한’ 게임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열혈강호 온라인’의 캐릭터를 5등신으로 제작한 것도 이같은 배경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5등신 캐릭터는 동작이 작아 무협의 액션감을 살리기 어렵다는 지적도 내놓았다.
하지만 남자들의 전유물인 무협을 여성 유저로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던 박 사장은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과감하게 5등신 캐릭터를 선택했다. 또 온라인게임을 해보지 않은 사람도 금세 배울 수 있을 정도로 게임 난이도를 쉽게 구성했다.
게임 곳곳에 코믹 요소를 배치해 어려운 무협의 무게감도 줄였다. 이런 전략이 주효해 현재 ‘열혈강호 온라인’의 전체 유저 중 30% 이상을 여성이 차지할 만큼 성별 구분없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아무리 그래픽이 화려하고 다양한 게임 요소를 채택했다고 해도 기본적인 게임성을 구현하지 못하면 유저들의 동기를 유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죠. ‘열혈강호 온라인’이 인기를 끄는 것도 ‘쉽고 재미있다’는 기본적인 게임성을 잘 구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영화 같은 게임, 게임 같은 영화
어린 시절부터 영화 감독을 동경해온 박 사장은 아직도 그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반드시 콘솔게임과 영화를 직접 만들어 볼 계획입니다. 누가 투자할 사람이 없을 테니 그전에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과제가 있기는 하겠지만…”
조심스럽게 각오를 다지고 있다는 박 사장은 ‘열혈강호 온라인’도 단순한 MMORPG가 아니라 한편의 영화작품으로 발전시켜나갈 계획이라고 밝힌다.
우선 3월에는 궁수 캐릭터를 새롭게 추가해 클래스를 다양화하는 한편 원작 만화의 스토리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원작 퀘스트도 대규모 추가할 예정이다. 게임을 통해 만화나 영화를 체험하는 듯한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전략. 그의 욕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게임 내에 낚시, 장기, 봄버맨, 레이싱, 타자 등 다양한 미니게임게임을 추가하는 것을 비롯해 미니 홈피, 메신저 등과도 게임이 연동될 수 있도록 서비스할 방침이다. 한마디로 ‘열혈강호 온라인’을 하나의 게임 테마파크로 연출한다는 계획.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열혈강호’를 소재로 한 드라마, 캐릭터 상품 등도 올 해 안에 내놓아 원소스멀티 유즈 전략을 완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을유년을 대한민국이 ‘열혈강호’에 열광할 수 있는 한 해로 만들고자 합니다. 기존의 만화, 게임 뿐만 아니라 드라마, 캐릭터 상품 등으로 확대해 유저들이 마음 껏 즐길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할 계획입니다.”97년 KRG소프트 창립
97년 PC게임 ‘드로이얀’ 출시
98년 신지식인 선정
2001년 PC게임 ‘열혈강호’ 출시
2001년 ‘드로이얀 온라인’ 서비스
2004년 ‘열혈강호 온라인’ 서비스
<김태훈기자 김태훈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