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리스트]박준재 앳누리 개발실장

# 게임 개발 천성 ‘일 중독자’

“저는 일에 미쳐 사는 사람입니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서 10시간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게임을 만들어요. 직원들이 일 중독자라고 놀리곤 해요. 그래도 놀 때는 잘 놀아요. 아주 발광을 하면서 놀죠. 하하하. 그런데 그건 아주 가끔이고요. 거의 사무실에서 일에 매달려 살고 있습니다.”

박준재 실장은 이렇게 첫 이야기를 시작했다. 94년 하이텔 게임제작동호회에 가입하면서 그의 개발자 인생은 시작됐다. 하이텔 게임제작동호회는 국내 유명 개발자들이라면 안 거친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곳. 당시 교류가 있었던 사람들의 인맥은 여전히 국내 게임계에서 끈끈하게 작용하고 있다. 박실장은 그 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아마추어 게임 제작자로 활동하며 다양한 교류와 경험을 가졌다.

 그리고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대학에서 소프트웨어 설계를 전공했다. 게임을 너무나 좋아해 게임왕국인 일본에서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쳐보리라 결심하고 떠난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일본에서 문화 콘텐츠의 홍수를 맛봤고 일본어를 현지인 수준으로 익혔으며 많은 일본 게임 개발자들을 친구로 만들어 놨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유명 일본 게임 개발사에서 개발 노하우를 익혀 2000년 귀국했다. 귀국해도 역시 그의 천직은 게임 개발자였고 박 실장은 이름만 들어도 아는 여러 국내 유명 개발사에 4년 동안 다양한 게임을 제작했다. 마침내 자신감을 얻은 그는 모바일 게임 개발사를 창업을 해 주로 외주 제작사로 활동했다. 다년간 PC 게임과 콘솔 게임에서 얻은 경험을 살려 스스로 회사를 설립한 것. 박 실장은 자신의 적성에 가장 맞는 분야가 바로 모바일 게임이었다고 털어놨다.

“여러 플랫폼에 손을 댔는데 결국 모바일 게임이 가장 좋더라고요. 제작 기간도 짧고 게임을 개발하는 한 턴이 길지 않아 시대의 트렌드에 맞게 다른 것으로 넘어갈 수 있잖아요.”

보통 개발기간이 1년 6개월에서 2년이나 걸리는 온라인이나 패키지 게임은 긴 시간만큼이나 고통도 길다는 의미다. 창업은 순탄했고 그의 말을 빌리면 “나름대로 잘 먹고 잘 살았다.” 그러다 현 앳누리 관계자와 우연히 만난 것이 인연이 돼 전원이 자리를 옮겼다. 그 때가 2004년 9월. 지금은 앳누리 소속의 개발실장으로 근무하며 ‘폭렬 접시 대왕’, ‘초속 찌라시 전설’ 등 엽기적이고 코믹한 게임을 만들어 히트시켰다.

# 사람들 시선 부담

하지만 그의 아픔은 다른 곳에 있었다. 박 실장은 아랍계 한국인으로 어머니가 이란인이다. 다시 말해 혼혈인이라는 얘기다. 1살 때 이란에서 한국으로 건너왔기 때문에 이란어도 할 줄 모르지만 그의 얼굴은 페르시아의 혈통이 선명히 드러나 있어 한 눈에 봐도 아라비아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일본에서는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고 한국에서는 이태원에서 계속 생활했기 때문에 직장을 잡으면서 처음으로 ‘한국 사회’의 시선을 느꼈다고 말했다.

“전 외국 사람 아닙니다.”

이 뒤의 말은 ‘저도 한국 사람입니다’였겠지만 그는 이 문장을 삼켰다. 박실장의 표정에서 혼혈인으로서 그의 아픔과 순탄치 않았던 직장 생활이 느껴졌다.

# 앞으로 할 일도 모바일 게임

게임 개발로 젊음을 불사르고 있는 박 실장은 모바일 게임 예찬론자다.

“모바일 게임은 매우 장래가 촉망받는 분야입니다. PC 게임은 어려워질 것이 눈에 선하고 온라인 게임은 너무 큰 돈과 인원이 필요해 리스크도 그만큼 커요. 콘솔 게임은 변수도 많고 개발도 쉽지 않아 제게 맞는 분야는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모바일 게임은 휴대폰뿐만 아니라 휴대용 게임기나 PDA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꼭 필요한 콘텐츠가 될 것입니다. 소수의 인원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최고의 장르죠.”

그는 자신이 힘을 다하는 그날까지 게임을 개발할 것이고 어렵고 접근하기 까다로운 타이틀보다는 사람들이 재미있게 즐기는 작품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과 함께 만화의 매력에도 푹 빠져 있다는 박 실장의 파이팅이 힘차다.

<김성진기자 김성진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