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속인터넷 시장의 왜곡된 경쟁 구조는 건전한 재투자까지 가로막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KT로서는 시장점유율이 51%에 달하는 사실상 지배적 사업자인만큼 기존 가입자만 유지하면 되므로 별다른 투자를 하지 않아도 크게 수익성이 나빠질 게 없다. 반면 규모의 경제를 갖추지 못한 후발사업자들은 가입자가 늘어나지 않으면 수익성이 개선될 리 만무하다. 가입자를 늘리려다 보니 무리해서라도 매출에 비해 더 많은 투자와 마케팅 비용을 투입해야 했다. KT는 이들 후발사업자에 대응하기 위해 마케팅 비용을 쏟아붓는다.
이 같은 악순환 구조는 또 다른 부메랑으로 되돌아 온다. 후발사업자들이 이러한 ‘빈곤의 악순환’에 빠져있다 보니 KT가 굳이 앞서서 투자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적당한 마케팅 비용을 들여 가입자 방어만 하면 되지, 대대적인 품질 개선이나 차세대 광대역통합망(BcN) 구축 투자를 선도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최근 KT의 투자 흐름을 보면 이 같은 현상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KT의 설비투자는 2000년 3조5000억원을 정점으로 지난해 1조8000억원대에 이르기까지 매년 급감해 왔다. 그림 참조
대다수 투자가 유선사업의 전달망과 액세스망에 투입되는 것을 감안한다면 초고속인터넷 투자 역시 급감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올해 KT는 2조2000억원의 설비투자 중 43%를 초고속인터넷과 코넷망, 전용망 등에 투입한다. 초고속인터넷은 그 중 일부분이므로 투자비가 2000억∼3000억원도 안 될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VDSL 보급 확산을 통해 올해 초고속인터넷 부문 순증가입자 35만명을 확보할 계획인 KT로선 이 투자비 상당액을 가입자 모뎀 구입 등에 쓸 공산이 크다. 품질을 높이는 것보다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 주로 투자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KT가 올해 주주들에게 환원할 배당금 규모는 60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당기순이익 1조2000억원의 절반이 주주들에게 돌아간다.
KT측은“민영기업인 이상 수익성 위주로 투자 전략을 짤 수 밖에 없지 않겠냐”며 “되려 외국인 주주들은 매출대비 설비투자를 글로벌 통신기업 수준(15%대)으로 낮추라해 곤혹스럽다”고 설명했다.
이는 가입자를 유지하는 마케팅비와 주주 환원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초고속인터넷을 통해 거둔 수익의 상당액을 품질 개선 등 재투자에 써야 한다는 게 KT 외부의 시각이다.
KT는 유선에 비해 무선은 규제 형평성이 맞지 않다며, 무선사업자가 투자엔 뒷전이고 마케팅에만 집중한다고 곧잘 비판했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의 화살이 이젠 KT를 향하고 있다.
정지연기자@전자신문, jyjung@
*`빈곤의 악순환` 후발사업자 "수익불안 투자 꿈도 못꾼다"
“투자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초고속인터넷 시장 수익이 불확실해 투자자를 설득할 수 없다.”
하나로텔레콤, 데이콤 등 후발 초고속인터넷 사업자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기술 및 가격 경쟁의 근원적 한계로 KT에 대해 더는 전선 형성이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제는 SO에 비해서도 투자 여력이 떨어진다는 게 안팎의 진단이다.
KT, 하나로텔레콤, 데이콤 등 유선 3사의 수익률과 투자를 비교해 보면 후발 유선사업자의 투자력이 얼마나 빈곤한지를 알 수 있다. KT는 지난 4년간 평균 1조2842억원의 당기순이익을, 하나로텔레콤과 데이콤은 1305억원, 629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각각 기록했다. 투자 여력이 사실상 없다시피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로텔레콤은 올해 약 3000억원 규모를 투자할 계획이다. 데이콤은 1125억원을 책정했다.
2003년에 비해 투자를 대폭 줄여 각각 2834억원과 771억원을 투자한 지난해와 비교해 올해는 투자를 늘릴 셈이다.
하지만 순수 초고속인터넷 투자에만 2000억∼3000억원을 투자할 KT와는 경쟁이 안 된다. KT도 투자규모를 예년에 비해 축소한 한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후발사업자들은 광대역통합망(BcN) 등 대규모 망 투자에는 손도 못 댄다. 대부분 기존 설비 유지보수 및 신규가입자 유치에 투자를 집중할 계획이다.
물론 후발 유선사업자들이 실제로 투자할 생각도 많지 않으면서 수익성을 핑계댄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후발사업자들은 “자금만 충분하면 차세대 망이야 말로 누군들 투자하고 싶지 않겠느냐”고 되묻는다.
데이콤 관계자는 “BcN 시대에는 후발사업자의 부실을 낳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네트워크 역량과 가입자를 수직적으로 결합하는 구도로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경쟁력 있는 후발사업자의 육성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손재권기자@전자신문, gj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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