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고속도로 부천 IC를 빠져나와 15분여 만에 도착한 ‘페어차일드코리아반도체’ 부천사업장. 첫 인상은 너무나 잘 정리된 도시 한 복판에 위치하고 있는 거대한 공장이라는 느낌. 그러나 30여년 전에는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공장이 놓여 있었다고 직원들은 전한다.
하지만 1974년 세워진 이 부천사업장은 우리 반도체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역사의 현장이다. 한국반도체(현 삼성전자)가 우리나라 최초로 반도체 웨이퍼 가공 사업에 착수한 곳이자 지금의 ‘반도체 강국 코리아’ 위상의 첫 단추가 끼워진 곳이기도 하다.
이 사업장이 페어차일드코리아반도체로 명패를 바꿔 단 것은 지난 99년 4월. 미국 페어차일드가 이 사업부를 인수하면서 국내 최대 전력용 반도체 전문기업이 탄생한 것이다.
페어차일드코리아는 부천사업장 인수시 1500여명의 종업원을 전원 승계했다. 이 때문에 현재까지도 부천사업장에는 삼성전자 출신들이 많이 남아 있어 삼성의 기업문화와 미국계 기업문화가 공존한다.
“딱 뿌러지게 뭐라고 말 할 수는 없지만 스케줄 체크 및 성과 정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미국식 업무추진 방식과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밀어붙이는 한국식 기업문화가 부천사업장에는 잘 어우러져 있는 것 같다”고 이 회사 홍보실 천병철 과장은 설명한다.
이 회사의 주력 아이템인 전력용 반도체는 정류·증폭·스위칭 등의 역할을 하는 소자로, 조명기기에서부터 컴퓨터·이동전화기·가전·산전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사용된다. 세계 전력용 반도체 선두주자인 페어차일드는 ‘전력용 반도체의 표준’이란 의미로 ‘파워프랜차이즈(Power Franchise)’라는 브랜드를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페어차일드코리아 김덕중 사장은 “페어차일드코리아는 지난 6년간 수출증대·고용확대·외자유치 등을 통해 국가 및 지역경제에 이바지해 왔으며 특히 비메모리 전력용 반도체의 기술개발 및 수출을 통해 메모리에 편향된 한국 반도체산업의 균형적인 발전을 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설립 이후 지속적으로 팹과 자동화 물류센터를 설립하는 등 투자를 확대하고 있어 페어차일드의 아시아 핵심 사업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페어차일드코리아는 페어차일드 전세계 매출의 40%를 한국 페어차일드 사업장에서 올리고 있고, 특히 중국시장의 부상과 함께 그 전략적 가치가 훨씬 높아졌다.
부천사업장은 전세계 페어차일드 사업장 중 가장 돋보이는 사업장이다. 페어차일드코리아 제조부문의 송창섭 수석 부사장은 “페어차일드 부천사업장은 제품품질(수율)·고객대응·품질관리시스템 등을 종합적을 검토하는 품질평가에서 페어차일드 전세계 주요 5개 생산기지 가운데 최고의 평가를 받은 바 있다”며 “지속적인 생산라인 증설 및 기술 개발로 세계 최고를 지향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천사업장은 또 외국 생산기지에 앞서 6시그마·TPM 등의 과학적 생산관리도 도입했다.
이러한 괄목할 만한 성과의 바탕에는 1800명의 대식구지만 한 가족과 같은 인화를 추구하는 기업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근로환경 개선과 복지제도의 향상으로 무분규의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구축해 발전적인 노사 문화에 기여한 공로로 노동부 장관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노동부로부터 남녀고용평등 기업으로 상도 받았다. 사원 및 가족의료비 지원제도, 자녀 교육비 지원제도, 주택구입자금 및 전세자금 융자제도, 휴양지 숙박비 지원제도, 경영성과에 따른 특별상여금 제도, 개인연금 지원제도 등의 다양한 복리후생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페어차일드코리아 내부 전자 게시판에 있는 ‘세이(Say)’ 코너는 이 회사의 노사화합을 잘 방증한다. 모든 게시자는 익명처리되기 때문에 이 곳을 통해 직원들은 자신의 의사를 아무 거리낌 없이 밝힐 수 있다. 인사제도에 대한 의견개진에서부터 점심 식단이 마음에 안 든다는 내용까지 회사생활에 대한 모든 일이 이 코너의 화제가 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누군가를 음해하는 내용은 한 번도 없었고 모두 발전적인 화합에 도움이 되는 의견들만 개진됐다고 천 과장은 설명했다.
지난 12일 이 사업장에서는 창립 6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김덕중 사장을 비롯한 임직원이 모두 한데 어울린 이날 ‘실리콘 축제(노사 화합 투게더 2005)’는 뒤풀이로 무제한 제공된 호프와 함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축제의 최고 하이라이트는 사장단으로 구성된 밴드다. 사장단 밴드에는 직원들의 열광적인 앙코르가 쏟아졌으며 부천사업장에 스며드는 어둠에도 아랑곳 없이 수준급 노래가 부천 하늘을 뒤덮었다.
페어차일드코리아 반도체는 99년 설립 이후 매년 총 매출액의 80% 이상을 수출해 한국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또 한국에 내린 뿌리를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 부천이라는 지역사회에 각종 봉사활동 및 문화행사를 지원하고 있다. 또 직원들은 매월 급여의 일부를 적립해서 정기적으로 부천 관내 사회기관에 기탁하고 있기도 하다.
국내 사업의 대부분이 국내 임원진의 의지와 지식에 기반을 두는, 사실상 한국 기업 ‘페어차일드코리아반도체’. 부천에 둥지를 튼 이 회사에선 오늘도 해외 첨단기술과 국내 우수인력이 조화를 이루며 세계시장 개척을 위해 땀 흘리고 있다.
심규호기자@전자신문, khs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