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프랑스의 안티폴리스에서는 한국 e비즈니스 산업에 있어 의미있는 행사로 기억될 ‘제1차 글로벌 상호운용성 이벤트’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우리나라를 포함 미국·일본·영국 등 전세계 6개국 9개 업체가 참석, 한국에서 개발한 ebXML 솔루션 테스트용 툴(테스트베드)로 자사의 솔루션이 국제표준에 적합한지 여부를 테스트했다. ebXML은 유엔 전자거래·무역촉진포럼(UN/CEFACT)과 정보표준화기구인 OASIS가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는 국제 전자상거래 표준이다. 전세계적으로 ebXML 솔루션의 개발이 활기를 띠고 있었지만 이들 솔루션들이 호환(상호운용)되는지 여부를 테스트할 수 있는 툴이 없어,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제품으로 테스트를 한 것이다. 이 행사를 계기로 우리나라는 ebXML 솔루션 부문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인정 받았으며 현재까지 아시아권에서 일본 등을 제치고 대표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처럼 해외에서 우리나라의 e비즈니스 표준 수준이 높게 평가받고 있는데 반해 국내에서는 관심이 높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국내 e비즈니스 산업이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에서도 관련 투자가 소홀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e비즈니스 표준, 왜 중요한가?=전문가들은 기업간 크게는 국가간 거래에 적용되는 e비즈니스의 특징을 대표적으로 꼽는다. 즉, e비즈니스 솔루션 등이 표준화돼 있지 않을 경우 솔루션마다 상호 호환이 되지 않을 것이며 이는 각 솔루션을 채택한 기업들에 막대한 혼란과 함께 추가 비용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e비즈니스가 점차 복잡해지면서 단순한 상거래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다양한 정보들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강조된다.
장재경 전자거래진흥원 표준개발팀장은 “만약 각 분야에 해당되는 정보의 교환에 대해 표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정보교환시스템 자체에 대혼란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이를 해결하는 데도 천문학적인 비용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지속적인 관심 필요=e비즈니스 산업이 기대만큼 성장세를 보이지 못하면서 많은 업체들이 사업을 접거나 업종 전환에 나서고 있다. 단기적으로 수익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는 한국 e비즈니스 산업이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한 채 ‘그저 그런 수준’으로 추락하는 계기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의 역할은 중요하다. 정부가 표준화에 적극 나설 경우 민간에서도 의욕을 나타낼 것이며 이는 우리나라의 e비즈니스 경쟁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전자무역업체인 KTNET의 김동수 팀장은 “e비즈니스와 같은 신 산업에서는 표준이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아 업체·분야별로 다양한 표준이 나올 수밖에 없다”면서 “우리나라 산업 특성상 업계 자율적 보다는 정부차원에서의 표준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처간 중복은 곤란=정부의 e비즈니스 산업 중복지원은 e비즈니스 산업 태동기인 1990년대부터 시작했다. 최근의 경우 ebXML솔루션 테스트베드와 관련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간의 중복 지원이 논란이 됐으며 아직까지도 명쾌히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의 중복지원에 따른 피해는 매우 크다.
특히 표준 부문의 중복은 예산 낭비는 둘째치고 업계의 혼란과 이에 따른 막대한 손실로 이어진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산자·정통 양 부처가 업계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세밀히 관찰한다면 결코 중복지원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그런 의미에서 전자상거래표준화통합포럼(ECIF)의 역할은 크다. ECIF는 양 부처가 공동으로 설립했음에도 불구하고 각 부처의 협조가 없었던 것이 현실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ECIF가 제 역할을 못하는 계기가 됐다. 비록 문제가 불거지면 ECIF가 해결자로 나서고는 있지만 이에 앞서 ECIF에서 e비즈니스 표준과 관련된 전반된 사항에 대해 점검할 수 있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국내 표준 현황
국내에는 ebXML과 로제타넷이 지난 2000년부터 e비즈니스 분야의 양대 표준으로 자리잡아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들 이외에도 무역업계에서 사용하는 볼레로, 전자공시 부문의 XBRL, 의료업계의 HL7 등이 있으나 ebXML과 로제타넷에 비해서는 활성화 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ebXML은 국제기구 차원의 지원 아래 범용성을 앞세워 세력을 넓혀가고 있고 현장성이 장점으로 꼽히며, 로제타넷은 민간 산업체를 중심으로 보급되는 상황이다.
◇ebXML=지난 2001년 6월 국내 e비즈니스 표준 프레임워크로 채택되면서 다양한 산업영역에 적용되고 있다.
포스코와 관련된 100여개 공급사들이 ebXML을 적용한 SRM(Supply Relationship Management)시스템을 구축해 기업간 업무 자동화를 추진중이다. 기존에는 포스코가 발주를 하면서 공급사 담당자에게 연락을 취하고 공급사 측에서 다시 이를 확인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으나 ebXML 도입으로 모든 과정이 자동화돼 경비 절감 및 업무 정확도 개선 효과를 얻었다.
ebXML은 카드사의 여행산업에도 도입됐다. 삼성카드는 자사 여행서비스에 ebXML을 도입, 업무 효율화를 꾀했다. ebXML 시스템을 통해 공급업체와의 여행상품 데이터를 연동함으로써 수작업으로 처리되던 예약 및 결과확인 등의 업무를 자동화했다.
이밖에도 ebXML은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 기업은행의 방카슈랑스 사업부문 등에 쓰이며 실용성을 인정받고 있다.
◇로제타넷=지난 2001년 11월 한국전자산업진흥회가 발족한 로제타넷코리아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로제타넷은 인텔을 비롯한 글로벌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보급에 나서고 있어 이와 관련된 국내 기업들의 관심이 높다.
우선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로제타넷을 도입한 삼성전자가 국내외 표준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자사 반도체사업 분야에서 소니·인텔 등과 연계하고 있으며 구매 부문에서도 협력사 비즈니스 프로세스에 로제타넷을 적용하는 등 국내외 업체들과 함께 구현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노키아의 1차 공급망 협력사인 대덕전자가 8개의 PIP(Partner Interface Process)를 구현하는 등 총 10개 부문에 로제타넷을 적용했다. 이를 통해 대덕전자는 수요예측에서 주문관리 및 선적·결재에 이르는 전반적인 프로세스를 모두 로제타넷으로 구현해 많은 효과를 거두었다.
한편 지난 2003년에는 산업자원부가 중소기업의 로제타넷 구현을 장려하기 위해 허브 플랫폼 기술과 게이트웨이 서버를 개발해 로제타넷글로벌의 인증을 획득하기도 했다. 이는 국내에서 개발된 로제타넷 솔루션이 해외 솔루션과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 향후 확산 전망을 밝게 한 사례로 꼽힌다.
이호준기자@전자신문, newlevel@
◇기고: 글로벌 e비즈니스 표준 선도
-조현보 포항공대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hcho@postech.ac.kr
국내의 반도체나 자동차는 세계 시장을 휩쓸 만큼 날로 발전했다. 그만큼 우리나라 산업은 획기적인 발전을 거듭해 이제는 세계 산업을 이끌어 갈 만큼 막강해졌다. 따라서 우리나라 기업들은 국내에 국한된 소극적인 거래에서 벗어나 전세계 유수기업과의 광범위한 거래를 필요로 한다.
e비즈니스는 이와 같은 글로벌 기업간 거래의 효율성을 최대화하는 중요한 도구다.
e비즈니스에 있어 중요한 문제는 e비즈의 활성화가 국내에서만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e비즈니스의 성공적인 구현을 위해서는 서로 상이한 기업이 e비즈니스 시스템을 어떻게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통합하느냐가 관건이다. 국내 기업끼리는 통합이 쉬울지 모르나 외국 기업과의 통합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또 e비즈니스 환경에서 회자하는 용어들인 B2B·공급망관리(SCM)·애플리케이션임대서비스(ASP) 등 서로 상이한 세계 기업 사이의 유연한 통합을 요구한다. 거래를 하고자 하는 기업들만이 만나서 만든 맞춤식 통합은 엄청난 비용을 초래하게 된다.
그 대안이 바로 표준이다. 국내 전용 표준은 의미가 없을 것 같다. e비즈니스의 글로벌 통합 차원에서의 표준이 필요하다. 현재 미주 및 구주에서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글로벌 e비즈니스 표준 제정뿐만 아니라 기업간 상호운용이 얼마나 가능한 지에 대한 평가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의 산업 발전에 걸맞게 e비즈니스 분야에서 국제 표준 제정에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할 때다. 특히 기업간 상호운용성 평가의 표준 제정 및 저변 확대 추진을 위해 기술표준원, 전자거래진흥원, 포항공대 등이 중심이 되어 만든 비영리기구인 KorBIT은 국제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표준화기관인 NIST가, 유럽에서는 ATHENA 팀이 글로벌 e비즈니스 표준의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우리나라가 e비즈니스 부분에서 국제표준을 제정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만 발 벗고 뛰어서는 안된다. 정부의 담당자, 기업의 사용자, 표준 제정 전문가, 솔루션 개발 전문가 등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앉아야 세계가 인정하는 글로벌 표준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e비즈니스 분야에서 오랫동안 꾸준히 연구하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제회의에 가면 선진국의 e비즈니스 표준 담당자는 몇 년간 같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