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그램 이현기(31) 개발실장은 X박스용 타이틀 ‘킹덤언더파이어-더크루세이더즈(이하 더크루세이더즈)’ 개발자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지난해 북미시장에 유통한 ‘더크루세이더즈’는 전세계에 45만장이 팔린 히트작이다.
그래서 그는 게임판에서 개척자로 불린다. 메이저리그에 박찬호가, LPGA에 박세리가 있다면 세계 콘솔시장엔 이현기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더크루세이더즈’ 때문에 한국 게임에 대한 이미지도 크게 개선됐다는 게 중론이다. ‘더크루세이더즈’ 후속작 ‘히어로즈’는 올해 출시될 X박스 타이틀 가운데 최고 기대작으로 떠오른 상태다.
세계무대에서 살아남는 개발자가 되는 게 꿈이었다는 그는 이제 세계적인 거장을 꿈꾸고 있다.
‘더크루세이더즈’와 함께 세계적인 개발자로 떠오른 그는 지난 ‘E3 2005’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미국의 유명 게임웹진 게임스팟에서는 이번 E3에 발표된 X박스 게임 가운데 ‘더크루세이더즈’의 후속작 ‘히어로즈’를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았다. 미국 블리자드가 개발중인 ‘고스트’도 ‘히어로즈’보다 주목받지 못했다.
“처음에는 콘솔게임을 만들겠다는 시도 자체가 우습게 여겨졌죠. 그것도 콘솔게임으로는 처음으로 전략과 액션을 결합한 신장르를 선보이겠다고 했으니 여기저기서 비아냥거렸죠. 해외에선 ‘한국인 주제에 꿈을 깨라’며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태도였어요. ”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게이머들에게 강열한 인상을 심어주는 게임, 세계무대에서 살아남는 게임을 개발하겠다는 신념은 강철처럼 굳어갔다.
결국 30개월간 제작비 40억원이 투입된 ‘더크루세이더즈’는 MS를 통해 전세계 유통되면서 한국 게임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수립했다.
# 타고난 게임 개발자
“게임 개발 이외에는 특별히 잘하는 게 없다”는 그는 몇안되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출신 게임개발자다. 온라인게임 ‘마비노기’를 개발한 넥슨의 김동건 실장이 전산학과 동기다. 게임에 대한 열정 때문에 잘나가는 대기업 연구원 자리도 마다했다.
지난 96년 학교를 졸업하자 곧바로 ‘스튜디오 자코뱅’이라는 회사를 차렸다. 이 때 ‘저주받은 걸작’으로 유명한 ‘디어사이드3’가 만들어졌다. 어드벤처 장르인 이 게임은 철학적 내용과 컬트적 이미지로 최근까지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돌이켜보면 초등학교 시절부터 간단한 베이직 게임을 만들곤 했어요. 대학시절엔 PC용 슈팅게임 ‘폭스레인저2’ 개발에도 참여했고요.”
‘디어사이드3’ 이후 5년간 공백기를 갖고 있던 그는 2001년 판타그램에 합류했다. 재능을 한눈에 알아본 판타그램 이상윤 사장은 그에게 ‘더크루세이더즈’ 프로젝트를 맡겼다.
“크루세이더즈가 노리는 것은 딱 하나였어요. 메이저시장에 들어가 살아남는 것이었죠. 하지만 콘솔이라는 플랫폼은 결코 만만치 않았어요.”
그동안 콘솔이라는 불모지에 도전하면서 그는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개발환경이 생소해 일일이 독학으로 해결해야 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후속작 ‘히어로즈’가 빠르게 개발되고 있는 것도 이미 ‘산전수전’을 다겪었기 때문이다. ‘히어로즈’는 ‘더크루세이더즈’보다 개발기간이 2년 가까이 앞당겨져 오는 9월 전세계에 출시될 예정이다.
# 세계적 콘솔 개발자로 발돋움
그는 최근 판타그램이 일본의 유명 게임개발자 미즈구치 데츠야와 공동으로 개발키로 한 ‘나인티나인나이츠(N3)’의 크리에티브 디렉터도 맡기로 했다. 새로운 기획이나 콘티를 창조하는 일이다. ‘N3’는 MS의 차세대 게임기 X박스360 게임으로 개발돼 세계시장에 뿌려질 예정이다.
“ ‘더크루세이더즈’나 ‘히어로즈’는 다소 마니아틱한 장르에요. 보다 대중적인 것은 액션 장르죠. ‘N3’는 전략보다 액션이 강조된 타이틀이 될거에요. 판타그램으로서는 처음으로 밀리언셀러를 노리는 타이틀이기도 하죠.”
그는 콘솔 게임 개발을 고수하는 이유로 “온라인게임에 흥미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온라인게임은 게임이라기보다 커뮤니티 서비스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래서 온라인게임도 PC보다 콘솔 플랫폼에서 먼저 성공을 거두고 이후 PC로 진출하겠다는 생각이다. 현재 개발중인 ‘히어로즈’에 ‘더크루세이더즈’에서 맛보지 못한 여러가지 네트워크 플레이들이 추가되는 것도 이같은 포석이다.
한번 보면 생각나는 게임을 만든다는 게 지론인 그는 “ ‘더크루세이더즈’는 아직 85점밖에 안된다”며 “해외 언론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는 게임을 꼭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장지영기자@전자신문 사진=한윤진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