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를 넘어 시스템 강국으로](2부)도약의 씨앗들⑩DVR용 반도체

‘휴대폰 산업, 디스플레이 산업, MP3P 산업, 메모리 반도체 산업, 디지털영상저장장치(DVR) 산업 등이 갖는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우리나라가 세계 시장에서 수위를 다투는 분야라는 점이다.

DVR도 우리나라가 세계를 호령하는 핵심 아이템 중의 하나다. 지난해 세계 시장 규모가 17억 달러에 이르며 이중 국내 업체가 대략 40% 정도의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DVR은 아날로그 감시카메라로 입력된 영상 정보를 영상 캡처 보드를 통해 디지털 영상 정보로 변환·압축해 하드디스크에 저장하는 장치로 기존 아날로그 폐쇄회로(CC)TV 저장장치의 대체품이다. DVR 산업은 PC 기반 제품과 독립형 제품으로 나뉘며 이 시장은 국내 업체들에 의해 만들어져 개척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DVR 시스템 산업이 이처럼 국제 경쟁력을 갖추게 된 주요한 배경 중의 하나는 국내에서 우수한 부품을 조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DVR의 성능을 좌지우지하는 영상 처리 칩 및 압축 칩 분야에서 에이로직스, 넥스트칩, 펜타마이크로, 아이비넷 등 국내 업체들이 사실상 시장 지배적인 위치에서, 저렴하고 우수한 제품을 설계·공급하고 있다.

과거에는 DVR의 영상 처리는 고가의 디지털신호처리프로세서(DSP)을 이용해 소프트웨어적으로 처리했다. 그러나 성능면이나 가격 면에서 전문 반도체를 사용하는 것이 유리해지면서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우위를 띄고 있다. 에이로직스 김호기 이사는 “날로 첨단화되는 보안 시장에서 소프트웨어적으로 처리하는 제품이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어 하드와이어드 방식의 제품이 선호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DVR에 주로 사용되는 반도체는 카메라용 이미지처리칩(ISP), 비디오디코더칩, 영상컨트롤러칩, 압축칩 등이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카메라를 통해 들어온 영상 정보를 PC나 독립형 제품을 통해 모니터로 전송, 감시를 할 수 있다.

카메라 ISP 칩 분야에서는 넥스트칩(대표 김경수)이 외산 제품을 밀어내고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넥스트칩은 소니, 샤프, 삼성전자 등의 CCD 칩에 적용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했다. 이 칩은 디지털 신호로 출력을 만들 수 있어 네트워크 카메라 등에 적합하다.

카메라를 통해 들어온 정보를 영상처리 칩에서 받을 수 있도록 디지털 신호로 변환해주는 컨버터인 비디오디코더 칩 분야에서는 필립스, TI 등 외산 업체가 주도해왔다. 그러나 2년 전부터 넥스트칩이 국산 기술로 칩을 개발 시장을 대치해가고 있다. 넥스트칩 김동욱 이사는 “국산 제품은 구리선을 통하면서 미약해진 신호도 좋은 화질로 복원해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며 최근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강조했다.

DVR의 핵심 칩 분야에서는 에이로직스(대표 김주덕), 넥스트칩 등 두 개 회사가 1∼2위를 다투며 시장을 분할하고 있다.

에이로직스의 주력 분야인 영상처리칩은 디지털신호로 들어온 정보를 DVR답게 만들어주는 기능을 한다. 감시 모니터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채널 분할을 해주는 칩이다. 에이로직스 김호기 이사는 “영상 처리 분야에서는 16채널 영상 입력이 가능한 제품인 ‘AM7416’을 비롯한 9채널, 4채널 등 20여종의 다양한 제품을 갖고 있다”며 “삼성전자, 코디콤, 소니, 산요 등 세계 80여 업체가 이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넥스트칩도 16채널 분할 칩 등 하이엔드 버전의 칩으로부터 저가형 솔루션까지 다양한 제품군을 보유하고 에이로직스를 추격하고 있다. 이외에도 아이비넷, 펜타마이크로 등도 제품을 내놓고 시장을 공략중이다.

영상처리 칩으로부터 받은 영상은 하드디스크에 저장된다. 이때 하드디스크의 효율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압축 칩을 거치게 된다. 이 분야에서는 넥스트칩, 펜타마이크로 등이 제품이 내고 외국업체인 아구스 등과 겨루고 있다.

넥스트칩은 지난해 하반기 MJPEG 기반의 비디오 코덱 칩 ‘NVP3000’ 개발에 성공했다. 이 칩은 압축과 복원을 하나의 칩에서 실시간 동시 처리할 수 있는 듀플렉스 칩으로 비용과 공간을 절약할 수 있다. 펜타마이크로(대표 정세진)는 최대 16채널 영상데이터를 동시에 압축·복원 할 수 있는 MPEG4 영상 코덱 칩인 ‘멀티스트림Ⅳ’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DVR에 들어가는 분야별 칩 이외에도 여러 기능을 하나의 칩에 담은 시스템온칩(SoC) 개발 노력도 활발하다. 에이로직스는 영상처리 및 압축을 하나의 칩에서 처리할 수 있는 칩인 ‘AD-426 및 426B’를 개발 마무리 중이다. 이 회사 김호기 이사는 “DVR의 여러 기능을 SoC화함에 따라 제조업체들의 원가경쟁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DVR용 칩 업체들은 DVR의 각 분야에서 세계 시장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선두 그룹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다른 애플리케이션에도 뛰어든다. 에이로직스는 통신용 칩 분야에, 넥스트칩은 소비자 가전 분야에 출사표를 던지고 DVR에 이은 차세대 아이템을 마련중이다.

김규태기자@전자신문, star@

◆인터뷰-에이로직스 부병욱 수석연구원

 “반도체쟁이에게 가장 보람있었던 때라고 하면 역시 설계한 칩이 시험 작동에서 무난하게 돌아가 줄 때입니다. 이것말고 어떤 즐거움이 있겠습니까.”

DVR용 시스템온칩(SoC) 개발을 위해 밤샘을 밥 먹듯이 했던 에이로직스의 부병욱 수석연구원(38)은 개발하면서 고생했던 일들은 칩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잊어버리게 된다고 털어놨다.

“SoC는 일반 반도체와는 달리 여러 기능이 복합화된 것으로 시험기간도 깁니다. 칩에다가 리눅스 같은 운용체제(OS)를 올리고 디바이스 드라이버를 하나씩 얹어가면서 테스트하는데 시험 기간 중에는 불안하고 긴장됐었습니다.”

에이로직스의 SoC 제품은 이제 개발 마무리 단계로, 조만간 세트업체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부수석이 1년여간 개발한 제품이 세상의 빛을 볼 날이 며칠 남지 않은 셈이다.

부수석은 국내 업체들이 DVR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SoC를 개발하면서 오히려 더 어려웠다고 한다. 이유는 참고할만한 대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들이 아직 안 한 것을 처음 하느라 막막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누가 시원하게 답을 해줄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외국 업체를 베낄 수도 없었습니다. 선두를 유지하는 상태에서 한발 더 앞서가는 게 정말 어렵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DVR용으로 자체 개발한 앰빅 솔루션도 이러한 차원에서 개발된 것이다. 앰빅은 에이로직스가 보안 장치의 특성에 맞게끔 개발한 소프트웨어로 SoC의 경쟁력 강화에 일조할 것으로 기대된다.

부수석은 자신이 개발한 SoC 제품이 양산되고 나면, 차세대 DVR용 SoC 설계에 곧바로 착수할 계획이다. 부수석은 “앞으로는 무선 기능과 호환이 될 수 있도록 SoC를 설계해야 할 것 같다”며 “다양한 방향으로 칩을 개발, 국내 세트업체들의 세계 시장 석권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DVR 업체도 자체 칩 마련

 디지털영상저장장치(DVR) 분야에서 중국업체의 저가 공세를 따돌리고 특화된 제품으로 경쟁력을 갖기 위한 세트업체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대표적인 것이 자사만이 활용할 수 있는 전용칩을 확보, 기능을 특화시킴으써 중국 등의 후발 업체의 제품에 비해 성능과 기능면에서 우위를 보이자는 전략이다.

피카소정보통신과 포스데이타 측은 자체 칩을 개발하는 방식으로 나가고 있으며 코디콤은 DVR 칩 설계 전문업체로부터 자사 전용 칩을 들여오기로 했다.

DVR 생산업체인 피카소정보통신은 2월 말 압축과 복원 능력을 강화한 자체 칩 개발을 마쳤다. 하반기에는 이를 탑재한 신제품 DVR을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포스데이타도 최근 자체 칩을 개발하고 오는 6월부터 미국·일본 등 시장 상황에 맞는 DVR을 생산해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피카소정보통신 관계자는 “전용 칩을 사용하면 불필요한 기능을 제거한 최적화된 제품을 만들 수 있고 제품의 단가도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체 칩 개발과 함께, 특정 업체만을 위한 칩도 나왔다. 에이로직스는 지난해 말부터 코티콤 전용의 칩을 개발·생산해주고 있다. 사실상 코디콤만의 전용 칩인 셈이다. 코디콤 관계자는 “보안 기능을 강화해 중국·대만 등에서 카피할 수 없게 만드는 기능을 강화한 칩”이라고 설명했다.

자체 칩 및 전용 칩은 특화 기능뿐 아니라 가격 측면에서도 이점이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했다. 자체 인력을 통해 자사가 원하는 규격만 넣어 설계, 부품의 단가를 낮출 수 있다는 계산이다. 또한, 전용칩을 통해 특정업체의 제품을 다량으로 구매함으로써, 구매 계약시 저렴한 가격에 우수한 제품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