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카드 유통 업체가 게임 업체에 잇달아 ‘러브 콜’을 보내고 있다. 이전에는 주로 엔비디아·ATI 등 칩세트 업체와 게임 업체의 제휴가 활발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래픽카드와 게임 자체의 공동 마케팅 사례가 크게 늘고 있는 것. 이는 게임 마니아가 그래픽카드의 주요 수요자인 데다 게임업체와 연대를 통해 자체 브랜드를 확실히 알리고 아울러 수익성도 확보할 수 있는 등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픽카드와 게임 업체의 연합 전선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벼랑 끝에 선 그래픽카드 유통 업체=시그마컴을 제외하고 국내 그래픽카드 제조 업체는 사실상 사라졌다. 대신 일반 소매 시장에는 중국·대만산 제품 점유율이 90%에 달하고 있다. 제품 품질이 엇비슷해 지면서 소비자는 브랜드보다 가격을 선호하고 이 때문에 유통업체의 수익성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10만원짜리 그래픽카드 한장 팔아야 단돈 ‘1000원’ 남기면 많이 남는 장사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올 정도다. 이에 주요 업체는 상대적으로 브랜드 차별화가 가능하고 마진이 좋은 게임 쪽에 눈을 돌리는 상황. 단순히 패키지에 게임 이미지를 심는 브랜드 마케팅에서 번들 제공, 온라인 게임 아이템 무료 증정 등 다양한 프로모션 방법을 진행중이다.
◇게임 마니아를 잡아라=이런 움직임은 지난 4월 비수기를 시작으로 탄력을 받고 있다. 이미 게임 업체와 손잡은 업체가 3개 정도며 4, 5개 업체가 입맛에 맞는 파트너를 물색중이다. 특히 인기 게임인 블리자드의 ‘WOW’, 넥슨의 ‘카트라이더’ 등 뜨는 게임을 잡기 위한 물밑 경쟁은 점입가경이다.
시그마컴은 최근 블리자드의 ‘WOW’와 공동 마케팅 관련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이 회사는 자사의 그래픽카드에 ‘WOW 클라이언트 DVD’를 번들로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한 최종 계약을 다음주에 한다.
유니텍전자도 조이맥스의 ‘실크로드’와 손잡고 실크로드 그래픽카드 판매와 함께 게임 아이템을 무료로 주는 행사를 준비중이다. 렉스테크놀로지도 조이시티의 ‘프리스타일’과 계약을 추진하고 있다.
이 밖에 앱솔루트코리아가 온라인 게임업체와 아이템 교환 등을 위한 막바지 협상을 앞두고 있고 지난해 ‘열혈강호’와 공동 마케팅을 펼쳤던 벤텍디지털도 다른 게임 업체를 물색중이다.
◇ 장기적인 수익 확보는 여전히 과제=게임 업체와 제휴한 그래픽카드 업체는 단시간 내에 브랜드 인지도를 올려 최대 수요처인 게임방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등 상당한 부가 이익을 누리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리니지2’와 제휴한 인사이드텔넷컴 등은 게임방을 중심으로 대량 납품에 성공해 매출액이 2배 이상 늘었다. 하지만 게임 업체와 제휴로 단기적으로 판매량이 늘 수는 있지만 ‘빠르게 뜨고 지는’ 게임의 특성으로 회사 브랜드 홍보와 장기적인 수익성 제고는 보장할 수 없다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실제 지난해 웹젠과 제휴해 ‘뮤’ 시리즈를 출시한 이엠텍아이앤씨는 더는 게임업체와 제휴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이는 ‘뮤’시리즈로 투자 대비 2배 이상의 수익을 올렸지만 또 다른 주력 브랜드인 ‘이엠텍’은 그늘에 가려 실패했기 때문.
이엠택 김동원 팀장은 “대개 게임이 뜨면 그래픽카드의 매출액은 늘지만 장기적인 회사 브랜드에는 도움이 안 되는 경향이 많다”며 “게다가 게임 업체의 의견 충돌이 잦아 이를 조율하는 데 불필요한 자원이 낭비되는 등 부작용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한정훈기자@전자신문, existen@etnews.co.kr
사진: 유니텍전자 그래픽카드에 등장한 실크로드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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