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IT가 아니라 CT다!’
게임기술 관련, 정보통신부와의 주도권 싸움에서 열세를 보이던 문화관광부가 대대적인 반격의 기치를 들었다. 문화부는 문화기술(CT)을 앞세워 게임 뿐만 아니라 문화산업 전반에 걸친 기술개발 드라이브를 걸고 나섰다. 이를 위해 과기부·KAIST·ETRI 등과 업무제휴를 체결하는 등 적극적인 액션에 들어갔다.
문화부는 게임 관련 주무부처임에도 기반기술과 관련해서는 정통부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던 터라 기술개발 사업과 관련해서는 정통부의 눈치를 봐야하는 입장이었다. 특히 지난해 문화부는 게임기술 개발사업과 관련해 궁지에 몰리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게임산업개발원이 추진한 3D게임엔진 개발 및 통합플랫폼 개발 사업에 대해 감사원이 업무중복과 예산낭비 등을 이유로 감사에 들어간 것. 문화부는 1차 심사에서 관련 인사에 대한 징계요구를 받으면서 게임기술 개발 사업이 크게 위축되는 상황을 맞았다.
최근 진행된 최종 심사에서 문화부에 ‘기관주의’를 주는 선에서 매듭을 지어지기는 했지만 개발원은 이미 올초에 게임기술 개발 사업을 맡아온 게임연구소(인력과 예산 포함)를 문화콘텐츠진흥원으로 이관시키고 기술개발에서는 완전히 손을 떼버린 상황이다. 이것만 놓고 보면 정통부가 대승을 거둔 것으로 비춰지는 결과다.
하지만 문화부는 지난 4월 7일 문화콘텐츠진흥원에 ‘CT전략센터’를 설립, 개발원에서 수행하던 게임기술 관련 개발 및 지원 업무를 흡수시켰다. 이로써 문화부의 게임기술 개발 및 지원 업무는 주체만 개발원에서 콘텐츠진흥원으로 바뀌었을 뿐 그대로 지속되는 셈이 됐다.
그런데, 이같은 주체의 변화는 문화부가 게임기술을 바라보는 시각이 IT에서 CT로 급선회 했음을 은연중에 시사하고 있어 그동안 이어져온 정통부와의 헤게모니 싸움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문화부는 최근 과기부 및 KAIST 등과 잇따라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CT산업을 IT산업과는 별개의 산업군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이는 최근 들어 문화부 산하기관 인사들이 “이제는 CT를 IT에서 독립시켜야 할 때”라고 주장하는 것과 맞물려 정통부를 강하게 압박해 들어가고 있다. 정통부를 겨냥한 문화부의 대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 ETRI와 업무제휴
물론 문화콘텐츠진흥원으로서도 정통부와 문화부간에 그어져 있는 업무영역을 무시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이에 콘텐츠진흥원은 CT전략센터에서도 게임관련 기반기술과 요소기술은 배제하고 산업현장기술과 응용기술 및 인터페이스기술 등을 위주로 한 기술개발 사업을 진행해 나가기로 했다. 기존 개발원에 게임연구소를 두고 있을 때와 달라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하지만 콘텐츠진흥원은 개발원과는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대립해온 ETRI와의 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 조만간 업무협약을 체결키로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에 대해 콘텐츠진흥원의 설기환 인력기술본부 본부장은 “오는 31일 ETRI가 CT관련 기술개발 현황을 브리핑하기로 했다”며 “이를 계기로 진흥원이 ETRI가 개발한 기반·요소기술에 대한 1차 기술이전 기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ETRI의 경우 연구인력만 2000명에 달하는 국내 최고의 국책연구소인만큼 CT와 관련해서도 다양한 연구활동이 진행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활용되지 못하거나 연구과제로만 머무는 등 사장되는 기술이 많고, 콘텐츠진흥원은 개발인력이 부족해 진흥원이 ETRI와 산업체를 잇는 중간자 역할을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얘기다.
설기환 본부장은 이에 대해 “CT전략센터의 주요 기능도 게임기술 관련 전략센터 및 기술이전 센터,기능 및 가치평가센터, 표준화센터 등 4가지로 정리했다”며 “실질적인 개발기능도 가져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CT기술이 발전해 나가는 정도에 따라 차후에 결정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콘텐츠진흥원과 ETRI가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할 경우 게임관련 기반기술을 둘러싸고 문화부와 정통부가 벌여온 주도권 싸움은 의외로 싱겁게 끝나버릴 수 있다. 아직까지 ETRI가 정통부쪽 자금으로 주로 움직이고 있지만 지난해 10월 과기부가 부총리급으로 승격돼 과학기술 전반에 대한 연구개발(R&D) 부문을 총괄함으로써 정통부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등 환경이 크게 달라진 탓이다. 다시말해 과기부가 CT와 IT를 포함한 모든 분야의 기반·요소기술의 핵심부서로 부상하면서 더이상 정통부가 끼어들 틈이 없어져 버린 셈이다.
# CT전략센터의 주력은 게임
문화콘텐츠진흥원은 조만간 영화진흥위원화 및 방송영상산업진흥원 등과 기술개발 사업 관련 업무협약을 맺어 CT전략센터를 통한 CT핵심기술 개발과 육성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오는 2007년 께는 대회협력 기능 등을 추가해 독립기관인 ‘CT연구소’로 확대, 개편할 예정이다. 또 2009년부터는 CT의 글로벌화를 적극 추진해 한국이 CT분야에서는 세계를 선도할 수 있도록 성장시키는 주춧돌 역할을 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는 아직 문화부 차원의 계획일 뿐이다. 특히 영화진흥위원회나 방송영상산업진흥원 등으로부터 일부 팀을 흡수하는 일에 대해 콘텐츠진흥원으로서는 아주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콘텐츠진흥원이 CT관련 기관의 중심에서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위치인 것은 맞지만 다른 기관의 업무와 인원을 빼앗아 오는 것으로 비춰지면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콘텐츠진흥원은 당분간 게임기술 개발 및 육성에 집중키로 했다. CT전략센터의 총 인력 13명 가운데 8명이 게임산업개발원의 게임연구소 인력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실제로 콘텐츠진흥원이 CT전략센터를 통해 향후 2∼3년간은 경쟁력 있는 게임기술 개발을 집중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콘텐츠진흥원은 올해 총 예산인 600억원 가운데 96억원을 CT전략센터에 배정했고, 이의 40% 이상에 달하는 40억원을 게임에 투자키로 했다. 또 오는 2010년까지 게임에 4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이렇게 보면 CT전략센터는 게임기술 독립을 위해 문화부가 던진 승부수인 셈이다. 문화부가 최근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행보는 게임기술은 더이상 정보통신기술(IT)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콘텐츠 개발의 핵심이 되는 콘텐츠기술(CT)로 봐야 한다는 것이 요점이다.
<김순기기자 김순기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