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주무부처는 유명무실.’
게임주무부처를 자임해온 문화관광부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문화부가 그동안 공언해온 게임 육성책이 번번이 ‘용두사미’로 그치면서 게임업계에는 “문화부가 진짜 게임주무부처냐”라는 반문까지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문화부가 지난해 정부입법으로 제정하겠다던 ‘게임산업의 진흥에 관한 법률’은 6개월째 표류중이다. 세계 3대 게임강국 진입을 위해 신설하겠다던 ‘게임과’ 설립도 이미 유야무야된 상태다.
반면 ‘PC방 신고업 전환’ ‘아케이드 상품권 허가제’ 등 각종 규제책은 강도높게 밀어붙이면서 ‘규제 주무부처’라는 비아냥 마저 쏟아지고 있다.
특히 문화부가 게임산업육성 드라이브에 갈팡지팡하는 사이 그동안 ‘밥그릇 싸움’ 논란을 우려해 숨죽이고 있던 정보통신부, 산업자원부 등 게임 유관부처가 잇따라 게임업계 끌어안기에 나서 게임 주무부처로서 문화부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형국이다.
게임업계에도 주무부처의 무늬보다 내실을 바라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 게임주무부처는 정통부?
지난달 30일 게임업체 넥슨에는 내로라는 게임업계 CEO 20여명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빌딩앞에는 ‘진대제 장관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커다란 현수막도 걸렸다.
현직 장관으로서는 최초로 정통부 진 장관이 게임업체를 직접 방문해 업계의 고충과 현안을 청취한다는 사실에 게임업계 CEO들은 잔뜩 고무된 표정이었다. 진 장관은 최근 게임업계의 핫이슈로 떠오른 ‘인터넷 종량제’ ‘무선망 개방’ 등 각종 현안을 놓고 장시간 토론도 마다하지 않았다.
진 장관은 “게임산업이 지식정보화시대의 꽃으로 필 수 있도록 정부차원의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며 “업계 대표, 개발자들이 소신과 자긍심을 갖고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간담회는 밤 10시를 훌쩍 넘겨 끝났지만 간담회에 참석한 CEO들은 하나같이 밝은 표정이었다.
온라인게임업체 한 CEO는 “장관이 직접 게임업체를 방문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상징적 의미가 남다르다”며 “한때 게임이 무조건 규제 대상으로 치부되던 시절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사실 이날 간담회는 업계 고충과 요구사항을 수렴하는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장관이 게임산업을 직접 챙긴다는데 업계는 적지 않은 의미를 부여했다.
반면 게임산업에 관한한 문화부에 가려있던 정통부는 이번 간담회를 계기로 확실하게
게임산업 육성을 담당하는 주요부처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진 장관은 “정동채 문화부 장관과 ‘카트라이더’ 대결을 하고 싶다”며 문화부 뿐 아니라 정통부도 게임산업 육성에 일익을 담당할 뜻을 시사했다.
# 좌충우돌 문화부
산자부도 최근 게임산업에 눈을 돌리고 있다. 특히 게임인력 양성을 위해 ‘게임사관학교(가칭)’를 설립키로 하고 지난해부터 준비작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사관학교’는 정영수 전 한국게임산업개발원 원장이 교장으로 내정되는 등 현재 문화부 산하 게임아카데미와 거의 흡사한 교육기관으로 운영될 전망이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업계에서는 해묵은 정부부처 영역다툼이 재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최근 문화부의 게임산업 육성정책이 표류하는 것에 대한 반발로 정통부든 산자부든 실질적이고 힘있는 육성책을 추진하면 그만이다는 ‘흑묘백묘론’도 널리 퍼지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는 문화부가 지난해 연말 제정을 공언한 ‘게임산업의 진흥에 관한 벌률’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와중에 국회의원들이 의원입법으로 비슷한 법률 제정을 서두르면서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의원입법으로 추진중인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한나라당 박형준 의원안)과 ‘게임진흥법’(열린우리당 정청래 의원안)은 진흥법 추진 주체로 민간주도의 ‘게임산업진흥위원회’ 설치를 담고 있어 문화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게임산업진흥위원회가 설치될 경우 그동안 문화부 산하 게임산업개발원과 영상물등급위원회가 관장해온 산업진흥과 콘텐츠 심의 업무 등이 진흥위원회로 이관될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문화부가 올해 핵심사업으로 추진 중인 국제게임전시회 ‘G스타’도 마찬가지다. 연초에 정통부와 공동 추진키로 하면서 이미 ‘반쪽사업’으로 전락한 상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게임산업진흥법 제정, 국제전시회 개최 등 문화부가 주력사업으로 추진해온 사업이 하나같이 타 부처에 잠식당하면서 문화부는 장기에서 차와 포를 떼인 판”이라며 “가뜩이나 문화부 주도 육성정책이 반쪽으로 전락한 가운데 아케이드 상품권 허가제와 PC방 신고제 전환 등 유독 규제 일변도 정책만 밀어붙이면서 업계의 불만이 이마저만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업계에서는 이처럼 문화부의 게임육성책이 흔들리는 것에 대해 정 장관이 게임쪽에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게임주무부처라면 적어도 업계와 간담회는 정통부보다 문화부가 먼저 가졌어야 모양새가 맞다는 것이다.
게임업계 관계자들은 영화감독 출신인 이창동 전 장관도 게임산업진흥법 초안을 만드는 등 게임산업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지만 문광위 위원을 거쳐 한층 기대를 모았던 정 장관이 게임분야에 이렇다할 육성의지를 드러내지 못한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문화부 관계자는 “문화부가 주무부처라고 해서 모든 일을 혼자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문화부가 혼자 못하는 것을 정통부든 산자부든 나눠서 하면 궁극적으로 업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게임산업진흥법이나 국제게임전시회 등 굵직한 프로젝트는 문화부가 이미 지난해 기본안을 만들었기 때문에 성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며 “문화부가 주무부처라는 이름아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 결코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장지영기자 장지영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