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성 이중계약 파문의 진상

‘e스포츠’에도 스카우트 파동이 벌어졌다.

희생양은 지난해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펼쳤던 SK텔레콤의 실질적인 에이스인 ‘괴물 테란’ 최연성. 최연성은 KTF 및 SK텔레콤과의 이중계약 문제로 선수생명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지도 모르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몰렸다.

최연성은 최근 SK텔레콤과 올해부터 연간 1억5000만원의 기본 연봉과 성적에 따라 최대 5000만원까지를 옵션으로 받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3년간의 장기계약을 체결했다. 그렇지만 최연성은 이미 KTF매직엔스와 비슷한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해 놓은 상황. KTF측이 없던 일로 덮어준다면 모르겠지만 KTF가 계약서를 내보이며 권리를 주장할 경우 최연성은 막다른 골목에 몰릴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SK텔레콤측에서는 “최연성이 계약전에 KTF측에 계약해지를 요청해 놓은 상태라 아마 KTF측에서 최연성에게 위약금을 물라고 하는 선에서 마무리될 것 같다”며 이번 문제는 최연성과 KTF 간의 문제로 돌렸다.

하지만 KTF 한 관계자는 “정식으로 계약 취소 요청 받은바 없다”며 “KTF는 이향할 것을 다한 만큼 (계약을) 해지할 사유가 없으며, 지금은 일방적으로 물러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닌것 같다”고 잘라말했다. 그는 또 “여러가지 안을 가지고 생각을 해보고 최연성과의 계약이 발효되면 계약이행 여부를 보고 대응방안을 세울 것”이라며 “최연성의 대회 참가를 규제할 수도 있다”고 밝히는 등 법적 소송을 생각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에 따라 최연성은 올해 파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장기계약을 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최대의 시련을 겪어야만할 위기를 맞게 됐다. 사실 이중계약의 책임은 선수 본인에게 물을 수 밖에 없다. 김종부(축구)와 강혁(야구) 등 기존 스포츠 종목에서도 이중계약 문제로 사실상 선수생활에 종지부를 찍어야 했던 불운의 스타가 많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연성이 과연 선수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지 여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이중계약 어떻게 이루어졌나

KTF측에서는 최연성이 기존 소속팀에서 소외당하고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자사와 계약을 먼저 요구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최연성의 부친이 먼저 KTF를 찾아와 계약을 하자고 요구했다는 것. 최연성은 지난해 개인전에서 여러차례 우승을 차지하며 프로게이머 랭킹 1위에 오르는 등 실질적인 SK텔레콤 T1의 에이스로 활약해 온 선수로 개인리그는 물론 팀리그에서의 공헌도도 높지만 팀에서 그리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불만이 쌓여왔다는 것이 KTF측이 설명한 이유다.

이에 대해 KTF의 한 관계자는 “최연성은 같은 팀 선수와 경기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면 숙소를 나와 PC방을 전전하며 아마추어 선수들과 연습을 해오는 등 많이 힘들어 했다”며 “그런 상황을 알고 있기에 계약을 체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SK텔레콤의 주장은 또 다르다.KTF가 최연성의 트레이드를 요구했다가 거부하자 몰래 최연성을 꼬여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 SK텔레콤 관계자는 이에 대해 “KTF측이 최연성에게 ‘SK텔레콤이 올해 연봉을 100%도 인상해 주지 않을 것’이라며 파격적인 대우를 약속하며 계약을 종용했다”고 주장했다.그는 또 “KTF는 막판까지도 최연성과의 계약을 숨겨왔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최연성이 자의든 타의든 KTF와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이같은 사실을 알게된 SK텔레콤측에서는 최연성 붙잡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다양한 방법으로 최연성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노력한 결과 최근 3년 간의 다년계약을 체결했다.

물론 파격적인 대우를 해줬고, 이면에는 KTF와 문제가 발생할 경우 대신 처리해 주겠다는 약속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최연성이 사부로 모시고 있는 임요환과의 관계도 다시 SK텔레콤 쪽으로 마음을 돌리는데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연성은 SK텔레콤과 재계약을 맺은 이후 “(KTF와의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 칼자루 쥔 KTF?

이번 최연성의 이중계약 문제에 관한한 칼자루를 쥐고 있는 쪽은 KTF로 보인다. KTF로서는 최연성을 자사 소속으로 데려와도 그만 안 데려와도 그만인 상황인 반면 SK텔레콤으로서는 최연성은 꼭 있어줘야 하는 선수이기 때문. 또 KTF는 일단 도의적으로는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없다고는 해도 법적으로는 확실한 근거(계약서)를 확보해 놓은 상태라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손해는 없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있다.

KTF가 취할 수 있는 방안은 크게 두가지 정도로 예상된다. 하나는 최연성을 자사팀 선수라고 공표하고, SK텔레콤을 상대로 법정 소송을 제기하는 것. KTF는 그동안 최연성과 계약서를 증거자료로 들어 소송을 진행할 경우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입장을 견지해온 데다 최근 e스포츠협회에 SK텔레콤과 최연성의 계약에 대한 사실확인을 요청하는 등 일관된 행보를 보이고 있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경우로 보인다. 이럴 경우 최연성은 판결이 날 때까지는 어느팀 유니폼도 입을 수 없게될 공산이 크다. 이번 이중계약 파문이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최악의 경우다.

이 경우 당사자인 최연성은 물론이고 SK텔레콤과 KTF 모두가 큰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소송을 진행하면서 정신적·물질적 피해가 막대한 것은 물론이고 최연성의 대회 출전에 제한이 가해짐으로써 선수 개인은 물론 소속팀인 SK텔레콤 T1은 올해 시즌을 기대하기 힘들어진다. 물론 소송을 제기한 KTF측도 기업이미지에 손상을 입을 수 밖에 없다. 심하면 최연성과 계약을 체결한 담당자에 대한 문책도 예상된다.

KTF의 또다른 선택은 SK텔레콤에 최연성을 양보하는 대신에 최연성 개인을 상대로 계약 위반에 따른 위약금 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현재 알려진 위약금 규모는 9억원에 이른다. KTF와 최연성이 체결한 계약서에 명시된 내용이다. 물론 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위약금 규모는 줄어들 수 있다.

이 경우 최연성이 치러야할 소송이나 물어야할 위약금 등은 소속사인 SK텔레콤측이 대리로 처리해 주겠지만 최연성이나 SK텔레콤 T1으로서나 결코 편치만은 않은 관계가 될 수 밖에 없다. 특히 소송을 진행하는 동안 선수는 물론 팀자체가 망가져버릴 수 있는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하지만 SK텔레콤은 KTF가 어떤 행동이든 섣불리 취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협회 규정상 기존 소속사와 아무런 협의 없이, 그것도 관행처럼 이어져온 이적료도 없이 선수를 데려간다는 것은 인정을 하지 않고 있는데다 KTF의 이미지 때문에 무리하게 소송을 걸지는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SK텔레콤측에서는 “양자가 모두 잘못한 부분이 있으므로 모두 없던 일로 처리하고 조용하게 넘어가는 것이 KTF로서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 누구의 잘못인가

최연성의 이중계약 파문은 당사자인 3자 모두의 잘못이다. 그중에서도 마음을 이리 저리 바꾸면서 이중계약을 체결한 당사자인 최연성의 잘못이 가장 크다는 것이 공론이다. 처음에 소속팀과 아무런 논의도 없이 덜컥 다른 팀과 계약을 해버린 것이 첫번째 잘못이고, 마음을 바꿔 다시 기존 소속팀과 재계약을 체결한 것이 두번째 잘못이라는 것. 때문에 최연성은 이번 파문이 파국으로 치닫게 될 경우 선수 생명이 끝나버리는 최악의 상황도 감수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KTF는 선수 이적과 관련해서는 소속팀과 협의를 거쳐온 기존의 관행을 무시하고 이적료도 내지 않은 채 선수와 몰래 계약을 체결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이에 협회 차원에서는 전반적인 질서유지를 위해 있어서는 안되는 일로 보고 있다. 이같은 경우가 허용이 되면 앞으로 돈이 없는 구단에서는 대기업의 무차별적인 스카우트 공세에서 자사팀 선수를 붙잡아 둘 수 있는 방법이 없어지게 되는 때문이다.

SK텔레콤은 선수 단도리를 제대로 못한 책임과 다른 팀으로 가고 싶어하는 선수를 붙잡아 두기 위해 이미 타사와 계약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중계약을 체결했다는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 협회는 관련 규정 없어 수동적 대응

e스포츠협회측에서는 KTF의 요구가 있어야만 움직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협회는 선수보호를 위해 설립된 단체인 만큼 선수를 보호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인데다 협회 규약에는 선수의 이중계약과 관련한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협회에서는 긴급 이사회를 열어서라도 교통정리를 해줘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협회 규약 가운데는 선수 트레이드와 관련해 ‘소속사간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문구가 있어 규약상으로도 KTF와 최연성간의 개별적인 계약은 문제의 소지가 많다는 것이 주변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이에 협회측은 게임단간의 전체적인 질서유지가 필요한 시점이며 선수에 대한 처벌이나 규제는 그 다음에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와관련 협회의 정명곤 사무국장은 “KTF로부터 최연성의 (SK텔레콤과의) 계약 관계를 알아봐달라는 사실 확인 요청을 받았다”며 ‘일단 사실관계여부를 알아보고, KTF측의 요구사항이 있을 경우 e스포츠 진흥위원회 회의를 거쳐 그에 대한 대응 방향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협회 차원에서도 이번 이중계약으로 인한 파장이 클 경우에는 대를 위해 선수에게 제재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물론 전제조건은 KTF가 어떤 요구를 하느냐는 것. KTF가 어떤 방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최연성의 경기를 계속 지켜볼 수 있을지 없을지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순기기자 김순기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