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백의 武林紀行](15)중국 환상에서 깨어나 한국 무협에 매달려라

사대작가 외에 80년대를 풍미한 작가들로는 검궁인, 와룡강, 천중행천중화(한 사람은 스토리, 한 사람은 집필을 주로 한 공저자들이다), 냉하상, 청운하, 내가위, 유소백, 사우림 등이 기억될만 하지만 자세한 소개는 생략한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80년대 무협계는 몇 가지 이유로 쇠퇴하고 대부분의 작가가 떠나는 시기가 88년, 89년이다. 이때 마지막까지 남아서 작품 활동을 하던 용대운은 현 시대 최고의 무협작가이면서 동시에 80년대 무협과 90년대 무협을 이어주는 고리 역할을 했다는 점 때문에라도 언급할 가치가 있다.

그는 원래 83년에 두 작품을 써서 출간했으나 출판사에서 임의로 와룡생을 저자로 내세웠고, 작품의 제목과 내용을 바꿔 출간하는 바람에(예전에는 흔했던 일이다) 용대운 본인의 이름을 알리는 데는 실패했다. 그후 한동안 무협계를 떠나있다가 90년 경 다시 돌아온 용대운은 처음에는 야설록 이름으로, 나중엔 야설록 공저라는 이름으로 작품들을 낸다(이것 역시 예전에는 흔했던 관행이다).

이때 낸 것이 ‘마검패검’, ‘무영검’, ‘탈명검’ 등 그의 초창기 대표작이다.그후 한 번 더 무협계를 떠났던 그는 94년 ‘태극문’을 발표하면서 다시 재기하는데, 이것이 크게 히트해서 90년대 무협시대를 열었다. 이후 ‘독보건곤’, ‘냉혈무정’ 등을 냈고, 스포츠 투데이에 연재함으로써 시작된 ‘군림천하’는 현재 15권까지 진행되면서 한국무협 최고의 대하드라마를 만들어 가고 있다.

용대운의 개인적인 굴곡에서 보듯이 한국 무협은 여러 번의 부침을 거듭했다. 특히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까지는 무협계의 암흑기였다. 그러다가 93년 도서출판 뫼, 초록배매직스 등이 무협 출판을 시작하고 94년 ‘태극문’이 탄생하면서 무협 소설계에 재기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그 다음해인 95년에는 필자의 ‘대도오’가 출간되어 신무협이라는 조어를 만들어내며 장경, 진산, 풍종호, 이재일 등 신인 작가들이 다수 등장하는 시초가 되었다.

이들은 80년대에 독자들로 있으면서 무협의 매력에 빠져있던 세대이면서 동시에 당시 무협의 정형성과 엉성함, 캐릭터의 평면성에 질려버린 세대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들 신무협 작가들은 소재 면에서 참신성을 추구하고 캐릭터에 있어서는 인간적인 면모를 부여함으로써 입체적으로 그리려 시도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소설을 소설답게 쓰려고 노력했다.

자연 집필 기간이 길어졌고 무협 본연의 매력인 통쾌함과 대리만족성이 떨어지게 되면서 옛 무협의 매력을 그리워하는 독자들로부터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문학을 시도함으로써 무협 본연의 매력을 잃었다는 비판이었다.

2000년대 초 전동조의 ‘묵향’이 나왔다. ‘묵향’은 내용과 서술방법에 있어서는 80년대 무협을 닮았지만 최초로 퓨전을 시도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마교의 교주인 주인공이 팬터지 세계로 넘어가 활약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인터넷에서 순수한 재미로 연재를 시작했던 많은 작품들이 책으로 출간되기 시작했다. 이때를 기준으로 통신 무협세대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될 것이다.

통신 무협의 특징은 퓨전이라는 것도 있지만 유기선의 ‘극악서생’을 거쳐 검류흔의 ‘비뢰도’로 이어져서 팬터지와 무협의 결합이라는 것보다는 오히려 청소년에게 쉽게 다가가는 가볍고 평이한 스토리와 구조에 개그 프로에 나오듯 언어유희 위주의 대사와 문장들을 사용하는 소설들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이는 무협 및 팬터지 소설의 주 독자층이 청소년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이로써 1961년 ‘정협지’로 시작되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 무협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여기서 필자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왜 우리는 무협소설을 읽는가. 왜 한국인이 ‘중국을 배경으로 중국인이 활동하는 이야기’를 읽는가?

전자의 질문에 대해서는 팬터지의 공간으로서의 중국이라는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무협 소설의 배경인 중국은 중국인에게는 현실에서 땅을 디디고 있는 곳이지만 한국인에게는 상상의 여지를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도입된 팬터지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소림사가 있는 숭산은 실제로 가보면 우리나라의 남산 크기밖에 안 된다. 하지만 남산에 호랑이가 있다고 하면 다들 웃겠지만 숭산에 호랑이가 있다고 하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게 한국인이다. 모르는 만큼 상상력의 여유공간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에 와서 생긴 경향이 아니라 과거에도 그랬다.

조선시대 말엽의 영웅소설과 군담소설, 즉 ‘박씨전’이나 ‘구운몽’ 같은 한글 소설의 90%가 중국을 배경으로 중국인이 주인공으로 나와 활약하는 이야기였다. 한국에서 중국은 팬터지의 공간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꿈같은 이야기,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비웃음의 대상이 아니라 즐김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현실의 중국과 팬터지의 중국을 구분하지 않음으로써 성립되던 무협적 세계의 애매함은 한편으로는 현실의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는 가까운 땅으로 바짝 다가옴으로써, 다른 한편으로는 보다 팬터지적인 공간이 소개됨으로써 양쪽에서 공격을 받아 토대가 흔들리게 되었다.

더 이상 우리는 소림사에 달마역근경을 익힌 전설의 고수가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경공이니 장풍이니 하는 것이 다 중국인 특유의 허풍임을 알게 되었다. 모르고 있을 때는 팬터지의 영역이었지만 알게 되면서 중국은 현실의 땅으로 끌어 내려진 것이다.

한편으로 팬터지의 영역은 더 이상 중국이라는 애매한 공간을 빌려오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그냥 환상의 땅 아르카디아라고 해도 이야기는 얼마든지 펼쳐 나갈 수 있다. 작가들도, 독자들도 더 이상 그런 것을 따지지 않게 되었다. 그럼으로써 무협의 존재기반 자체가 흔들리게 된 것이다.

이건 13회에서 말했듯이 이미 중국에서도 보이고 있는 현상이다. 고답적인 무협의 법칙들을 무시, 파괴하고 이질적인 요소인 환타지와 섞어놓은 퓨전 경향, 청소년에게 쉽게 다가가는 개그 경향의 소설이라는 것은 무협이 현대의 대중문화와 섞이면서 반드시 겪게 될 하나의 길인지도 모른다.한편으로 우리는 보다 한국적인 무협을 추구해야 한다. 이것은 다시 ‘한국을 배경으로 한 한국인의 무협’과 ‘무협의 틀을 빌어 한국의 이야기를 하는 것’ 두 가지로 대별될 수 있는데, 전자는 고향하와 성검이 1969년에 발표한 ‘뇌검’을 필두로 김병총의 ‘대검자’, 유재주의 ‘검’, 이병천의 ‘마지막 조선검 은명기’, 최근에는 장산부의 ‘무위록’ 등이 나왔으나 무협적이지 않거나, 역으로 한국적이지 않아서 한국적 무협 소설이라고 말하기엔 부족하다.

‘무협의 틀을 빌어 한국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한 시도는 92년 아침에서 나온 김영하의 ‘무협학생운동’이 처음이다. 이 작품은 학생운동사를 무협식 용어로 기록한 것이다. 풍자소설의 하나로 볼 수 있겠다. 유하는 무협용어로 시를 써서 ‘무림일기’라는 시집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성격은 다르지만 무협적 상징을 다른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예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는 같은 계통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 80년대 무협의 대표작가였던 사마달도 유청림과 공저로 가상 정치 무협소설 ‘대권무림’을 낸 바 있다. 그 후에 그는 무협식으로 한국의 경제계를 그린 ‘무림경영’을 쓰기도 했다.

‘한국적 무협소설’은 중국을 배경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켜 만들어온 무협 소설들에 대해 한국인으로서 당연히 갖게되는 정체성의 혼란에 대한 경계와 반감을 표현하고 있다. 한국을 무대로 한 한국인의 대중 소설, 읽을거리를 찾는 욕구는 당연히 있을 법하며, 그런 점에서 무협의 한국화는 반드시 추구되어야 할 길인지도 모른다.무협작가로 ‘대도오’, ‘생사박’, ‘혈기린외전’ 등의 작품이 있다. 무협게임 ‘구룡쟁패’의 시나리오를 쓰고 이를 제작하는 인디21의 콘텐츠 담당 이사로 재직 중이다.

[사진설명 : 사진 순서대로..]

◇ `묵향` 온라인

◇ `용대운`

◇ 용대운의 `군림천하`

◇ 좌백의 `대도오`

◇ 전동조의 `묵향`

◇ 검류흔의 `비뢰도`

◇ `대도오`를 원작으로 한 만화 `남자이야기`

<좌백(左栢) jwabk@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