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우드에서 개발한 ‘듄 Ⅱ’는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를 최초로 선보인 작품이다. 이 게임은 발매되면서 많은 화제를 모았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타이틀은 새로운 장르에 대한 가능성과 비전을 보여줬고 ‘워크래프트’ ‘다크레인’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등 한 시대를 풍미한 게임장르의 기초를 마련했다. 오늘도 PC방에서 열심히 ‘스타크래프트’를 즐기고 있는 유저들은 필히 ‘듄 Ⅱ’라는 이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1992년 국내 게임 유저들 사이에서는 기존에 전혀 볼 수 없었던 PC게임이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당시 게임 유저들의 관심은 대부분 콘솔 게임이었고 PC 게임도 인기가 있었으나 장르가 매우 한정돼 있었다.
PC게임은 ‘삼국지’ 시리즈가 큰 화제를 몰며 유저들을 열광케 했고 어드벤처와 롤플레잉이 주를 이루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듄 Ⅱ(Dune Ⅱ)’라는 게임은 유저들 사이에서 색다른 게임이 나타났다며 화제가 됐다.
이 게임은 주인공 캐릭터를 컨트롤하는 시스템이 아니었으며 턴 방식으로 즐기는 느긋한 플레이와 정반대되는 방식으로 유저 자신이 마치 사령관이 돼 유닛을 생산하고 전투를 실시간으로 펼치는 게임이었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플레이 방식에 많은 유저들이 호기심 어린 눈길을 보냈으나 시대를 너무 앞서 나갔다. 소수의 유저만 지지를 보냈고 턴 방식의 플레이에 익숙한 유저에게는 호응을 얻기가 무척 어려웠다.
하지만 몇몇 개발자와 개발사들은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이 작품의 아이디어에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당시만해도 그 누구도 이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가 세계를 휩쓸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듄 Ⅱ’는 1985년 설립된 웨스트우드(Westwood)에서 개발한 게임이다. 창립자인 루이스 캐슬은 처녀작을 기획할 때부터 실시간에 많은 관심을 뒀었다. 1990년에 SSI를 통해 발매된 ‘아이 오브 더 비홀더(Eye of the Beholder)’는 D&D 시스템에 입각한 롤플레잉에 실시간 플레이를 도입해 커다란 성공을 거뒀다.
이로 인해 루이스 캐슬은 실시간 플레이 방식에 더욱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1992년 웨스트우드는 버진(Virgin)사에 매각됐으나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획기적인 게임에 착수할 수 있었다. 초기 아이디어는 중세를 배경으로 기사와 마법이 등장하는 실시간 플레이를 계획했으나 컨셉트를 잡아가면서 게임의 무대를 현대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탱크를 등장시키고 자원의 개념으로 돈을 사용하면서 전투를 벌이는 것이었다. 개발은 순조롭게 진행됐으며 개발자들은 새로운 장르를 창조한다는 사실에 들떴다.
게임의 초기 타이틀명은 ‘듄’이었으나 이미 버진에서 어드벤처 게임으로 이 이름을 사용했기 때문에 ‘듄 Ⅱ’로 최종 결정했다. 이미 존재하는 제목을 굳이 듄으로 고집한 이유는 또 다른 창립자 브렛 스페리가 소설 듄의 열렬한 팬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첫 작품이 2편이라는 의미를 가진 희귀한 게임이 된 것이다.
‘듄 Ⅱ’는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의 시작을 알렸고 많은 유저들과 매체들은 ‘괜찮은 작품’이라는 평을 내놨다. 이후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의 시대가 도래하리란 것은 아무도 몰랐으나 시대를 앞서간 제작진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이 게임의 최종 재미는 ‘멀티플레이’라고 선언할 정도로 미래를 내다본 사람들이었다.이 게임은 지금의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방식과 조금도 다른 점이 없다. 기지와 건물을 짓고 자원을 채집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유닛을 생산한다. 다양한 유닛은 장·단점을 갖추고 적대국의 유닛들과 밸런스가 맞춰져 있다. 가장 강력한 유닛이란 없으며 기본적으로 전투는 유닛 조합에 의해 수행된다. 자원은 곧 돈이며 자원을 확보해야만 유닛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확보하는 것이 승리의 지름길이다. 결국 모든 전쟁은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벌어지게 된다.
이 게임은 6년의 시간을 두고 1998년에 ‘듄 2000’으로 2탄이 발매됐으나 시대를 읽지 못하는 어설픔으로 인해 처절한 실패를 남기고 말았다. 자신들이 창조한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장르가 붐을 이루는 시기에 오히려 원작의 명성만 훼손하는 결과를 낳아 많은 유저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그러나 ‘듄 Ⅱ’의 영향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의 엄청난 가능성에 매료된 세계 곳곳의 개발자들은 이 장르를 기반으로 다양한 게임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게임으로 블리자드의 ‘워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웨스트우드의 ‘커맨드 앤 컨커’ 액티비전의 ‘다크 레인’ 크레이브독의 ‘토탈 어나이얼레이션’ 등이 있었고 이 후로도 수 많은 동종 장르 게임이 쏟아져 나왔다.
이 장르를 기반으로 한 대부분의 게임들은 성공했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장르 간의 접목으로 다양성이 더해져 유저들을 즐겁게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 인기 게임 순위에서 언제난 상위를 차지하는 ‘스타크래프트’의 틀을 마련한 작품이 ‘듄 Ⅱ’라는 사실은 반드시 기억해야할 게임 상식이다.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콜롬부스의 달걀처럼 누가 이미 이룩한 업적은 대단해 보이지 않지만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은 신의 영역이나 다름이 없다. 그만큼 어렵고 힘들다. 웨스트우드는 이 작품을 토대로 계속해서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을 만들어 나갔다.
스포츠, 어드벤처, 롤플레잉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있으며 ‘듄 Ⅱ’의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는 ‘컨맨드 앤 컨커’ 시리즈는 꾸준히 이어져 최근까지 ‘C&C: 제너럴’을 공개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비록 웨스트우드가 EA로 넘어가면서 회사 이름이 사라지는 진통을 겪었지만 훌륭한 게임과 창조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식지 않고 있다.
<김성진기자 김성진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