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를 넘어 시스템 강국으로](2부)도약의 씨앗들⑬ASIC 서비스 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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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형 가전 제조업을 하는 김사장은 최근 고민에 빠졌다. 자사의 차기 주력 제품인 고성능 식기세척기의 성능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 인공지능 기능을 넣으려고 여러모로 방법을 찾고 있지만 쉽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에 반도체 전문가도 없을뿐더러 만일 있다고 하더라고 프로그래머블 반도체로 구현하자면 가격이 비싸지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전자신문을 찾아, ‘반도체 설계’라는 키워드를 넣고 검색을 했다. 검색결과 주문형반도체(ASIC) 서비스 회사들의 이름이 대거 떠올랐다. 대량 생산만 하게 되면 원하는 반도체도 저렴하게 얻을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는 회사의 특징과 장점을 살핀 후, 각각의 회사 홈페이지를 찾아가 문의 메일을 보냈다.

며칠 뒤 김 사장은 국내 유명 ASIC 서비스 회사와 연결돼 자신이 원하는 규격을 말하고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 5∼6개월 뒤면 칩이 나오고, 7∼8개월 뒤면 경쟁사를 제칠 놀랄만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김사장은 가슴이 뿌듯했다.

◇ASIC 서비스란=ASIC이란 ‘Application Specific Integrated Circuit’의 줄임말이며 우리말로는 주문형반도체로 번역된다. 용어 그대로 특정한 용도에 맞게끔 설계된 집적회로로 ASIC 업체들은 주문자가 원하는 반도체를 만들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국내에서는 반도체 하면 ‘D램’이라는 공식이 20년 넘게 자리 잡아 왔으며,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기업 계열에서 직접 반도체를 제작하거나 외국의 유명 반도체 회사에 설계를 의뢰하거나 표준품(ASSP)을 사와서 가전제품을 만들었다.

그러던 지난 90년대 초반부터 ‘ASIC 업체’라고 불리는 회사들이 한두 개씩 생기면서, 반도체 벤처 시대를 열었다. 90년대 초반에는 서두인칩(현 매커스), 씨앤에스테크놀로지, 아이앤씨테크놀로지 등이 삼성전자, 현대전자(현 하이닉스 및 매그나칩) 등과 관계를 맺으면서 새로운 산업군을 만들었다.

이후 십여 개가 넘은 ASIC 업체들이 등장, 코스닥 열풍이 불던 지난 99년경에는 하나의 테마주를 형성하는 등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됐다. <표참조>

◇파운드리와 가교 역할=ASIC 업체들이 하는 일 중에 대표적인 일이 파운드리 서비스 업체와 반도체 주문 및 설계 업체간의 ‘중간자’ 역할이다.

다윈텍 황금천 상무는 “대형 반도체 업체와 파운드리 업체간에 직접적인 관계도 있긴하지만 대부분은 반도체 제작시 ASIC 업체들이 중간에서 특정 파운드리에 적합하도록 반도체 설계를 마무리 짓는 일을 한다”고 설명했다.

TSMC는 상화마이크로 등을, 삼성전자는 다윈텍 등을, 매그나칩은 매커스 등을, SMIC는 다반테크 등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정 파운드리와 계약된 ASIC 업체들은 해당 라인의 속성 및 IP 등에 대해서 전반적인 정보를 갖고 있어 고객이 가져온 코어 설계를 토대로 마무리 작업을 해준다.

◇설계부터 생산까지=AISC 업체들은 파운드리 라인에 맞도록 ‘포팅’ 해주는 일과 함께 설계를 마무리 짓는 일도한다. 시스템 업체이든 반도체 설계업체이든 대부분 자기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코어’ 부분은 직접 그려온다. 그러면 ASIC 업체들은 이 코어 부분이 돌아갈 수 있도록 프로세서 부분 등을 설계해 준다.

이뿐 아니다. ASIC 회사는 이미 설계된 제품을 ‘반도체화’ 시키는 일과 함께, 고객의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반도체로 만드는 모든 과정도 책임지기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ASIC 업체 사장은 “유명 대기업들도 특정한 용도의 제품에 대해서 초기 단계부터 협의를 진행하기도 하며, 이를 통해 2∼3년 뒤의 차기 제품의 핵심 반도체를 ASIC 업체가 전적으로 책임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특정 업체의 제품 속을 열어보더라도 어떤 ASIC 업체가 한지 알 수 없으며, 고객들이 요구하는 성능을 내기 위해서 뒤에서 조용히 일하는 것이 이 업종의 특징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ASIC 업체, 서비스 업그레이드중=ASIC 업체들은 보다 반도체 설계 미세화되고 복잡화되는 경향에 따라 기술 업그레이드 작업에 한창이다. 0.13㎛ 및 90㎚ 등 미세 공정 서비스를 올 들어 본격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다윈텍, 상화마이크로, 디자인플러스, 슬림텍 ASIC 전문업체들은 미세공정 서비스에 대한 작업을 마쳤다. 이들은 또 미세 공정 영업에서도 국내에 머무르지 않고 해외 고객 잡기에 나섰다.

특히 앞으로는 한 업체가 반도체의 모든 부분을 설계하기 힘든 시스템온칩(SoC) 시대에 접어들면서 ASIC 업체의 중요성이 높아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ASIC 업체들은 칩에 범용적으로 사용되는 반도체 설계 자산(IP)을 다양하게 확보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이와 함께 ASIC 업체들은 영상, 휴대폰, 고전압 등 자사만의 특화된 분야를 집중적으로 연구개발해 ASIC 업체 전문화 시대에도 대비하고 있다.

◆인터뷰-다윈텍 김광식 사장

지난 97년 ASIC 전문업체인 다윈텍을 창업한 김광식 사장(44·사진)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비스 산업에 대한 몰이해로 사업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축구에서 미드필더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ASIC 업체는 반도체 산업의 미드필더입니다. 수비와 공격을 오가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데 대해서 인정을 해줘야합니다.”

김 사장의 말대로 ASIC 업체들은 자기 제품을 내놓지도 않고 전면에 드러나지 않으면서 일한다. 파운드리와 시스템 아키텍처의 중간에서 제 역할을 하지만 ‘서비스는 공짜’라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인식 때문에 지식 서비스업인 반도체 설계가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그래도 이제는 좀 나아졌습니다. 5년 전에 비해 이제는 ASIC 업체는 있어야 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ASIC 업체에게 국내의 반도체 산업의 구조적인 한계도 어려움이었다고 김사장은 말한다. 그는 “이제 삼성전자도 비메모리 전용 라인을 세우는 등 상황이 호전됐지만 그동안은 파운드리가 충분치 않아서 라인을 할당받는데 힘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특히 반도체가 호황일 때 외부 업체에 대한 할당량이 줄어, 호황에 기근을 겪는 현상도 발생했다고 전했다.

김 사장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수출의 이면에서 한 역할을 했다는 것에서 만족을 찾는다고 말했다. 그는 “고객이 원하는 좋은 칩을 개발해서 그것이 시스템에 장착돼 수출되는 모습을 볼 때 흐뭇하다”며 “이런 것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ASIC 업체 소사

 ASIC 업체들은 지난 10여 년간 부침을 거듭하며 우리나라 시스템반도체 산업을 대표해왔다. 지난 90년대 초반 설립된 매커스(옛 서두인칩), 아라리온, 씨앤에스테크놀로지 등 이른바 1세대 업체들은 반도체 설계 용역 서비스로 시작했지만, 초기에 반도체 업으로 사업을 영위하기 어려워 시스템산업으로 발을 들여 놓는다.

매커스는 셋톱박스 사업에 진출하기도 했으며 휴대폰 카메라용 부품업체인 씨티전자를 인수하는 등, 사업을 다각화해왔다. 아라리온의 경우 자사가 칩도 개발하고 그 칩을 사용하는 스토리지 시스템을 개발, 사실상 반도체보다 스토리지 업체로 더 많이 알려졌다. 씨앤에스테크놀로지도 영상전화기용 반도체를 개발했지만, 이보다는 영상전화기 회사로 유명세를 떨쳤다.

1세대 ASIC 업체들이 시스템업체로 전환하면서 ASIC 부분에서는 다윈텍, 상화미아크로, 슬림텍 등 2세대 주자들이 떠올랐다. 2세대 업체들은 전문 ASIC 업체를 표방하면서, 주문형반도체 등을 개발 생산하고 있다. 2세대들은 반도체 업내에서 사업을 진행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외국 파운드리의 디자인하우스들이 속속 생기면서 3세대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후지쓰가 디자인플러스 등 3∼4개 ASIC 업체와 관계를 맺고 있으며, SMIC도 다반테크를 통해 국내 반도체 업체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고 있다.

또한, 최근들어 1세대 업체들이 시스템보다는 반도체 쪽으로 다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매커스는 통신용 반도체로, 씨앤에스는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용 칩을, 아라리온은 휴대폰 카메라 컨트롤러 분야에서 신제품을 내고 표준품 반도체(ASSP) 사업을 본격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