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초고속인터넷 시장에도 정부의 적절한 규제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와 중계유선사업자(RO)들이 통신과 방송을 묶어 1만원대 초반의 덤핑 판매를 감행하는 상황이 벌어져도, 사실상 시장 지배적 사업자인 KT가 시내전화 등 지배력이 전이될 수 있는 타 서비스와 한데 엮어 영업을 해도 정부는 손을 놓았기 때문이다.
초고속인터넷은 국민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기본 인프라다. 국민 편익 차원에서 정부가 규제해야 할 게 있다면 나서야 한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전기통신사업법 및 관련 부칙 개정으로 초고속인터넷을 기간통신 역무에 편입시켰다. 또 올 4월에는 기간통신 역무 전분야에 걸쳐 지난해 시장흐름을 분석해 지배적 사업자를 선정한다.
해당 역무에 시장 지배적 사업자를 선정하면 요금 등의 약관을 정부가 인가하고 적절한 규제로 시장집중을 방지해 공정경쟁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불공정 행위가 발생하면 지배적 사업자는 가중처벌을 받는다.
초고속인터넷 시장에서 KT의 압도적인 시장지배력은 이미 드러났다. KT는 시내전화 등 국내 기간통신의 상당수 가입자 설비를 보유했다. 최근 발생한 KT 유선전화 불통 사태에서 보듯, 112·119 등 특수전화까지 운용하는 지위를 부여받았다. 이는 KT가 민영화 이전에 국민의 세금과 전화 요금으로 구축한 인프라다. 아무리 민영화했다지만 보편적 서비스 외의 공공 의무가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다.
후발 유선사업자들은 “경쟁제한적 요소가 너무 많다”고 볼멘소리다. 기존 필수설비를 보유한 KT의 원가경쟁력도 따라갈 수 없고 가입자선로공동활용제(LLU)도 제대로 운용되지 않는다. 원폰·홈엔 등 다양한 결합서비스를 제공하는 능력도 부족하다는 것. 지배력이 전이가 곳곳에서 일어난다는 설명이다.
초고속인터넷이 그렇다. 99년 두루넷과 하나로텔레콤이 각각 케이블방식과 ADSL방식으로 시장을 먼저 개척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KT가 기존 가입자망 설비를 활용해 1년 만에 시장의 절반을 장악해 버렸다.
가격경쟁도 한계가 있다. 통신산업은 선발 사업자일수록 원가수준이 낮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후발주자는 상대적으로 투자비도 많이 들며 가입자를 뺏어오려면 요금도 낮춰야 한다. 수익성이 제고될 리 만무하다.
정통부는 시외전화에 경쟁체제를 도입할 당시 KT에 시내전화 영업을 함께 하지 말라고 규제했다. 이 같은 규제를 초고속인터넷 역무에도 적용하려면 지배적 사업자 선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KT는 “SO와 RO에 대한 규제 없이는 시장을 안정화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시장혼탁의 ‘주범’에 대한 규제가 없이 통신사업자들의 발목만 잡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후발사업자들도 이에 공감한다.
어느 정도 설득력은 있지만 KT에 대한 규제 없이 추진하면 형평성 시비를 낳을 수밖에 없다.
최소의 규제로 시장안정화와 품질개선, 투자유발 등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정부의 혜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화수기자@전자신문, hsshin@
*"당근과 채찍 정책 병행해야"
KT는 올 연말까지 농어촌 가구의 97%가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전국적인 인프라를 구축한다. 이는 2002년 KT를 민영화하면서 정부가 관련 법조항을 개정해 구축 의무를 부여한 것이다. 초고속인터넷이 국민 편익 측면에서 필수적이고 정보격차 해소를 위해 필요하다는 게 정통부 측 설명이다. 그 대신 정부는 설비구축에 필요한 융자금을 일부 지원했다.
KT는 주어진 의무만큼 다른 당근을 달라고 요청했다. 초고속인터넷과 광대역통합망(BcN)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하려면 향후 수익성에 대한 전망이 있어야 할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결국 네트워크 부가가치를 높이고 장기적으로 시장 파이를 키울 수 있는 통신·방송 융합서비스나 유무선 결합서비스를 허가해 달라는 것이다. 이 같은 요구는 하나로텔레콤이나 데이콤 등도 같은 바람이다.
그렇지만 IPTV에서 보듯 정통부는 방송계 쪽을 의식해 에둘러 가는 길을 택한 상태다.
또 일부 사업자는 초고속인터넷 부분정액제 등을 도입해 망운용을 효율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트래픽 사용 정도에 따라 가입자들의 요금 구조를 차등화하자는 요구다. 네티즌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지만 사업자들의 주장에도 설득력은 있다. 트래픽을 적게 발생하는 사용자에겐 요금을 지금보다 크게 낮춰주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사업자와 네티즌의 갈등을 풀 가능성은 있다.
정지연기자@전자신문, jy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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