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출연연구기관이 서로 물고 물리는 ‘적자생존’ 경쟁을 펴고 있다. 이미 이들 기관은 기술 개발 방향의 코드를 제대로 찾지 못할 경우 정체성까지 잃고 국가 핵심 R&D의 주도권을 빼앗기거나 예산 증가폭이 현격히 둔화되는 생존경쟁 체제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28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생명연-화학연을 비롯, KAIST-ICU, 항우연-기계연, 에너지연-원자력연-기초연-지질연, KISTI-KISTEP 등이 국가 R&D사업수행과 관련한 주도권을 놓고 얽히고 복잡 미묘한 관계를 형성하는 등 보이지 않는 ‘생존경쟁’이 치열하다.
◇생명-화학분야 예산역전=출연연 가운데 역할과 위상이 극명하게 갈린 경우는 생명연과 화학연이다.
양 기관 모두 신약개발이 핵심 R&D지만 한창 BT붐이 일던 시기의 ‘변화의 코드’를 얼마나 맞췄느냐에 따라 판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5년 설립 초기 5억 원의 예산 규모로 출발한 생명연은 독립 법인이 된 99년 360억 원이던 것이 3∼4년 전부터는 BT붐에 편승, 초고속 성장가도를 달리며 올해 956억 원의 예산고지를 점령했다.
이에 반해 화학연은 지난 85년 89억 원, 99년 478억 원으로 예산 규모면에서 생명연을 앞서 나갔지만 BT붐을 좌시한 결과 올해 예산 801억 원으로 규모면에서 생명연에 추월당했다. 지난 2003년 부설기관으로 떨어져 나간 안전성평가연구소 예산을 포함하더라도 1015억 원으로 생명연 예산과 큰 차이가 안난다.
◇에너지 분야선 용쟁호투=에너지 분야에서는 에너지연과 원자력연, 기초연, 지질연 등이 대체 에너지 개발의 주도권을 놓고 뒤엉켜 있는 양상이다.
에너지연의 경우 풍력과 태양전지 연구를 수행하고 있지만 주력사업은 수소연료 연구다. 이에 반해 기초연은 한국형 핵융합로(KSTAR) 연구, 원자력연은 수소연료 연구 참여와 해수 담수화 원자로 연구에 주력하고 있는 반면, 지질연은 가스 하이드레이트 사업단에 승부를 걸 태세다.
이와 함께 KAIST와 ICU도 IT분야의 특성화 대표주자를 자임하며 과학기술고생을 대상으로 치열한 유치전을 전개하고 있으며, 항우연과 기계연은 소형열병합 발전시스템의 가스 터빈 R&D의 주도권을 둘러싼 물밑경쟁을 펴고 있다.
KISTI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간에는 오는 2009년까지 2000억 원이 투입될 국가과학기술종합정보시스템 구축 사업의 주관을 둘러싼 선점 경쟁이 뜨겁다.
출연연 관계자는 “서로 간 노골적으로 드러내 놓지 않을 뿐이지 보이지 않는 알력다툼이 심한 편”이라며 “선의의 경쟁을 통한 기관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직까지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대전=박희범기자@전자신문, hb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