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틴 제프 감독, 기네스 펠트로 주연의 ‘실비아’를 보기 전, 필자는 특별한 감상에 사로잡혔다. 20세기 가장 뛰어난 여류시인인 미국 출신의 실비아 플라스와 그녀의 남편이었고, 금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이며 영국의 계관시인, 즉 국가 최고의 시인으로 명명된 테드 휴즈 부부의 비극적 삶을 다룬 영화이기 때문이다. 실비아 플라스나 테드 휴즈의 시를 읽으며 필자는 젊음을 보냈다. 그들의 시적 성과는 영화화 된 소재를 떠나서 그 자체만으로 인류사에 기억될 뛰어난 것이다.
영화 ‘실비아’는 1956년 케임브리지 대학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영국에 온 실비아 플라스가, 한 문학잡지가 주최한 파티에서 테드 휴즈를 만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들은 만난지 네 달만인 그해 6월 결혼한다. 그리고 실비아 플라스가 미국의 모교인 스미스 대학에서 영문학 강사 자리를 얻어 다시 미국으로 갔다가, 1959년 영국 런던으로 이주하고 첫 딸을 낳는다. 실비아 플라스는 1960년 첫 시집 ‘거상’을 내고 작품 활동을 활발하게 시작했지만 테드 휴즈의 끊임없는 바람기로 1962년 이혼한다. 그리고 1963년 2월, 가스 오븐에 머리를 박고 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하기까지를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시인 부부의 스캔들을 영화로 다룬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실비아 플라스나 테드 휴즈는 그런 말초적 이야기 거리, 스캔들의 대상을 뛰어넘는 위대한 시인들이다. 영화는 그들의 외형적 삶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네스 펠트로는 지적인 풍모와 섬세한 감성을 갖고 있어서, 끊임없이 죽음에의 유혹으로 갈등하는 시인의 여린 감성을 표출하기에는 적합한 캐스팅이지만, 그러나 한 남자의 아내로서 남편의 바람기에 갈등하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 모성애를 발휘하는 부분 이상의, 즉, 뛰어난 시인으로서의 실비아의 내면은 부족하게 표출되어 있다.
실비아 플라스는 매우 복합적 감성을 가진 시인이다. 어린 시절 겪은 아버지의 죽음, 그 이후 사춘기 시절 자살에의 유혹에 빠져 직접 자살을 시도한 이후 끊임없이 자살 충동에 사로잡혀 지냈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그녀의 갈등은 지나치게 테드 휴즈의 바람기에 모든 원인을 돌림으로써 시인 특유의 복합적 감성을 차단하는 결과를 빚었다. 이것은 ‘실비아’가 스캔들 이상이 되기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의 욕망이 실현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실비아 플라스의 자살 이후, 테드 휴즈는 1998년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그 역시 죽기 직전에 ‘생일편지’라는 책을 발간했는데, 그 속에는 실비아 플라스와의 아름다운 연애가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테드 휴즈는 자신에게 쏟아질 비난을 걱정해서 실비아 플라스가 남긴 일기를 책으로 출간하면서 자신에게 불리한 부분은 삭제한 바 있다.
테드 휴즈 역을 맡은 다니엘 크레이그는 섬세한 감정과 선명한 직관으로 위대한 시인을 뛰어나게 형성화했다. ‘실비아’의 문제는 각본에 있다. 각본 자체의 초점이 지나치게 두 부부의 사생활에 집중돼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인들의 모임에서 즉흥시를 낭송하는 모습도 우스꽝스럽게 전달된다. 그들의 시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동의하지 못할 장면이다.
영화 ‘실비아’는 로댕의 연인이었으며 그녀 자신이 뛰어난 조각가였던 ‘까미유 끌로델’처럼, 한 위대한 예술가의 흔적에 가려진 여성의 삶과 예술을 재조명하는 영화다. 사후인 1982년 ‘시선집모음’으로 퓰리처상을 받으며 재조명 된 실비아 플라스의 시적 성과와 그녀 내면의 흐름에는 지나치게 인색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