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훈의 중계석

한국이 월드컵 개최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뜨기 시작한 그 해 봄, 필자는 온게임넷 스타리그 캐스터 자리를 후배에게 물려주고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에 조용히 안녕을 고했다. ‘왜 그만 두느냐?’는 질문은 집요했고, 나는 “내가 당신들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머무르게 될 다음 번 자리를 찾으러 가는 것”이라는 답을 했었다.

그해 봄, 황사 가득한 북경을 첫 방문 했다. 지갑 속엔 CCTV 프로듀서 두 명의 명함 뿐이었다. 중국어를 할 줄도 몰랐고, 중국 가이드도 없었다. 어렵사리 만난 그 두 사람에게 필자는 ‘e스포츠 한중 교류’에 대해 이야기 했다. 물론 돌아온 대답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로부터 삼 년. WEG라는 이름으로 세계 대회를 치르기까지 꼭 만 삼 년이 걸렸다.

지난 삼 년 동안 참 많은 것이 변했다. 한국의 e스포츠가 변한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중국의 환경도 달라졌다. 한국과 중국이 변한 것만이 아니라 유럽도, 미국도… 세계 각국의 게임시장과 e스포츠 분야에 참 많은 일이 생겨나고, 달라지고,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제는 한국에서 e스포츠의 세계 대회를 만나는 것이 더 이상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고, e스포츠에 정치인과, 사회적인 관심이 쏠리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제 바야흐로 ‘e스포츠의 르네상스’가 열리는가 싶다.

 필자 뿐만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이 이제 비로소 기지개를 한 번 펴는 e스포츠의 모습을 확인 하고 있는 듯하다. 이제 e스포츠에 대한 논의는 더 이상 언더그라운드가 아니라 하나의 주류로서 모양을 갖추어가게 될 것이다.

필자가 일하는 WEG에는 젊은 e스포츠 전문가들이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이제 아직 서른을 전후한 그 친구들에게 세계 시장과 세계 무대는 머나먼 남의 나라가 아니다. 해외 선수나 해외 전문가들, 해외 파트너들과 아무렇지 않게 대화하고, 계획하며 e스포츠 분야의 선도자로서 자긍심을 아낌없이 표현하는 그 친구들 속에서 필자는 보람을 느낀다. 이제 그들이 발을 딛고 서 있는 그 분야에서 그들은 ‘메이저리그’로서 한국에서 만들어 낸 e스포츠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것이다.

어느 분야든 1세대의 역할과 의무는 ‘그 분야의 주춧돌을 세우는 것. 그리고, 그 주춧돌 위에 더 훌륭한 전당이 세워지도록 적당한 시기에 자리를 비켜주는 것 까지’라고 믿고 있다. 이제 막 완성되어지고 있는 한국 e스포츠의 주춧돌에 진정으로 많은 이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훌륭한 전당이 완성되기를 바란다.

그간, 필자의 졸필을 사랑해주신 많은 독자제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게임케스터 nouncer@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