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를 뚫어라!’
세계 최대 용량 라우터를 KT에 공급하기 위한 세계적인 통신 장비업체 간 경쟁이 시작됐다.
KT는 다음달 테라급 코어 라우터 도입을 위한 시험평가를 실시한다. 이번 평가는 주니퍼네트웍스와 시스코시스템스 등 2개사를 대상으로 진행된다. 새로 도입되는 장비는 구로·혜화전화국 등 국내 최대 트래픽이 발생하는 코넷센터망에 사용될 예정이며, 규모는 300억원에 달한다.
◇5월 초 미국서 BMT 시작=시험평가테스트(BMT)는 다음달 초 2주간 일정으로 미국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두 회사 장비 모두 아직 상용망에 설치된 사례가 없기 때문에 이번 BMT 후에도 KT는 국내 환경에 적용해보는 현장검증 시험도 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망 구축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늦어도 오는 9∼10월께에는 망 구축 작업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코어 라우터 도입은 계속되는 트래픽 증가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KT의 가장 큰 핵심 프로젝트다.
◇반격·재반격=현재 국내 최대 트래픽이 발생하는 KT 구로·혜화전화국 백본을 차지하고 있는 라우터는 주니퍼의 640 기가비트급 ‘T640’. 그러나 주니퍼 라우터 설치 이전에 백본을 차지하고 있던 장비는 시스코의 ‘7600’ 제품이었다. 주니퍼가 후발 주자로 들어와 시스코 ‘7600’ 제품을 하단으로 끌어내리고, 최고 자리에 앉은 것이다. 라우터에서 출발, 세계 최고·최대 통신장비 회사 위치에 올라 있는 시스코엔 당시 사건이 자존심을 구기는 중차대한 일이었다. 때문에 이번 라우터 공급 프로젝트는 두 회사의 자존심 대결로 평가된다.
시스코가 이번에 KT 공급을 추진중인 테라급 라우터 ‘CRS-1’은 이 같은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한 야심작으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하지만 주니퍼의 방어도 만만치 않다. 주니퍼는 그동안 매트릭스 기술 기반의 ‘TX 매트릭스’ 제품을 출시, 배수진을 쳤다. 메트릭스 기술은 기존 ‘T640’ 제품을 묶어 초고속·대용량의 성능을 구현한 것으로 4대, 8대, 16대까지 연결해 2.5테라비트에서 최대 10테라비트 성능 구현이 가능하다.
2개 제품 모두 양사의 모든 기술이 총동원된 제품이다. 이번 입찰은 자존심 대결인 동시에 이들 회사의 진보된 기술력을 평가받는 중요한 시험무대인 셈이다.
◇전망=시스코의 ‘CRS-1’은 현재 전세계적으로 소프트뱅크BB에 1대가 납품됐다. 주니퍼 ‘TX 매트릭스’도 현재 일본의 다른 기간통신사업자 납품이 임박했다. 그러나 시스코가 소프트뱅크의 주주사라는 점과 주니퍼 장비는 아직 납품이 완료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구축 사례로 평가되기엔 무리가 있다. 아직 전세계적으로 제대로 된 구축 사례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KT에서 미국 BMT와 현장검증 등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통해 제품 검증에 나선 이유다. 특히 KT망은 세계 어떤 통신망보다 복잡하기 때문에 기존 구축 사례와 회사들이 내세우는 성능도 무의미하다.
즉, KT에 납품한 장비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지만, 그 반대 경우는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 통신시장이 이번 입찰에 주목하는 이유다.
이와 관련, 양사 관계자들도 “세계 어디서나 인정받는 레퍼런스를 만든다는 점에서 KT를 놓칠 수 없다”면서 “이번 공급 건은 지사 차원이 아닌 본사 차원의 한판 승부”라며 단단히 벼르고 있다.
최정훈·홍기범기자@전자신문, jhchoi·kbh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