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반떼XD 출시를 앞둔 지난 2000년 4월.
현대자동차의 과장급 이상 임직원은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에게 한통의 각서를 제출했다. 나중에 알려진 것이지만 ‘향후 출시되는 신차에서 결함이 발견되면 어떠한 책임도 달게 받겠다’는 게 각서 내용이었다.
지난 99년 말 시판된 트라제 XG가 6개월새 다섯차례나 리콜되는 등 품질 불량이 잇따르자 과거 일은 문제삼지 않는 대신 신차에서는 품질을 최우선시하라는 정 회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4년이 흐른 지난해 5월, 현대차의 쏘나타는 미국 JD파워사가 미국 고객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4년 신차 품질조사(IQS)’에서 중형차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자동차 전문 주간지인 오토모티브 뉴스가 지난 97년 일본 도요타의 렉서스 이후 두번째로 ‘사람이 개를 물었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비약적 발전을 이룬 것이다.
지난 1955년에 지프나 군용 트럭을 개조해 만든 ‘시발 자동차’를 시작으로 자동차 생산에 들어간 우리나라는 반세기만인 지난해 318만대의 자동차를 생산, 세계 6위(시장 점유율 5.5%)를 차지하면서 자동차 산업 선도국가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나라 경제에서 자동차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더라도 가히 절대적이다. 총수출의 12%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국민 8명 중 1명이 자동차 관련 산업에 몸 담고 있을 정도다.
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오는 2010년에 프랑스를 제치고 미국·일본·독일에 이어 자동차 4강에 오를 전망이다. 국내 450만대·국외 200만대 등 총 65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해 세계시장 점유율 10%를 차지하는 게 2010년 목표다.
이같은 전망의 한가운데 현대·기아차 그룹이 있다. 일본 미쯔비시로부터 기술을 배워오던 현대차가 쏘나타에 장착된 세타 엔진의 기술 이전 대가로 다임러크라이슬러와 미쯔비시로부터 총 5700만달러(약 740억원)의 로열티를 받기로 한 것은 우리나라 자동차 역사를 새로 쓴 쾌거다. 지난 2003년 세계시장 점유율 5.11%로 세계적 완성차업체 중 7위, 지난해는 6위로 올라섰다.
지난해 실적도 눈부셨다. 내수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대 수출 실적을 기록하면서 판매 209만8000대(내수 55만1000대·수출 154만7000대), 매출액 32조4000억원을 달성했다.
이처럼 눈부신 도약에 해외 언론들과 경쟁업체들의 찬사도 끊이지 않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현대차의 도약이 세계 최고 자동차업체인 도요타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고 적었다. 타임지는 ‘전 세계 완성차 역사상 가장 놀라운 기적을 일궈냈다’고 극찬했다.
도요타의 후지오 조 부회장은 “도요타를 제외하고는 현대차가 유일하게 품질과 가격 면에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의 올 1분기 순이익은 14% 늘었다. 순익 급증의 주 이유는 해외 판매가 호조를 보였기 때문이다. 중국·인도·터키 등 해외 공장 실적이 지난 3월과 11월 동반 최다 판매 신기록을 경신하는 등 전년에 비해 85.4% 증가한 44만8184대를 기록했다. 미국시장에선 전년에 비해 뉴 EF쏘나타가 30.2%, 싼타페가 10% 각각 판매가 증가했다.
현대차는 이를 바탕으로 오는 2008년까지 세계 최고 품질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업체가 되겠다며 세계 시장 장악을 위한 출사표를 던졌다. 현대차의 야심을 잘 보여주는 예가 바로 미국 앨라배마 공장이다. 총 10억 달러의 자금이 들어간 이 공장은 연산 30만대 규모로 이 달 준공된다.
정몽구 회장은 “앨라배마 공장 가동을 계기로 지난해 사상 최대를 기록한 수출 성장세를 계속 확대해 내수 60만5000대, 수출 178만4000대, 매출 36조1700억원을 달성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명승욱기자@전자신문, swmay@
◆하이브리드카 승부
세계 최초로 하이브리드카를 양산한 일본 완성차업계에 현대차가 도전장을 내민다.
현대차는 오는 2007년 중형차인 쏘나타(NF) 하이브리드카를 양산, 세계시장에서 독주 체제를 갖춘 일본산 하이브리드카와 정면 승부를 벌일 계획이다.
이는 차세대 친환경차인 하이브리드카 시장에서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빅3’가 도요타, 혼다 등 일본 차에 주도권을 내준 상황에서 향후 세계 자동차업계 판도 변화에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는 시도로 주목된다.
NF쏘나타 하이브리드카는 일반인에게 판매가 가능할 정도로 양산할 계획이어서 2007년이면 국내에서도 하이브리드카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시장조사기관인 RN폴크앤코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하이브리드 차량 판매가 휘발유 가격 상승 및 다양한 신형 모델 출시 영향으로 전년 대비 81% 늘어난 8만3153대에 달했다. 이는 지난 2000년 7781대 판매에 비해 4년 만에 무려 11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특히 지난 2000년 세계 최초로 하이브리드카(프리우스)를 팔기 시작한 도요타는 판매 누적대수가 10만대를 넘어서 세계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으며 올해는 미국 시장에서 10만대 판매를 예상하고 있을 정도다. 최근엔 승용차 뿐만 아니라 ‘렉서스 RX400h’ 등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도 하이브리드차를 투입하고 있다. 혼다도 ‘시빅’ 등 3개 차종의 하이브리드 차량을 투입하는 등 일본 차들이 하이브리드카 시장에서 독주하고 있다.
현대차 정몽구 회장은 “연료전지차 시대로 넘어가기까지 하이브리드카 시대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속단할 수 없지만 결론은 친환경차가 향후 자동차 시장의 대세가 될 것이라는 점”이라며 “화석연료차 진입은 늦어 따라잡기 힘들었지만 친환경차 시대는 선두주자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명승욱기자@전자신문, swmay@
◆현대차 왜 강한가
△전 사업 부문의 수직 계열화=원재료 소싱부터 판매·애프터서비스까지 수직 계열화된 사업 구조. 원자재, 부품, 최종 상품에 이르는 계열 구조 완성에 따른 안정적인 생산시스템 정착.
△내수시장 발판으로 해외 진출=국내 시장 점유율 73%(2005년 3월 기준)로 실질적인 독점. 미국, 중국, 인도, 터키 등지 현지공장 가동. 올 1분기 중국 시장 판매 1위.
△품질 대비 가격 경쟁력=정몽구 회장의 ‘품질 경영론’이 대표적. 현대자동차서비스 시절부터 지금까지 현장 방문을 통한 품질 점검을 가장 중시. 초기 품질수준을 나타내는 IQS지수가 2004년 7위로 도요타(9위), 벤츠(10위)를 앞섬(JD파워 조사). 지난해 SSI(판매만족도조사)에서 도요타 및 닛산보다 높은 수치 차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쟁업체에 비해 15∼20%의 가격 경쟁력 확보.
◆기고
-남충우 KAM 부회장 cwnam@kama.or.kr
지난 97년 12월 10일 도요타자동차는 하이브리드 승용차 프리우스(1500cc)를 세계 최초로 판매한다고 발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같은 날 일본 교토에서는 세계 각국 정상들이 모여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기후변화협약(교토의정서)를 체결하고 있었다.
일본 정부와 도요타는 친환경차인 ‘프리우스’를 일본에 몰려든 세계 각국 정상들과 언론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이같은 치밀한 전략을 짰다.
지난 달 11일 청와대 본관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현대자동차의 투싼 수소연료전지차 시승식을 가졌다. 이례적으로 대통령이 직접 시승을 했으며 ‘자랑스럽다, 임기 동안 밀어드리겠다’며 현대자동차에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세계 5위의 완성차 생산국’임이 창피스러울 정도로 턱없이 열악하다. 정부는 연료전지차에 10년간 2890억원, 하이브리드카 개발에 7년간 1280억원 등을 지원한다는 계획에 불과하다.
자동차 산업에 대한 국가 차원의 애정표현은 이미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사실 미래차 개발은 국가의 대리전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총리 관저에서 도요타와 혼다가 개발한 연료전지차의 시승식을 가졌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도 2000년 11월 다임러벤츠의 연료전지차인 ‘네카 V’를 대중에게 직접 소개했다. 미래차에 대한 투자는 국가차원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은 에너지성 주관으로 ‘프리덤카(Freedom CAR)’라는 연료전지차 개발 프로젝트에 5년간 17억달러(약 2조원)를 지원하고 있다.
일본은 연료전지차 개발에 2년간 680억엔(약 7100억원), 유럽은 하이브리드카 개발에 4년간 21억 유로(2조6000억원)를 지원할 예정이다. 자동차산업 후발국인 중국도 연료전지차 개발에 5년간 10억위엔(1500억원)를 지원하고 있다.
선진국들이 이처럼 앞다퉈 미래차 개발에 직접 나서는 이유는 국가 경제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는 자동산업의 미래 생존 여부가 다름아닌 미래차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00년 이후 ‘환경’과 ‘기술’이 업계의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완성차 업계는 미래차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30년내 내연기관 자동차들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GM의 자회사인 홀덴에 따르면 오는 2010년 하이브리드차와 연료전지차의 판매비중이 각각 15%와 5%를 기록하고 가솔린차의 비중은 50%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030년에는 무공해 차량인 연료전지차가 60%까지 확대된다는 전망이다.
향후 자동차 산업은 친환경자동차와 관련된 핵심 기술의 확보가 생존의 관건이 될 것이다. 정부는 국민 경제를 이끄는 자동차 산업 육성을 위해 과감한 투자에 나서야 한다. 적어도 향후 10년간 매년 1000억원 이상의 집중적인 투자가 요구된다.
★평균별점
마케팅 ☆☆☆☆☆
기술 ☆☆☆☆
생산시스템 ☆☆☆☆
디자인 ☆☆☆☆☆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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