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가전 대 이동통신사업자의 휴대용 정보기기 시장을 둘러싼 패권 다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정보기기에서 시작된 통·융합의 열풍은 바야흐로 유통구조의 변혁까지 일으키고 있다. 컨버전스는 기기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과 사람의 문제로 확대됐다. 이른바 시스템화됐다는 말이다. 컨버전스의 시스템화라는 것은 이미 디지털시대에 물질적·정신적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며 상호작용을 하는 유기적 단계에 진입했음을 일컫는다.
◇다양한 정보가전 단말, ‘미래가 있다’=정보가전기업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우량기업이다. SK텔레콤·KTF·LG텔레콤 또한 알짜배기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이 유통구조 주도권 다툼에 뛰어든 이유는 기업의 3, 4년 앞을 보장할 수 있는 텃밭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추세대로 컨버전스가 진행된다면 불과 수년 내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복합 정보기기가 쏟아지게 될 것이다. 유통구조 장악은 이러한 컨버전스 제품에 대한 마케팅 주도권을 누가 장악하느냐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앞다투어 대리점 대형화와 정보기기 사업부문을 강화하는 것은 외형적으로는 전자제품 유통 전문점에 대항하자는 차원에서 진행된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 부분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전초전에 불과하다. 하이마트, 전자랜드21가 점유하고 있는 시장보다 더 큰 모바일 정보기기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모바일 단말기 판매 매출은 삼성전자와 LG전자 매출의 30%를 넘어설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위성DMB, 텔레매틱스, PDA, 웨어러블 컴퓨터 등이 대중화된다면 그 시장은 천문학적인 액수로 증가한다. 유통시장 패권다툼은 이러한 가능성에 대한 전초전이다.
◇규모싸움 벌어질 것=“3년 후 재미있어 질 겁니다.” 한 정보가전업체 마케팅 간부의 말이다. 이 말에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야심이 숨어있다.
이동통신대리점 제도는 유통구조상 통신서비스 가입이라는 특수한 환경이 만들어낸 유통구조다. 93년 형성되기 시작한 이러한 유통구조는 무선호출, 이동전화 서비스 사업이 시행되면서 정형화됐다. 이동통신대리점 제도가 정착되면서 국내 최대의 정보가전기업인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이동통신단말기를 통신사업자에게 ‘굽신거리며’ 납품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통신단말기에 일련번호를 받아야하는 독특한 특성 때문에 서비스사업자 중심의 유통구조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은 컨버전스를 만나면서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동통신사업자들은 휴대폰과 삐삐 등 이동통신단말기와 경쟁하는 시대가 아니라 MP3플레이어, PDA, 위성DMA 등 다양한 컨버전스 단말기와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번호이동성제도가 보편화하면서 그간 특정 서비스 사업자 식별번호도 그다지 필요없게 됐다. ‘어떤 브랜드, 어떤 종류의 단말이 있느냐’ 하는 소비자 선택권이 넓어지고 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통신서비스 네트워크는 필요하지만 구속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 점이 가전업체의 전략적 포인트. 정보가전업체들은 이 포인트를 노려 유통라인 대형화와 마케팅 조직의 유연화를 시도하고 있다. 큰 규모에 다양한 복합 정보단말기를 구비해 소형점 중심의 이동통신 대리점 체계를 무너뜨린다는 전략이다.
통신사업자 역시 기존 대리점 대형화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합멀티미디어서비스 사업자로의 진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제조업체를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시킨다는 것이 목표다. 여기에 대리점을 대형점으로 개편, 체질 개선해 다양한 통방 융합시대에 대비한 통신서비스를 즐기는 문화적 공간으로 배치한다는 세부 계획도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정보가전대리점 대형화에 대응하기에는 아직 규모 면에서 너무 왜소하다. 삼성전자·LG전자가 ‘3년 후 재미있어 질 것’이라는 말은 그래서 ‘위험하고’ 파괴력이 넘치는 수사법이다.
김상룡기자@전자신문, sr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