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의 시초에 대한 또 다른 설의 하나인 당나라 때의 전기(傳奇), 특히 ‘규염객전’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전기란 전편에도 기술했지만 기이한 일을 전한다는 뜻이다. 문학의 초기 형태에서는 사실과 허구가 확연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전기 역시 기록인 것이다.
단지 직접 보거나 겪은 일이 아니라 들은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다. 재미있고 기이한 일을 들었는데 사실인지 확신은 안 가지만 그냥 여기 적어둔다는 식이라고나 할까. 이런 식의 기술 방법은 훨씬 후대에까지 전해져서 청나라 때 포송령은 전해 내려오는 기이한 이야기를 묶어 ‘요재지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요재지이’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 대부분은 귀신이나 요괴에 대한 것이다. 아무래도 그런 게 가장 기이한 일일 테니까. 하지만 협객이 등장하는 이야기도 몇몇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규염객전’이다. 규염객(揆髥客), 즉 붉은 수염의 사내가 등장하는 이야기다.‘규염객전’은 당나라 때의 문사 두광정이 쓴 것으로 ‘태평광기’라는 책에 전해져 내려온다. 간단한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 당나라의 건국공신 중 이정(李靖)이라는 사람이 아직 당나라가 건국되기 전인 수나라 말엽에 어지러운 세상을 평정할 꿈을 꾸며 홍불(紅拂)이라는 여자와 함께 천하를 떠돌다가 한 객잔에서 붉은 수염의 사내, 규염객을 만나 의기투합하여 의형제를 맺고 함께 다니다가 후일 당태종이 되는 이세민을 만나게 된다. 규염객은 사실 세력을 모아 수나라를 멸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려고 하는 야심을 가진 사내였는데 이세민이야말로 진명천자(眞命天子), 즉 황제의 재목임을 알아보고 자신이 모은 세력과 자금을 넘겨주고, 이정에게는 병법을 가르쳐준 후 멀리 이국으로 떠나 후일 부여국왕(夫餘國王)이 된다.
몇 가지 재미있는 점을 살펴보자.
규염객이라는 이 사내는 이정과 홍불 두 사람과 의기가 투합하자 행낭에서 사람의 심장과 간을 꺼내 칼로 조각을 내서 나눠 먹자고 한다. 그리고는 말하기를 ‘이자는 천하에 빚을 진 자로서 이 사람을 마음에 품은 지 10년, 지금 막 그를 잡았소. 이제야 근심이 풀리고야 말았소’라고 한다.
김용의 ‘사조영웅전’에서 곽정과 양강의 부친들이 객잔에서 전진칠자의 하나인 구처기를 처음 만나는 장면을 떠올려 보라. 김용이 규염객전의 바로 이 장면을 오마쥬한 것이다. 김용은 후에 중국의 역사와 민간설화에 나오는 삼십삼 명의 검객 이야기를 쓴 ‘삼십삼검객도’에서 ‘규염객전’에 대해 아래와 같이 기술하고 있다.
“ ‘규염객전’은 현대 무협 소설이 펼쳐질 수 있는 다양한 길을 제공하였다. 한편으로는 역사적 배경에 의존하면서도 완전히 역사에 의존하지 않음, 젊은 남녀 간의 사랑, 호걸인 남자와 미녀인 여자, 심야의 도주와 추적, 작은 객잔에서의 하룻밤과 뜻밖의 만남 …… 중략 …… 이렇게 많은 사건들이 문장으로 표현되었는데도 의외로 2000자를 넘지 않는다. 그러나 각 인물, 각 사건의 서술은 모두 살아 있는 듯 정교하다. 이렇듯 뛰어나게 정제된 예술적 수완은 실로 사람을 놀라게 만든다. 현대 무협 소설은 대체로 10만 자 가량의 글로 이루어졌으나 아직 ‘규염객전’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규염객이 후일 부여국왕이 되었다는 기술이다. 수말 당초에 부여라는 나라는 이미 사라진 후다. 그럼 부여는 어디고 규염객은 누구인가? 중국의 연구자들은 부여란 중국 남쪽에 있던 야만족의 나라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항일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 언론인이었던 단재 신채호는 그의 저서 ‘조선상고사’에서 규염객은 바로 연개소문이며, 부여는 고구려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가 부여국왕이 되었다는 기술은 연개소문이 쿠데타로 대막리지에 오른 사건을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연개소문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에 간단하게 기술된 외에는 의외로 드러난 개인사가 적다. 게다가 그의 젊은 시절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그가 물려받을 권리가 막리지라는 직책이었는데 젊은 시절 성격이 난폭해 다른 대신들의 반대가 많았다는 정도의 기술뿐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연개소문이 젊은 시절 죄를 짓고 중국으로 도망갔다가 후일 돌아왔다는 식의 해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단재 신채호의 이 해석은 사학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데, 역사소설가 유현종의 ‘연개소문’을 비롯한 소설들에서는 자주 인용되고 있다. 젊은 연개소문이 중국 땅을 그냥 유랑한 것이 아니라 이왕 온 김에 이 땅을 삼키려는 야심을 품고 세력을 키우다가 결국 실패하는 과정에서 당태종 이세민과 원한관계를 맺었다.
연개소문은 수나라 말엽의 혼란이 정리되고 당나라가 서는 것을 보고 고구려로 귀국해서 침략에 대비한 체제정비에 힘을 쏟았다. 후에 당태종 이세민이 유독 연개소문에 대해 원한을 드러내는 발언을 자주 하고, 결국 무리한 원정을 했다가 눈알까지 잃고 패주한다는 이야기는 역사적으로는 터무니없는 것일지 몰라도 소설적으로는 재미있을 법한 구성이기 때문일 것이다.연개소문과 이세민의 악연에 대한 기술은 중국 쪽에 많이 남아 있다. 바로 중국의 전통문화 중 하나인 경극에 등장하는 것이다. 어쩌면 연개소문은 중국의 경극에 등장하는 유일한 우리민족일지도 모른다.
연개소문이 등장하는 경극은 ‘막리지비도대전’, ‘살사문’, ‘독목관’ 등 여러 작품이 있는데 내용은 어느 것이나 대동소이하다. 고구려를 침략한 당태종을 맞아 싸우러 나온 연개소문이 비도를 던져 궁지에 몰아넣는데, 당나라 장수 설인귀가 연개소문을 죽이고 당태종을 구해낸다는 이야기다.
물론 실제로는 이 때 연개소문이 죽지 않았으니 이 이야기는 설인귀의 용맹을 찬양하고 연개소문을 깎아내리는 허구에 불과하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민족의 영웅을 모독한다고 해서 북한이 중국에 요구, 상기한 경극들을 공연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깎아내린다는 것은 그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중국의 문헌에 연개소문과 설인귀의 대전에 대해 아래와 같은 시로 찬양한 것이 있다.
“비도가 일어나 공중에서 춤을 추네화살과 비도가 먼지를 일으키며 대적하네비도가 화살을 대적하니 노을빛이 찬란하네화살이 비도를 대적하니 화염이 일어나네공중에서 두 보배가 대적하니 두 장수 모두 신통력으로 겨루네”
비도라는 건 연개소문이 다섯 자루의 칼로 비도술을 사용했다는 전설을 말하는 것이고, 화살이란 설인귀가 사용했다는 신전(神箭)을 말한다.
한국에서 제작되는 무협관련 작품들의 공통적인 한계가 중국인이 주인공이 되어 활약하는 이야기를 한국인이 왜 쓰는가찍는가그리는가제작하는가 하는 것이다. 한민족이 중국에 건너가 활약하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어떻게 보면 비판을 피해가는 잔재주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재에 따라서는 그런 비판조차 무색해지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것이 ‘규염객전’을 소개한 이유다.무협작가로 ‘대도오’, ‘생사박’, ‘혈기린외전’ 등의 작품이 있다. 무협게임 ‘구룡쟁패’의 시나리오를 쓰고 이를 제작하는 인디21의 콘텐츠 담당 이사로 재직 중이다.
[사진설명 : 사진 순서대로..]
◇‘삼십삼검객도’ 중 규염객의 그림.
◇현대에 그려진 연개소문 상상도.
◇‘막리지비도대전’을 표현한 그림. 상단에 당태종, 우측 하단이 비도를 던지는 연개소문, 좌측 하단이 화살을 쏴 비도를 떨어뜨리는 설인귀.
◇‘삼국사기’ 연개소문에 대해 기술한 부분.
◇민족기록화에 그려진 연개소문.
◇캐릭터화 된 연개소문. 다섯 자루의 칼을 찬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좌백(左栢) jwabk@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