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장인순 한국원자력연구소 고문(3)

(3) 실험중 폭발사고로 화상

자연에서 가장 다루기가 힘든 원소가 불소(F2)라는 원소이다. 다루기 힘든 만큼 잘 이용하면 그 혜택도 대단히 크다. 불소는 우선 우리들의 치아를 건강하게 하는데 쓰며, 원자력 분야에서 꼭 필요한 원소이다. 유학중 박사과정에서 불소화학을 전공하게 되었으며, 실험결과가 좋아서 학위 논문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앞으로 1년 정도만 하면 학위논문이 끝날 것이라는 기대 속에 실험을 강행(?)하고 있었다.

어느 날 오후 4시쯤으로 기억되는데 폭발성이 강한 불소 화합물을 합성하는 과정에서 큰 폭발이 일어나, 나는 완전히 뒤로 쓰러졌으며, 맨살인 오른손과 오른팔이 용매 때문에 불이 붙어 3도 화상을 입게 되었다. 왼쪽 팔과 배의 많은 부분은 1∼2도의 화상을 입어 구내에 있던 대학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그날 만일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는 안전유리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죽었거나 아니면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을 뻔했는데 다행히도 안전유리 뒤에서 작업을 해서 손과 팔 그리고 배에만 많은 화상을 입게 되었다. 특히 함께 연구실에 있었던 동료가 재빨리 소화기를 사용해 화재를 진압하지 않았으면 살아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사고로 40일간의 병원생활과 2년간의 통원치료로 학위가 3년이나 더 걸리게 되었다.

입원 중 허벅지에서 3조각의 피부를 떼어 오른손과 팔에 피부 이식을 했다. 이때 받은 육체적인 고통도 대단한 것이지만 가장 큰 고통은 나의 성공을 유일한 희망으로 삼고 살아가시는 고국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이 소식을 멀리서 듣고 졸도를 하셨다는 것이다.(나중에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모든 화상부위를 사진을 찍어서 보내드렸고, 어머님께서는 얼굴에 화상이 없어서 안심을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나를 괴롭혔던 것은 실험실에 대한 공포였다.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고 그 공포로 학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절망감에 참으로 힘든 나날을 보냈었다. 병원을 방문한 지도교수는 그 실험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학업을 포기할 것이냐, 만일 학업을 계속한다면 그 실험을 중단하고 박사논문은 처음부터 다시 써야만 하는 것이다.

참으로 어려운 결단을 해야 할 때에, 내 자신보다 고국에 계신 어머니를 실망시켜 드리는 것이 너무나 괴로워서 이 공포를 어떤 방법으로든지 벗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때 심정은 그 위험한 실험에 성공해야만 실험실의 공포를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지도교수 몰래 그 실험을 다시 했다. 이 실험을 하는 동안 지도교수에 대한 미안함과 실험에 대한 공포 때문에 참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 천만 다행으로 실험에 성공하였으나 그 실험 사실을 안 지도교수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 했었다. 그때 나는 지도교수에게 만일 이 실험을 포기하면 연구실에 대한 공포 때문에 학문을 더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이해를 구했다.

솔직히 이 실험에 성공하면서 실험실에 대한 공포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었다. 그때 만일 그 실험을 포기했으면 원자력과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내 몸에 많은 화상의 상처를 보면서 ‘상처뿐인 영광인가’하고 생각해본다.

어쨌든 불소화학과의 만남이 원자력과의 만남으로 이어졌고, 이 만남이 내게 최고의 행운을 안겨주었다. 내가 원자력인으로서의 숙명적인 삶을 걷게 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ischang@kaeri.re.kr

사진: 1976년 12월 캐나다 웨스턴온타리오 대학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어머니와 큰딸 지현이를 안고 기념촬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