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코리아의 주역, 초고속인터넷 신화가 풍전 등화에 놓였다. 보급률 77%, 이용자 3100여만명이란 외형에도 불구하고 성장 둔화와 가입자 쟁탈을 위한 과도한 마케팅비에 속이 썩어들어가고 있는 것. 최고의 가입자 기반을 바탕으로 품질경쟁을 통해 선도기술을 개발하고 재투자와 후방산업 육성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가치사슬’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극에 달한 초고속인터넷 시장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미래지향적 시장구조를 만들기 위한 정책 방향을 모색해본다. <편집자주>
“해당 지역사업자에 해지하고 경쟁사로 옮기겠다고 전화 한번 해보세요. 당장 LCD모니터 갖고 뛰어올 걸요.”(SO관계자)
“10개월 무료, 좋아서 하는 거 아닙니다. 여행권 등 현금이 동원되는 각종 경품보다는 그나마 덜 부담스러워서죠. 결국 제살깎는 짓입니다.”(유선통신사업자 관계자)
초고속인터넷 시장이 다시 혼탁해지고 있다. 작년 초만 하더라도 서비스 기반 경쟁, 트리플플레이서비스(TPS)와 부가상품 개발을 통한 가입자당매출(ARPU) 확대 등 선진국형 비즈니스 모델을 내세웠지만 어느새 ‘공짜’마케팅이 판을 치고 있다.
수십만원에 달하는 PC모니터와 여행권이 경품으로 등장하는가 하면 케이블 방송을 공짜로 제공하는 인터넷서비스도 허다하다. 아예 1년에 가까운 이용료를 파격적으로 깎아준다.
진앙지는 주로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들이 공략을 시작한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 지역이다. 여긴 통신사업자인 KT와 하나로텔레콤의 기존 텃밭이다. 경쟁사 가입자들을 뺏어오기 위해 치받는 상황이 연출되다 보니 소비자들이 역이용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KT의 한 수도권 지사에서 영업을 담당하는 L모씨는 “가입자들로부터 먼저 전화가 옵니다. 해지해 달라면서 경쟁사의 경품 목록을 대죠. 그러면서 그대로 남을테니 상응하는 경품을 달라고 하죠. 이쯤 되면 담당자로서도 어쩔 수 없는 거 아닙니까?”
문제는 초고속인터넷 시장의 51%를 차지하는 KT가 움직이면서 혼란이 더욱 가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유야 SO의 공략에 대응해 가입자들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최대 통신사업자가 움직이니 그 여파가 이만저만 아니다.
불똥은 하나로텔레콤과 두루넷으로 튀었다. 지난 1월 한 달간 KT의 가입자는 1만명이 늘었다. 초고속인터넷 사업에 새로 시동을 건 데이콤도 1만여명의 순증가입자를 확보했다. SO들은 한달 새 2만1000여명이 늘었다. 반면 하나로텔레콤은 2만여명, 두루넷은 5000여명의 가입자가 빠져 나갔다.
이 현상은 단지 1월뿐만이 아니다. 최근 4개월간 KT의 가입자는 5만여명이 늘었고 SO 가입자는 3만2000여명이 증가했다. 반면, 하나로텔레콤은 5만5000여명이 빠져나갔다.
KT와 SO 간의 전쟁에 하나로의 등이 터진 셈이다.하나로텔레콤 측은 “SO들이 움직이면서 KT가 대응에 나선 작년 4분기부터 시장이 극도로 혼란스러워졌다”면서 “관련 자료들을 모아 통신위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이제 초고속인터넷 시장도 이동통신 시장처럼 제소와 맞제소의 악순환이 시작될 모양이다.
정지연기자@전자신문, jyjung@
초고속 시장 이대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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