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이튼 크리스텐슨 지음. 이진원 옮김. 비즈니스북스 펴냄.1만6500원
마이크로소프트(MS), 삼성전자, 인텔 등과 같은 기업들은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누가 봐도 성공한 이들 기업은 생존의 최우선 조건으로 과감한 혁신을 꼽는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지난 94년 “마누라 빼놓고는 다 바꿔라”라고 한 말은 파괴적 혁신의 전형으로 회자된다.
그러나 지금의 글로벌 기업 환경은 갈수록 냉엄해지고 있다. 포천 선정 500대 기업의 평균 수명은 채 40년을 넘지 않는다. 맥킨지 컨설팅의 보고서에 따르면 25년 후에 생존할 기업은 현 기업 수의 3분의 1에 불과할 것이라고 한다.
파괴적 혁신을 학문적으로 연구한 이는 ‘경영학의 아인슈타인’이라 불리는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하버드 경영대학원)다. 그는 97년 “세계적인 우량기업도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면서 파괴적 혁신론을 들고 나왔다.
이번에 소개하는 ‘미래 기업의 조건’은 크리스텐슨 교수의 혁신 3부작 중 완결판으로 성공한 기업이 왜 종종 파괴적 혁신에 의해 시장에서 밀려났는지, 성공의 좁은 문을 통과하려는 미래 기업은 어떻게 혁신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통찰력 있게 제시한다.
고속 성장을 하던 우량 기업이 어느 순간 갑자기 몰락해 버리는 사례는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반면 이들 선도 기업에 비하면 하찮아 보이는 기술과 전략으로 시장에 뛰어든 신생 기업이 급격하게 성장하는 경우도 있다. 벨의 전화기는 세계 최대 전신회사였던 웨스턴 유니언을 무너뜨렸고 스타벅스는 네슬레 등 거대 인스턴트 커피 제조사들을 위기에 빠뜨렸다. 국내에서도 저가 화장품 회사인 미샤가 기존 화장품업계를 긴장시키며 연 매출 1000억원대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장을 지배하던 선도기업들은 자만심에 빠졌기 때문에 실패한 것인가. 새로 시장에 진입해 성공한 기업들은 운이 좋았던 것인가. 그렇지 않다. 저자는 기존 기업들이 역설적으로 자신의 자원과 프로세스, 가치에 가장 적합하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만 열심히 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진단한다. 진입 기업들이 성공한 이유는 파괴적 혁신에 성공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파괴적 혁신은 속도가 빠른 신형 컴퓨터나 고선명TV 등 기존 제품의 개선을 의미하는 존속적 혁신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신규 시장을 창출하거나 기존 시장을 재편하는 혁신을 일컫는다는 게 저자의 일관된 생각이다.
이는 기존의 제품에 대해 초과 만족하거나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존 제품을 사용하지만 잠재 능력을 지닌 비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기존 기업들이 고객과 프로세스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적 조직을 구축해 파괴적 혁신을 일군 사례는 흔하다. 소니가 게임 사업을 별도 법인으로 분리, 관리해 성공한 것이나 휴렛패커드(HP)가 잉크젯 사업부를 설립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뒤늦은 혁신으로 경쟁에서 도태된 기업의 예를 들어보자. 소니는 음극선관 방식의 CRT를 개발해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을 주도하지만 기존 방식에 기반을 둔 개선만을 고수해 파괴적 혁신에 해당하는 LCD 중심의 평판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했다.
저자는 파괴적 혁신의 매력은 진입 기업이 선도 기업을 꺾을 수 있는 역전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 있다고 말한다. 원래는 기술 개발에 의한 혁신을 주로 의미했지만 이후 제품의 가치와 시장 영역에 대한 혁신, 브랜드에 대한 혁신으로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이런 의미에서 ‘미래 기업의 조건’은 한국 기업의 경영자들에게 미래를 예측하는 통찰력을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명승욱기자@전자신문, swm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