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열릴 것 같지 않던 이동통신 3사의 무선인터넷망이 드디어 전면 개방된다. 누구나 의지만 있으면 ‘네이트’(SKT)나 ‘멀티팩’(KTF) 같은 무선포털을 독자 운영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2002년말 정통부 ‘전기통신설비 상호접속기준’ 개정 고시에 따라 무선망 개방이 제도적으로 완비됐음에도 불구, ‘기득권’을 고집하며 차일피일 시행을 미뤄왔던 이통 3사는 다음달부터 망개방 ‘약속’을 이행키로 했다.
아직은 일부 쟁점 사항이 미제로 남아있지만, 이해 당사자간의 원칙적 합의가 이루어져 이르면 5월, 늦어도 6월경 우리나라도 무선인터넷 완전 개방 시대의 막이 오를 전망이다. 무선인터넷 서비스시장의 이통3사 독과점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있는 셈이다.<관련기사 45면>
“이젠 더 이상의 변수는 없다.” 무선망 개방에 대한 주무부처인 정통부 관계자의 말이다. 그동안 이통사들이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어 무선망을 개방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으나, 이번엔 그야말로 확실하다는 표현이다. 현실적으로 인프라 구축에 따른 준비 과정을 감안할때 작년 9월 정통부, 인터넷기업협회, 이동통신 3사 관계자들 간의 간담회에서 합의한 ‘2005년 1분기 이내 약속 이행’의 시점은 다소 넘길 것으로 보이지만, 한 두달 안에 망개방에 따르는 제반 준비가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이통사들도 관련 업계 대표 창구인 인터넷기업협회(회장 허진호)와 개방을 전제로한 협상이 일부 쟁점만 남겨놓은 채 사실상 타결된 상태다. 제 4의 ‘캐리어’를 꿈꿔왔던 온세통신 무선사업부 윤종선 차장은 “이제 (개방이)목전에 왔다. 더 이상의 변수는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라고 잘라 말했다. 결국 SK텔레콤·KTF·LGT 등 이통3사로 국한됐던 게임·캐릭터 등 모바일 콘텐츠 시장은 본격적인 ‘다채널’ 시대에 진입하며 격변기로 접어들 전망이다.
# 망개방 시대, 무엇이 달라지나
무선인터넷 망의 전면 개방은 궁극적으로 모바일 서비스 시장이 완전 경쟁 체제로 진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단편적으로는 보면 고유의 무선망과 관련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시스템, 플랫폼, 전략적 CP(콘텐츠공급업체), 유저풀 등을 아우르는 막강 벨류체인을 구축하고 있는 기존 이통3사의 비교 우위가 상당기간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일정 부분의 열세를 감내하고서라도 모바일 시장에 뛰어들겠다는 업체만도 10여곳에 달한다는 점에서 이통3사의 독과점 체제가 붕괴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 더욱이 유선 인터넷 분야에서 방대한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고, 풍부한 경험과 막강 자금력을 보유한 대형 포털의 진입은 모바일 시장 경쟁 구도를 송두리째 바꿔버릴 것으로 예상된다.
서비스 사업자(SP)와 콘텐츠 개발사(CP) 간의 뿌리 깊은 수직적, 종속적 구조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지금까지는 CP들이 모바일 콘텐츠를 서비스할 수 있는 채널은 ‘네이트’ ‘멀티팩’ ‘이지아이’ 등 단 3개에 불과한 탓에 이통사들이 수 천개의 CP들을 좌지우지해왔다. 특히 유선과 달리 무선은 하드웨어(디스플레이) 한계상 어느 위치에 올라가느냐에 따라 매출이 하늘과 땅 차이여서 이통사의 힘의 논리가 여과없이 작용됐던 것이 사실.
하지만, 앞으로는 이통3사 외에도 다양한 서비스 채널이 생김으로써 이통 3사에 대한 ‘충성도’가 상당히 약해질 것이 자명하다. 지명도가 떨어지는 신규 CP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을 신규 SP들을 통해 서비스 기회가 상당히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모바일 콘텐츠 시장의 파이도 크게 확대될 전망이다. 서비스 채널이 확대되고 유선 인터넷의 다양한 콘텐츠 및 서비스가 모바일로 이식될 경우 기존 인터넷 사용자들을 대거 모바일로 흡입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유저 입장에서 보면 기존 이통3사 외에 다양한 무선 포털을 접하게 됨으로써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셈이다. 포털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게임 등 무선콘텐츠 시장은 이슈가 없다. 성장세에 급제동이 걸린 것도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무선망이 개방되고 다양한 SP들이 등장한다면 국내 모바일시장은 다시한번 성장의 모멘텀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 갈길 바쁜 신규 사업자
이통3사 중에서도 무선망 개방에 가장 보수적이었던 SK텔레콤 마저 윈칙적으로 개방쪽으로 방향을 잡는 등 무선망 개방이 현실화하자 가장 갈길 바쁜 쪽은 새로운 ‘mSP’(모바일서비스사업자)를 노리는 기업들이다. 선점 효과를 감안할 때 남보다 먼저 서비스를 시작하는 것이 상당히 유리하기 때문이다. 현재 가장 적극적인 곳이 온세통신. 그동안 ‘SO1’(쏘원)이란 BI를 구축하고 mSP사업을 준비해온 온세는 이통사들과 모든 협의를 끝낸 상태.
유선 포털들과 달리 대부분의 시스템을 별도로 구축한 ‘IWF’(망연동장치)방식으로 서비스를 준비 중이며 이미 2개의 마스터CP를 선정, 성인용을 제외한 대부분의 콘텐츠를 시범 서비스 전까지 확보할 방침이다. 무선사업부 윤종선 차장은 “당장 5월부터 시범 서비스에 돌입하고 6월부터 상용 서비스에 나설 방침”이라고 말했다.
NHN·다음·야후·네오위즈 등 종합 포털들의 움직임도 더욱 빨라지고 있다. 인터넷기업협회를 내세워 이통사와 미묘한 쟁점 사항에 대해 막바지 조율 중인 포털들은 다음달 안에 왑게이트웨이 접속 서비스계약을 마치고 본격 ‘서비스 모드’로 전환할 방침이다. 다음이 다날, NHN이 모빌리언스와 손을 잡는 등 과금대행업체 선정도 거의 완료한 상태다. 이들 빅4업체는 ‘웹투폰’ 방식의 유무선 연동 서비스 경험을 갖고 있는 데다 오래전부터 무선망 개방을 겨냥한 시설 투자까지 마친 상태여서 시범 서비스까지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는게 중론이다.
이들과 달리 독자적인 mSP사업을 추진해온 KT는 최근 다소 주춤해진 상태다. KT-KTF-KTH 등 계열사간의 유·무선 콘텐츠의 헤게모니 싸움이 아직도 ‘진행형’인데다 전략적으로 추진중인 ‘와이브로’와의 교통정리 문제가 미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SK텔레콤 계열사인 SK커뮤니케이션, MSN 등 다른 포털들도 구체적인 액션은 보이지 않지만, 높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상태다. 인터넷기업협회 김성호 사무국장은 “포털들 외에도 다날, 거원 등 대형 CP들까지 최근 mSP사업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다”면서 “일단 (무선망)벽이 허물어지면 시차는 있겠지만, 후발 사업자들이 줄을 이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남은 변수와 숙제는
전후 사정과 무선망 개방을 요구하는 정치권의 목소리 등을 감안할 때 이미 망개방은 ‘대세’로 굳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초기 변수가 많다. 완전 개방과 공정 경쟁 환경 조성을 요구하는 포털 등 신규 사업자측과 최대한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향후에도 일정한 헤게모니를 가져가려는 이통3사간의 기대치 사이엔 적지않은 괴리가 있기 때문. 작년 6월 인터넷기업협회 산하에 발족된 ‘무선인터넷 포럼’(MIF)이 망개방 정책 발표 1년을 맞아 지난 8월 제기한 이른바 ‘5대 망개방 쟁점’ 사항 중 일부가 미제로 남아있다. 여기에 콘텐츠 심의 일원화 문제, 약 10%에 달하는 각종 수수료 문제 등 이통3사와 신규 사업자와의 세부 합의 결과 이통사 SP에 유리한 부분이 많아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대표적인 것이 문자메시지(SMS)를 보내 통화 버튼을 누르면 바로 해당 서비스에 연결되는 ‘콜백URL SMS’ 문제. ‘스팸’의 남발을 이유로 ‘이스테이션’같은 독자 사전동의 시스템을 거쳐야 한다고 고집했던 이통사들이 무료 서비스만 해당하는 것으로 양보했지만, 신규 사업자들이 건당 30원 이라는 수수료가 과하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SK텔레콤 이스테이션이 자주 끊어지는 등 안정성 문제가 도마위에 올랐다. 접속체계 역시 이통사들이 ‘네이트’ 같은 핫키를 이용하려면 단말기업체와 협의하라고 강조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게 후발 사업자들의 주장이다.
현재 미해결 사항 중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은 서비스 범위. 이통사들이 서비스 허용 범위를 게임, 벨소리, 캐릭터 등 이른바 ‘VM’(다운로드솔루션)계열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 김성호 인터넷기업협회 사무국장은 “VM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무선 콘텐츠 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주장은 ‘반쪽짜리’ 개방에 불과하다”며 “가능한한 페어(공정)한 경쟁 환경을 만들어주고 개방을 해야하는데, 현 상태에선 신규 사업자들이 경쟁력이 너무 취약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일부 불공정 소지가 있는 숙제를 남기긴 했지만, 무선망 전면 개방은 인터넷업계의 오랜 숙원을 풀어주며 한국 인터넷 역사에 또하나의 획을 그은 것만은 분명하다”고 입을 모은다.
<무선망 개방 일지>
2001년 8월: 정통부 ‘무선인터넷망개방 추진 계획 수립
2002년 1월: 무선망 개방 전제조건하에 SKT-신세기 합병 인가
2002년 7월: 정통부, 무선인터넷망 개방 추진 계획 발표
2002년 12월: 정통부, 전기통신설비 상호접속기준 개정 고시
2003년 7월: 왑게이트웨이 등 망접속 관련 약관 승인, 망개방 후속조치 발표
2003년 9월: 이통3사, 콘텐츠검증기관(KIBA) 및 과금검증기관(KTOA) 협정 체결
2004년 6월: 무선인터넷포럼(MIF) 발족
2004년 8월: 망개방 정책 의견서 발표. 5대 쟁점사항 제기
2004년 9월: 정통부, 인터넷기업협회, 이통3사 간담회-2005년 1분기내 주요 합의사항 이행 합의
2004년 10월: 과기정위 국정감사에서 무선망 개방 문제제기
2004년 4월: 무선망 전면 개방(예정)
<이중배기자 이중배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