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낭콩, 초파리, 대장균 등과 함께 대표적인 실험용 생물로 꼽히는 애기장대가 최근 유전학계를 뒤흔들고 있다.
애기장대는 폭 5㎝, 키 20㎝ 정도로 크기가 매우 작아 좁은 실험실에서도 재배하기 쉽고, 한 세대가 한 달 반 정도밖에 안 돼 유전학 연구에 이상적인 재료로 쓰여 왔다.
그런데 지난 3월 24일자 ‘네이처’지에 미국 퍼듀 대학의 로버트 프루이트 교수가 애기장대 실험을 통해 멘델의 유전법칙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논문을 발표했다.
멘델의 유전법칙은 핵의 염색체, 미토콘드리아 그리고 엽록소에 들어 있는 DNA를 통해 부모로부터 자손에게 생명 정보가 전달된다는 내용이다. 이때 각각 부모의 유전자가 부족하거나 없으면 기형 생물이 태어난다. 프루이트 교수는 이러한 법칙에 근거해 애기장대의 불안정한 유전자를 연구했는데, 그 결과 이상하게도 열 그루 가운데 한 그루 꼴로 기형이 아닌 정상적인 애기장대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정상 씨앗이 섞여 있을 것으로 생각해 몇 번이나 실험을 반복했으나 언제나 같은 결과가 나왔다. 멘델의 유전법칙에서 벗어난 결과가 나온 것이다.
프루이트 교수는 이러한 실험 결과를 컴퓨터의 임시 저장고인 ‘캐시(cache)’ 개념으로 설명한다. 컴퓨터에 과부하가 걸릴 때 CPU가 처리할 내용을 잠시 캐시에 저장하는 것처럼, 세포의 어딘가에도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치유능력이 저장되어 있어 이것이 유전자의 결함을 보완해 준다는 것이다.
이론이야 어찌됐든 유전학의 바이블과 같은 멘델의 유전법칙이 수정돼야 할 때가 도래한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