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 팹 라인 "상식 파괴로 경쟁력 얻었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는 곳에 경쟁력은 숨어 있다.’

 삼성전자·하이닉스반도체 등 국내 반도체업체들은 미국·유럽·일본에 비해 한 발 늦게 반도체 팹 운영에 뛰어들었으나 ‘상식을 깨는’ 발상과 노력으로 세계 반도체업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국내 업계의 ‘상식 파괴’는 투자효율성 극대화로 이어지면서 선진 반도체업계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1개 팹을 2개처럼=하이닉스반도체는 통상 최대 월 5만∼6만장인 팹당 생산량을 10만장(200㎜웨이퍼 기준)으로 늘리는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D램 전용공장인 팹6와 팹7은 이미 10만장(생산량 기준)을 넘어선 지 오래고 D램·낸드플래시 혼용라인인 M8도 생산능력 10만장을 확보해 놓고 있다.

 장비업계 한 고위관계자는 “웨이퍼 투입 기준이 아니라 생산량 기준으로 10만장을 넘어선 것”이라며 “위험을 감수하면서 공격적인 시도를 한 것이 주효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하이닉스는 사실상 신규투자가 불가능했던 지난 2∼3년간 한정된 투자자원의 효율적인 투입을 위해 업계에서는 이례적으로 과감한 모험을 감행해 왔다. 이 과정에서 비교적 가격이 싼 국산 장비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면서 국내 장비업계의 발전에도 기여해 왔다.

 하이닉스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생산량이 10만장이라는 것은 실제로 팹을 추가로 짓지 않으면서도 1개 팹으로 2개 팹을 확보한 효과를 보는 것”이라며 “경영상태가 안 좋은 상황에서 임기응변으로 시작한 것이지만 팹 용량의 실질적 한계를 깨는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얻은 노하우는 300㎜ 팹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어 향후 ‘투자효율성’ 확보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단층에서 복층으로=반도체 제조에는 초미세공정이 활용된다. 따라서 클린룸이 들어가는 건물은 타 제품 제조라인에 비해 견고성이 요구된다. 이 때문에 지난 80년대 후반 삼성전자가 복층 구조의 팹(현재의 4라인과 5라인)을 기획하고 93년 실제로 복층 팹을 운용하기 시작한 것은 일대 사건이었다.

 복층팹 건설을 지시한 것은 이건희 회장. 이후 삼성전자의 모든 반도체 팹은 6라인-7·8라인-9라인 등으로 건설됐고, 최근 가동에 들어간 300㎜ 플래시메모리 전용라인(14라인)과 7월 가동에 들어갈 300㎜ 비메모리전용라인(S라인)도 생산품목이 메모리·비메모리로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같은 건물에서 양산된다. 복층팹은 단층팹을 2개 짓는 것에 비해 설비 셋업시간이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 특히 현재 수도권 공장부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삼성전자로서는 10년 전 복층 설계 구상은 탁월한 선택이 된 셈이다. 삼성전자의 영향으로 90년대 중반까지 복층팹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해외 선진업체들도 하나 둘씩 복층팹 개념을 도입하면서 200㎜ 팹 이후 일본 등에서도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심규호기자@전자신문, khsim@

사진: 통상 생산량의 두 배 가까이를 생산하고 있는 하이닉스반도체의 반도체 팹 생산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