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퓨쳐시스템 김광태 사장(1)

(1)시장의 흐름을 읽어라  

1987년 창업 후 약 3년 동안 퓨쳐시스템의 주된 사업은 기술용역이었다. 어느날 나는 회사 장래를 위한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아마도 퓨쳐시스템을 이끌면서 처음 내렸던 중대한 결단의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창업 후 3년 넘게 해 왔던 기술용역을 중단하고 자체 제품개발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용역을 중단한다는 것은 당장 회사의 주요 수입원을 끊는 위험한 일이었다. 자체 제품을 개발하는 것은 적지 않은 투자를 조건으로 하는 것이기에 사업적인 위험도 용역사업에 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기술용역만으로는 더 이상 회사의 지속적인 성장을 이끌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용역 3년, 이제는 자체 제품개발을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

먼저 어떤 제품을 개발할지를 결정해야 했다. 이를 결정하기 위해 먼저 당시의 IT 시장변화를 곰곰이 살폈다. 1990년대 초반 당시의 IT 환경은 개인용 컴퓨터의 확산에 따라 중앙집중식에서 PC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분산처리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PC의 활용도가 커질수록 기업은 거미줄과 같은 복잡한 네트워크를 구성하게 된다. 이러한 IT 환경의 변화에 주목한 결과, 네트워크가 대세라는 결론을 내리고 네트워크 전문기업으로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네트워크라는 큰 방향을 설정한 후 구체적인 제품 개발에 들어가기 위해 시장조사를 했다. 시장에서 원하는 제품 사양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시장성이 있고 경쟁력이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시장조사 과정에서 퓨쳐시스템의 최초 자체 제품으로 낙점한 것이 인터넷 통신프로토콜인 ‘TCP/IP’였다.

과학원 시절부터 인터넷을 접하고 다양한 기술 용역을 수행하면서도 지속적으로 TCP/IP와 연계된 네트워크 기술용역을 해왔기 때문에 관련 기술이 축적돼 있다는 장점도 있었고, 전세계에서 시장점유율이 가장 높은 미국 FTP사의 제품이 국내 시장을 독점하고 있었지만 근거리통신망(LAN)이 아직 도입 초기단계여서 기회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주위에서 이미 외산 제품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 경쟁력이 없을 것이라는 염려도 들려왔다. 그러나 이미 결정한 방향이었고, 주변의 염려로 그 방향을 바꿀 수는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100% 동의하는 결정이란 있을 수 없다. 귀와 마음을 반대의 의견에도 늘 열어두어야 하지만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결정을 돌린다면 영영 아무것도 결정할 수가 없다. 결단의 순간에는 정확한 판단력뿐만 아니라 용기와 배짱도 필요한 것이다.

개발된 제품의 이름을 ‘퓨쳐 TCP/IP’로 정하고 적극적으로 초기 영업을 전개해 나갔다. 그러던 중 93년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다운사이징 열풍이 시작됐다. 기업들은 대형 컴퓨터에서 수용하던 응용 프로그램이 개인용 컴퓨터(PC) 등과 같이 상대적으로 소규모인 컴퓨터들과 이들을 연결하는 근거리통신망(LAN)으로 이루어진 분산 시스템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재구성했다. 이러한 시스템에 TCP/IP 프로그램이 필수 요소였던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93년은 이렇게 퓨쳐시스템에 첫 번째 도약의 기회를 줬다.

92년 6억이었던 매출이 93년 한 해 14억 원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매출액 증가도 의미 있었지만 자체 제품의 판매로 얻은 결과였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었다. 94년도 들어서면서 차츰 시장 인지도와 시장점유율도 높아져 갔다. 시장 진입시에 국내 시장을 석권하고 있던 미국 FTP사 제품의 시장점유율을 추월하기 시작해 60% 가까운 시장 점유율을 확보했다. 또 94년에는 네트워크 전문기업으로 다양한 제품을 갖추기 위해 원거리네트워크(Wide Area Network)용 제품인 X.25 통신 보드를 개발했다.

당시 내무부에서는 주민전산망을 온라인화하는 업그레이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었는데, 이 프로젝트의 공동 납품업체로 선정되는 개가를 올렸다. 이러한 기회를 발판으로 93년부터 96년까지 매년 두 배 이상의 매출 성장을 이뤘다. 돌이켜 보면 사업에 있어서 시장 흐름에 맞는 제품을 선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 같다. 제품을 개발해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시기 또한 잘 맞아야 한다. 다운사이징의 열풍이 있었기에 90년도 초반 매년 두 배 이상의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고, 이후 인터넷 열풍을 타고 보안사업이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ktkim@futur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