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환란에도 R&D만은 꾸준히
네트워크 보안 사업으로 차기 사업방향을 정한 후 사업을 위한 준비를 착착 진행해 갔다. 우선 신규사업을 위한 내부 조직을 준비했고 한편으로는 국내에서 보안 분야 최고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던 연구진들을 영입해 연구개발 진용도 갖췄다. 기술력 확보에 주력하기 위해 회사 인력의 70%를 연구개발에 투입하며 의욕적으로 투자했다.
하지만, 시련은 끊이지 않고 찾아왔다. IMF를 맞게 된 것이다. 흔히 IMF를 천재지변에 비유하듯이 경제 대혼란기를 맞은 것이다. 98년 초가 되면서 그동안 완만한 감소를 보이던 퓨쳐 TCP/IP의 매출이 윈도95의 도입과 극심한 경기 침체로 급격히 감소해 거의 판매가 일어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보안제품의 주요시장으로 초기 매출을 계획했던 금융권이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 빠져들면서 투자가 동결된 것이었다. 매출구조가 급격하게 악화되기 시작했다.
결국 98년 봄을 지나면서 퓨쳐시스템도 구조조정을 결정했다. 사업을 하면서 가장 심정적으로 괴로웠던 때가 이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동안 회사의 성장과 좌절을 함께하며 동고동락한 직원들을 내보내는 것은 정말 제 살을 깎아내는 아픔이었다. 하지만 회사의 생존을 위해서는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어려움 속에서도 연구개발은 계속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켰다. IMF가 시작되면서 부도가 나는 벤처기업들이 하나 둘 발생하고 있었고 어떤 기업은 아예 연구소를 없애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기술 개발이 가장 중요한 벤처기업에서 연구개발이 중단된다는 것은 벤처기업임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연구소를 제외하고 전체 인력 중에서 30% 정도 감원했다.
연구개발에 소홀하지 않은 덕에 극심한 경제 상황에서도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98년 8월 연구소에서 개발한 암호알고리즘인 크립톤(Crypton)이 미국 상무성에서 주관한 차세대 표준 암호알고리즘 결정을 위한 1차 평가대상 15개 후보 암호알고리즘에 선정돼 우리의 기술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아시아에서는 국내 우리 회사와 일본 NTT만 유일하게 참가했다.
또 98년 말에는 국내최초로 방화벽과 VPN이 통합된 시큐웨이스위트를 출시했다. 시장에 내놓자마자 업계의 관심을 끌었다. 보안제품의 대명사로 통했던 방화벽의 경우 불법적 접근을 단순 차단하는 데 그쳤지만 시큐웨이스위트는 VPN 기능까지 포함해 네트워크 전 구간에 걸쳐 보안 기능을 발휘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기업이 주로 활용해왔던 전용선을 인터넷으로 대체함으로써 획기적으로 네트워크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IMF로 매출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으며 20억 원 매출에 21억 원의 손실을 보았지만 99년 경기 회복과 함께 96억 원의 매출과 27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며 VPN 분야에서 시장 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는 보안업체의 선두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결과적으로 TCP/IP 사업을 영위하던 국내외 기업 대부분이 문을 닫았지만 퓨쳐시스템만이 유일하게 보안으로 사업을 전환해 성공한 업체로 남았다.
모두가 들떠 있던 밀레니엄의 해, 2000년에 퓨쳐시스템은 두 가지 중요한 결실을 이뤘다. 그동안 개발한 모든 기술을 집대성해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통합보안솔루션 시큐웨이스위트 2000을 개발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IMF로 인해 늦어졌던 코스닥 등록을 마친 것이다.
시큐웨이스위트 2000은 이후 약 1000여 곳의 고객사에 공급이 되며 국내를 대표하는 VPN/방화벽 통합장비로 자리매김했다. 퓨쳐 TCP/IP 이후 퓨쳐시스템 제2의 성장기를 이끈 퓨쳐시스템의 대표적인 제품이다. 시큐웨이스위트 2000을 주력으로 퓨쳐시스템은 2002년 200억원 매출을 돌파하게 됐다.
시큐웨이스위트 2000을 통해 나와 우리 직원들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보람과 자랑스러움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시큐웨이스위트 2000은 농협과 행정자치부에 공급됐다. 농협은 전국적 영업점 5000여 개를 연결하는 국내 최대의 VPN 프로젝트이며, 행정자치부 역시 전국의 모든 시군구 읍면동에 VPN을 설치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이런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수행해나가면서 나와 퓨쳐시스템 임직원은 우리나라의 정보보호 산업을 이끌어간다는 뿌듯함과 그에 못지않은 무거운 책임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정보보호 장비는 IT 시스템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특히 국가 정보시스템의 보안은 사이버상의 국방과도 같다. 국가 정보시스템의 보안을 외산 장비에 맡긴다면 사이버상의 자주국방을 실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고객의 소중한 IT자산을 보호하고 우리나라의 사이버 자주국방을 실현한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은 퓨쳐시스템을 있게 한 또 하나의 자산이다.
ktkim@future.co.kr
사진; 2000년 롯데호텔에서 퓨쳐시스템의 성장을 이끈 ‘시큐웨이스위트 2000’ 발표회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