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업은 사람이 하고 큰 사업은 하늘이 내린다”고 한국EMC도 세계적 불황을 끝내 피해갈 수만은 없었다.
1995년 7월 지사 설립 이후 매 분기마다 지속돼던 성장세가 2001년 1분기를 끝으로 23분기만에 멈췄다. 나는 그때 “우리 모두가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 시장에는 수요가 없었다”고 직원들에게 격려 메일을 보냈다.
2001년 겨울께 예측할 수 없는 장기불황과 계속되는 매출 하락에 위기감을 느낀 본사는 3차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마지막이라는 단서와 함께. 본사는 ‘GTM(Go-To-Market)’이라는 거사적 혁신 프로젝트를 도입할 예정이라면서 2년 후 비즈니스 로드맵을 동시에 발표하며 전 직원의 양해를 구했다. 이번엔 한국도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이젠 본사의 입장에서 직원들의 협조를 당부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단 ‘충분한 보상책’ 마련에 나섰다. 충성과 헌신을 다해온 직원들을 떠나게 하려면 최대한 예우를 해주는 것이 타당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또 단순히 떠나는 자에 대한 보상만이 아니고, 남아서 더 많은 일을 해야하는 직원들도 이해할 수 있는 조건으로 단기간에 다시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합리적인 수준에서 결정하겠다는 의지를 본사에 밝혔다.
54명의 직원이 한꺼번에 회사를 떠났다. 업계 최상의 ‘패키지’가 동반된 일이지만 “사장을 제대로 하려면, 최소한 별을 서 너개는 달아야 한다”던 업계 선배의 위로를 되뇌이며 나를 추스리는 방법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비즈니스 환경이 특별히 달라진 것도 없었지만 한국EMC는 2002년에 최대의 매출을 기록했다. 그해 가을 본사와 다음 해 비즈니스 계획 논의를 시작했다. 본사는 ‘전 직원 급여 동결 또는 삭감, 일정 정도 이상의 간부는 15% 삭감’이란 조건을 제시했다. 수긍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한국EMC는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올리는 시점이라 더욱 그랬다.
2년 이상 지속되는 불황에 모두들 침묵했지만 난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였다. 결과적으로 지난 해와 같은 수준의 조기 퇴직 프로그램을 통해 20여명을 감원하고 나머지 직원들에겐 실적에 맞는 급여 인상을 보장하는 선에서 본사와 합의했다.
2003년 초 GTM 프로젝트의 윤곽이 거의 드러났다. 그러나 심한 회의감에 빠졌다. 한 자리에 너무 오래 있다 보니 지쳤다는 생각, 그로 인해 오는 권태감, 예상되는 변화의 시대엔 내가 적임자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 그리고 “1%의 가능성만 있다면 나는 그 길을 간다”던 오지여행가 한비야의 말에 견주어 나의 정체성을 찾아보려 하면 할수록 찾아오는 무력감. 퇴사를 결심했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나서 서너달 동안 많은 회유를 받았다.
뉴욕까지 불려가 본사 사장과 독대를 했고, 설립자이자 아직도 1대 주주인 딕 에건은 간곡히 만류했다.
EMC를 떠난 지금도 나는 인생의 황금기와 함께한 EMC에 변함없는 애정을 가지고 있다. 회사 EMC는 개인적으로도 내게 과분할 정도로 보상을 해주었다. 비록 내가 재테크에 둔감해서 거의 모든 기회를 날려보내긴 했지만, 회사로서는 애정 어린 배려였음을 잘 알고 있다.
지난해 6월 말 내가 EMC 직원이 되었을 때 최초의 보스였던 사람(Rick Wojcik)을 운명적으로 서울에서 다시 만났다. 꼬박 이틀 동안 많은 얘기를 나눈 후 그가 사장으로 있는 회사 ‘에이템포’의 아시아지역 책임자로 일하기로 했다. 작은 회사지만 기술력과 제품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 그리고 그와의 의리 때문에 결국 할 일만 많은 회사를 택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크건 작건 수없이 많은 결단의 순간을 접하고, 그때마다 적절한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결정의 옳고 그름을 따진다는 건 어리석은 일인지도 모른다. 내 운명은 내 결단의 결과물이고, 인생이란 과거를 돌이켜보며 비탄에 빠지는 것 보다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게 더 생산적이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는 자에겐 후회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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