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뒤흔든 불멸의 게임](37)젤다의 전설

한 뮤지션이 있다. 평생을 음악에 바치고 수 많은 곡을 써내려 간 그는 한 시대를 풍미한 거장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그가 쓴 아름다운 곡은 온 세상을 물들이고 세상 모든 이들이 그의 이름을 들으면 그 사람의 음악을 머리에 떠올리며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그런 그가 한 토크쇼에 나갔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받는다.

“당신이 평생을 걸쳐 가장 인정받은 작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 ‘바람을 느껴봐’라고 생각합니다.”

“네? 그래요? 이상하네요. 가장 인기 높았던 작품은 ‘하늘을 느껴봐’ 아닌가요?”

“네. 그렇긴 합니다만 ‘바람을 느껴봐’의 경우는 저도 만족하고 듣는 이들도 만족했던 곡입니다. ‘하늘을 느껴봐’는 저를 대표하는 작품이지만 가장 인정받았던 작품은 ‘바람을 느껴봐’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린 한가지 진실을 깨닫게 된다. 폭발적인 반응과 함께 흥행에 성공했던 작품이라고 해서 반드시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받지는 못한다는 의미다. 흥행에는 저조했어도 모든 사람에게 훌륭한 작품으로 인정받는 것. 우리는 보통 그것을 ‘걸작’ 또는 ‘마스터 피스’라고 부른다. 그리고 지금 소개할 ‘젤다의 전설’ 시리즈는 바로 이런 맥락에 속하는 작품이다.물론 ‘젤다의 전설’ 시리즈가 판매량이 적었다거나 알려지지 않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닌텐도와 미야모토 시게루의 대표작은 ‘마리오’ 시리즈다. 콧수염의 배불뚝이 아저씨에게 언제나 밀려야 했던 링크(‘젤다의 전설’ 시리즈의 주인공)는 대표작에 가려진 비운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1986년 다소 늦게 닌텐도 진영에 합류한 ‘젤다의 전설’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패미콤의 디스크 시스템으로 발매됐다. 액션과 롤플레잉이 적절하게 배합된 게임성과 아름다운 그래픽, 음악, 그리고 패미콤의 인기 덕에 무려 169만개나 팔려 나갔다.

이 해는 일본 최고의 롤플레잉 중 하나인 ‘드래곤 퀘스트’가 발매된 해이기도 했다. 150만개가 팔려나간 ‘드래곤 퀘스트’보다 더 많은 판매량을 보이며 출발했지만 같은 시기에 나온 ‘슈퍼 마리오 브라더즈 2’의 265만개라는 괴물같은 기록에는 미치지 못 했다.

‘마리오’의 아버지이자 ‘젤다의 전설’의 아버지는 그 유명한 미야모토 시게루(宮本 茂)다. 미스터 닌텐도라 불리며 수 많은 작품을 히트시킨 장본인이 ‘젤다의 전설’도 만들었다. 이 작품은 비록 그의 타이틀 중에서 크게 부각되지는 못했지만 ‘젤다의 전설’을 시작으로 1987년 ‘링크의 모험’(161만장), 1991년 ‘젤다의 전설: 신들의 트라이포스’(116만장) 등 지속적인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며 착실히 팔려 나갔다.그러나 패미콤을 시작으로 게임왕국이라 불릴 정도로 독점적인 점유율을 자랑하던 닌텐도에게 내리막이 보이기 시작했다. SCE의 플레이스테이션, 세가의 새턴 등 뛰어난 3D 기능을 탑재한 가정용 게임기가 선보이기 시작하면서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서의 닌텐도 파워는 조금씩 약해졌다. 뒤늦게 닌텐도 64를 발매하면서 가정용 게임기 전장에 뛰어 들었지만 이미 경쟁사의 게임기들이 전세계 시장을 잠식하고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빛을 발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이 긴 세월 동안 다져왔던 탁월한 소프트웨어 진영은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었다. ‘슈퍼 마리오 64’, ‘마리오 카트 64’, ‘요시 스토리’ 등 마리오의 힘을 기반으로 뛰어난 타이틀을 개발했고 1998년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를 세상에 공개하면서 이 작품은 제목처럼 전설이 됐다.

‘젤다의 전설’ 중 3D 그래픽으로는 최초로 발매된 이 타이틀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뛰어난 그래픽과 아름다운 선율로 많은 유저들을 사로잡았을 뿐만 아니라 각종 미디어와 평론가들로부터 극찬이 이어졌다. 비록 닌텐도 64가 가정용 게임기 시장의 점유 실패로 115만장 판매로 그쳤지만 이 작품은 미야모토 시게루의, 닌텐도의 마스터 피스로서 게임사에 길이 남을 뛰어난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뛰어난 점은 ‘원작과 신기술의 만남을 어떻게 가장 잘 적용시킬 수 있느냐’라는 과제를 너무나 훌륭하게 해결했다는 데 있다. 원작 시리즈의 아기자기한 액션과 롤플레잉의 재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3D 기술이 줄 수 있는 연출의 강점과 어드벤처 요소를 최대한 살려내, 원작의 재미를 더욱 극대화한 것이다.이후 ‘젤다의 전설: 무쥬라의 가면’이 발매됐고 닌텐도가 차세대 게임기로 공개한 게임큐브 버전으로 ‘젤다의 전설: 바람의 택트’가 출시됐다. 제작진들은 ‘완벽한 작품’이라는 전작의 평가에 부담을 많이 받으며 ‘젤다의 전설: 바람의 택트’를 개발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엄청난 중압감에 휩싸이면서도 또 다른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 냈다.

 전작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가지고 애니메이션과 게임의 경계를 완전히 허문 셀 쉐이딩 그래픽, 앞선 작품들과 전혀 다른 캐릭터 디자인, 눈물겨운 아름다운 음악, ‘젤다의 전설: 바람의 오카리나’와 차별화되는 게임성을 갖고 있지만 전작들과 일맥상통하는 재미는 여전했다. 이 타이틀은 성공한 시리즈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며 전세계 게임 개발자들에게 충격을 줬고 팬들에게는 즐거운 경험을 선사했다.

언제나 꾸준한 모습으로 매 작품마다 유저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젤다의 전설’의 전설이 과연 언제까지 계속 이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명의 유저로서 이 전설이 언제까지나 계속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이 어떻게 변해 다시 한 번 자신을 놀라게 할 것인지 궁금해하며 두근거리는 기대감을 가지는 마음. 그리고 그런 기대감 속에서 실제 게임을 접했을 때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작품을 만나는 것 만큼 즐거운 일은 또 없을 테니 말이다.

<이광섭 엔게이머즈 팀장 dio@gamerz.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