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를 넘어 시스템 강국으로](2부)도약의 씨앗들⑫마이크로프로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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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10년 전인 지난 96년 삼성전자는 서버 및 고속 CPU 개발 업체인 미국의 DEC사와 64비트 CPU인 알파칩에 대한 공동 개발 및 협력 계약을 체결, 전 세계 반도체 업체의 주목을 박았다.

95년 사상 최대의 메모리 호황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렸던 삼성전자가 메모리 못지 않은 거대 시장을 형성했던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에 급행으로 진입할 수 있는 지름 길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그 당시 삼성전자의 세계 최고 수준의 공정기술과 막대한 자금력, 그리고 DEC의 CPU 기술이 결합 될 경우 세계 최대 마이크로프로세서 기업인 인텔과도 맞설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제휴 이듬해인 97년에 마이크로프로세서 업체 가운데에서는 가장 빠른 1GHz 알파칩 개발을 마치는 등 사업화에 박차를 가했으나 컴팩의 DEC사 인수, 아이러니컬 하게도 인텔의 알파칩 생산 시설 인수 등으로 일부 제품을 생산하는 것을 끝으로 알파칩 사업을 결국 접게 됐다.

삼성전자가 그 당시 회사의 미래를 걸 정도로 힘을 쏟았던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은 비 메모리 분야의 핵심 반도체다. 전기밥솥, 진공청소기 등 소형 가전 제품부터 PC, 서버는 물론 휴대폰에 이르기까지 연간 수 십억개의 전자 제품에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채용된다. 시장 조사기관인 데이타퀘스트에 따르면 마이크로프로세서·마이크로컨트롤러·디지털시그널프로세서로 구성된 마이크로컴포넌트 시장 규모는 지난해 472억 달러로 487억 달러의 시장을 형성했던 메모리와 전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각각 20%의 시장을 차지하고 있다. 인텔을 비롯, TI,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도시바, 히타치 등 대표적인 비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은 독자적인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보유할 정도로 마이크로프로세서는 비 메모리의 가장 대표적인 품목으로 꼽힌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알파칩 사업 철수, 비교적 마이크로프로세서에 꾸준한 투자를 진행해온 LG반도체의 현대반도체(현재 하이닉스)합병 이후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한 동안 마이크로프로세서 사업을 확대하는 데 고전을 겪어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시장 환경이 달라지면서 다시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재 도전하는 국내 기업들이 늘고 있다. 우선 국내 기업들에게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 진입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코어 기술을 개발치 않고 라이선스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마이크로프로세서에서 코어는 얼마나 빠르게 연산을 할 수 있느냐를 결정짓는 핵심 기술로 대부분의 마이크로프로세서 기업들이 코어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의 마이크로프로세서 기업인 ARM사는 자사가 보유한 코어를 다른 반도체 기업에게 라이선스를 해줌으로써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 진입의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했다. ARM사의 코어는 인텔도 라이선스할 정도로 모바일 분야에서는 성능이나 절전 기술을 인정받고 있다. 또 최근의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예전과 달리 독자적인 제품이 아니라 메모리, DSP 등과 함께 하나의 IC로 집적화되는 추세여서 메모리 기업들의 시장 진입도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러한 시장 변화에 따라 다시 모바일용 마이크로프로세서 사업에 뛰어들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02년 200MHz PDA용 모바일 프로세서를 출시하고 HP에 일부 제품을 공급하는 등 이 시장을 장악해온 인텔에 도전장을 내놨다. 삼성전자(대표 윤종용)는 인텔에 앞서 667㎒의 저소비전력 모바일CPU까지 개발한 상태이며 내년에는 800MHz 제품까지 개발, 판매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DVD 등 일부 전자 제품과 스마트 카드 컨트롤러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투자를 확대할 예정이다. 하이닉스에서 시스템 IC사업을 떼어내 새로 설립된 매그나칩반도체도 마이크로프로세서 및 컨트롤러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 회사는 스마트카드 컨트롤러 및 32비트에서 8비트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마이크로컨트롤러를 구비하고 국내외 전자 업체들을 대상으로 영업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분야에 진출하는 벤처기업들도 늘고 있다. 지난 97년에 설립된 매직아이는 휴대형 멀티미디어 기기에 사용할 수 있는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개발, 지난해 하반기부터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 회사의 주력 제품인 MMSP-2는 2개의 ARM9 코어와 비디오 및 이미지, 2D 그래픽 등 4개의 전용 하드웨어 프로세서가 통합돼 MPEG4, DivX 3.11, 4.x, 5.x 등 다양한 표준 비디오 포맷을 디코딩한다. 에이디칩스는 국내업체로서는 처음으로 독자적인 프로세서 코어인 EISC를 개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소기업 여건상 EISC를 세계적인 기술로 키우는 데 한계에 부딪쳐 에이디칩스는 관련 기술을 정부에 기증했다.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발전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발전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지난 69년 인텔이 일본 전자계산기 업체인 비지콤의 프로그래머블 전자계산기 제품군에 사용될 칩 디자인을 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인텔은 비지콤에 공급했던 칩을 기반으로 지난 71년 11월15일 ‘4004’라는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세계 시장에 소개했다. 2300개의 트랜지스터들로 구성된 손톱보다도 작은 크기의 4004 마이크로프로세서는 46년에 제작된 최초의 전자 컴퓨터였으며 그 크기가 방 전체를 채울 정도로 컸던 에니악(ENIAC) 만큼의 컴퓨팅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4004 칩은 자동신호등 제어장치나 혈액분석기 등과 같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간단한 애플리케이션에서부터 나사의 파이오니아10 우주탐사선 프로그램에 두뇌를 제공하는 것과 첨단기기까지 사용됐다.

인텔은 4004를 이용해 4비트 마이크로컴퓨터를 선보였으며 지난 73년에는 더욱 강력한 8비트 마이크로 프로세서인 i8080을 내놓은 이후 모토롤라 등이 유사한 성능의 칩을 선보였다.

16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인 i8086과 MC68000 등은 지난 76년에 선보여 본격적인 개인용 컴퓨터인 퍼스널컴퓨터시대가 시작됐다. 80년대 이르러 IBM-PC에 채택된 i80386등 고성능의 32비트t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등장, 84년에 본격적인 대량생산에 돌입했다. 그리고 지난 91년에 MIPS와 NEC가 V4000을 발표, 대규모 데이터의 처리가 가능한 64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 시대가 등장하게 됐다.

특히 80년대 중반에는 RISC(단순명령실행형 컴퓨터)라는 새로운 구조의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등장, 컴퓨터의 성능과 처리속도에 있어 급속한 발전이 이루어지게 됐다. RISC는 기존의 CISC(복합명령실행형 컴퓨터)에 비해 명령어 수가 적고 명령어가 고정길이로 파이프라인 처리가 쉬워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성능 향상을 가져왔다.

게임기, 대형 PC 등을 중심으로 퍼졌던 64비트 프로세서는 올 들어 인텔과 AMD가 PC용 64비트 칩을 내놓으면서 확산되고 있다. 또한, 비트수의 진화와 함께 한 칩에 프로세서가 여러 개 들어가는 멀티코어 칩도 나오는 등 도약에 도약을 거듭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PC가 2010년까지 사람이 구술하는 모든 말들을 인식하고 실시간으로 답변하는 데까지 기능이 확장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는 PC의 프로세서가 초당 15억 번 혹은 100억 번 회전하는 강력한 힘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인터뷰-권기홍 에이디칩스 사장

 한국형 중앙처리장치(CPU)인 이아에스씨(EISC) 코어 개발 주역인 권기홍 에이디칩스 사장은 “반도체 엔지니어로서 우리만의 CPU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10여년전 연구를 시작했고, 성과를 거뒀습니다. 앞으로 많이 확산되었으면 합니다.”라며 개발 동기를 털어놨다.

권 사장이 창업하기 전인 지난 95년 이전에도 이미 업계에서는 시스템온칩(SoC)에 대한 열기가 뜨거웠다고 한다. 그러나 SoC에 사용되는 CPU 코어는 ARM, MIPS 등 외산 일색이었고 이들을 라이선스하는데 엄청난 비용이 들었다.

“SoC 산업을 한다는 것은 단순 임가공을 넘어 첨단 설계 사업을 한다는 것인데, 핵심이 되는 CPU 코어를 라이선스하게 되면 실질적인 수익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현 부경대학의 조경연 교수와 함께 EISC를 개발, 지난 2000년경에는 개발을 마치고 특허를 받는 등 성과를 거뒀다. 이를 토대로 현재의 에이디칩스를 창업하게 됐다.

EISC는 현재 일본은 제외한 전 국가에 특허를 받아놨다. 세계적으로 EISC의 기술이 독창적이라는 것을 인정받은 것이다.

권 사장은 EISC를 한 회사의 전유물로 두는 것이 아니라 국내에서 많은 반도체 설계자들이 활용하는 플랫폼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그는 “정부의 자금도 개발에 많이 들어갔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노고가 들어간 것이 EISC”라며 “이 기술을 모두가 공공적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권사장은 이미 수년 전부터 서울대학교, 한국과학기술원 등 많은 대학교에서 EISC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기증해왔다. 특히 최근에는 이 CPU코어를 공공성을 띈 연구기관에서 개발해 ‘국가대표 CPU’로 확산시킬 방안을 모색중이다. 김규태기자@전자신문, s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