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를 넘어 시스템 강국으로](4부)시스템반도체를 이끄는 사람들①

[메모리를 넘어 시스템 강국으로](4부)시스템반도체를 이끄는 사람들①

①황기수코아로직 사장

“‘우리’는 학교 다닐 때 별로 나서는 부류가 아니었습니다. 있는 듯 없는 듯 주어진 일에 충실 하는 쪽이었지요.”

황기수 코아로직 사장(54)은 한국 시스템반도체 산업의 산증인. 그의 한마디가 업계의 대표성을 가질 만큼 영향력도 크다. 그러나 그를 비롯한 그가 지칭하는 ‘우리(이공계 전문인)’의 범주에 있는 사람들은 소위 ‘튀지’ 않으면서 조용히 비메모리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

“스타가 되기보다는 후배들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고, 같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데 일조했으면 합니다. 사실 아직 코아로직은 성공한 기업이 아니며, 최소한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전문성과 다양성을 모두 갖춘 시스템반도체업체가 다수 탄생해야 합니다.”

황사장은 말 수가 적다. 하지만, 한 번 내뱉은 말은 책임지기로 유명하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는 처음에는 황사장을 어려워 한다. 그러나 한 번 일과 전문분야에서 서로 말이 통하면 그의 열정과 솔직함 때문에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그래서 그 주변 친구들은 상당수가 일을 하면서 같은 공감대를 형성한 사람들이다.

시스템반도체 스타기업을 운영하다 보니 많은 수식어가 황사장을 따라다닌다. ‘한국 시스템반도체 업계의 산증인’, ‘신흥 벤처 부자’, ‘IT 업계의 떠오르는 리더’ 등이 그것이다. 그의 사무실에는 이러한 수식어를 증명하듯 십수 년 전부터 받아온 상패와 그가 표지모델로 올라 있는 잡지 등이 즐비하다.

황 사장이 반도체 업계의 리더가 될 수 있었던 계기는 다소 의아하지만 군대를 제대하고 찾은 청계천 전자상가에서 나왔다. “솔직히 대학 다닐 때 전자공학에 관심없었습니다. 전자공학이 체질에 맡는다고 생각한 것은 청계천에서 TV를 수리하면서부터입니다. 납땜하고 부품도 교체하면서 TV의 원리를 보다 보니 전자공학을 알게 되었고 취미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는 청계천의 경험을 토대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 원서도 독파하는 등 학업에 매진했다. 이때 열심히 해서 결국 박사학위도 받고 통신과 반도체 분야에서 일할 수 있게 됐다.

코아로직 창업 이전의 경력도 화려하다. 삼성전자, 금성통신연구소 등에서 반도체 및 통신 기기의 경험을 쌓은 그는 미국 텍사스 대학에서 공학박사학위를 받고 GE에서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89년 현대전자로 옮긴 후 시스템IC 설계담당 이사, 연구소장, 사업본부장을 역임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메모리반도체 중심의 사업구조 속에서 자신의 생각과 뜻을 펼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당시에 제가 공부하고 온 분야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실리콘밸리나 대만, 일본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중요한 분야라고는 말해주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국제통화기금(IMF) 체제가 밀려오던 시기에 대기업을 벗어나 벤처기업 세계에 뛰어들었다. 사업 초기에는 지금과 같은 아이템은 아니었다. 지난 98년 4월 비메모리 설계를 대행해주는 디자인하우스를 차렸으나, 외부 투자 유치 등이 여의치 않아 몇 달 만에 CMOS이미지센서(CPIS) 애플리케이션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디자인하우스에서 애플리케이션 반도체로 전환하면서 창업 멤버들에서 변신을 요구했으나, 동의를 받지 못했습니다. 결국, 모두 지분을 빼 나갔고, 저를 포함해 모두 3명의 직원으로 재출발했습니다.”

황 사장은 지난 98년 9월부터 PC카메라, 듀얼모드 카메라, 지문인식기, 2차원 바코드 등 센서 애플리케이션 제품을 이것저것 개발하며 근근이 회사를 영위했다.

“CIS 애플리케이션 시장이 성숙도 안 되고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2001년 일본에서 휴대폰용 외장형 카메라가 나왔습니다. 이것을 보고 목숨을 걸어보자고 생각했고, 개발에 들어갔고 결국 LG전자가 인정해주었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코아로직이 있게 된 것입니다.”

이후 내장형 카메라를 LG전자와 공동으로 개발하게 됐고 현재까지 3년간 쉴새없이 새로운 제품을 설계하며 10만 화소·30만 화소·100만 화소·200만 화소·500만 화소를 지원하는 반도체를 계속 만들어냈다.

“해외 업체를 따돌릴 수 있던 것은 국내에 삼성전자, LG전자, 팬택앤큐리텔 등과 같은 우수한 휴대폰 회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수한 통신사업자, 휴대폰 업체, 칩 업체가 카메라폰이 ‘마무리선수’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서로 가속을 낼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황 사장은 창업 당시가 1단계, 지금까지의 성장이 2단계라면 앞으로 글로벌기업으로서의 코아로직으로 도약시키는 3단계에 들어섰다고 말한다. 기술적으로 올해 말이면 칩에 들어가는 MPEG, H.264, 3D 엔진 등이 4분기면 모두 확보하게 됐다고 황사장은 자신했다. 코아로직은 기술과 자본을 바탕으로 휴대폰뿐 아니라 디지털카메라, PM 등으로 품목을 다양화해 나갈 계획이다.

황 사장은 “현재 인력만 갖고도 안됩니다. 앞으로 기술 흡수, 인력 흡수 등을 위해서는 국내 업체건 해외 업체건 인수합병을 할 예정입니다.”라고 말해 앞으로 예상되는 팹리스 업계의 인수합병 바람의 ‘코어(핵심)’이 되겠다는 의지를 비쳤다.

황 사장은 휴대폰 이외에도 국내 칩 산업이 시스템 산업과 동반 성장할 분야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시스템반도체 산업이 도약하기 위해서는 해외 업체와 국내 업체간의 경쟁력을 잘 비교한 뒤에 시스템업체와 칩업체간에 파트너십을 구축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그는 자동차 분야 등은 전자공학이 뻗어나갈 수 있는 대표적인 산업이라고 주장했다. “현대자동차와 같이 경쟁력 있는 업체가 있습니다. 휴대폰의 산업의 발전에 칩 업체들이 기여했듯이 자동차에서도 그럴 수 있습니다. 한번 해봐야하지 않겠습니까.”

현재 코아로직의 대표인 황기수 사장은 앞으로 코아로직이 글로벌 기업으로 커가는 시스템만 마련되면 산업 전체를 위해서 뛰어들 뜻을 내보이기도 했다.

◆코아로직은?

 코아로직은 휴대폰 등에 사용되는 멀티미디어 반도체를 설계·공급하는 회사로 지난 98년 4월 설립됐다. 이 회사는 카메라폰의 핵심부품은 칩은 ‘CAP’, 멀티미디어 칩은 ‘MAP’, 메가픽셀급 카메라폰에서 사용되는 ‘ISP’ 등을 개발하고 상용한 팹리스 업체다.

코아로직은 사업 초기 USB 외장형 폰 카메라, VGA형 폰 CAP, 메가픽셀급 카메라 내장형 폰용 시스템온칩(SoC)를 개발해 국내 휴대폰 메이커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해왔다. 특히 지난해에는 카메라 기능은 물론 MP3, TV, 3D 그래픽 및 게임, 영상통화, 비디오 메시징 등 다양한 멀티미디어 기능을 지원할 수 있는 MAP를 개발, 새로운 도약의 기틀을 마련했다.

코아로직은 세계시장 진출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중국 상하이 사무소를 설립한 데 이어 대만, 유럽, 미국 등 세계 모바일 산업의 핵심 거점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있다. 현지에서 시장개척 및 고객지원 활동을 강화함으로써 한국 대표 SoC 기업에서 세계적인 기술 경쟁력과 네트워크를 갖춘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면모를 뽐내고 있다.

앞으로는 특히 모바일 기기용 멀티미디어 반도체인 MAP을 주력 품목으로 삼고, 세계적인 기업인 산요, 엡손, ATI, 엔비디아 등과 자웅을 다툴 계획이다.

사진: 국내 시스템반도체 산업의 산증인 황기수 코아로직 사장은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송문섭 사장 등을 비롯한 50대 전후의 IT 리더들과 함께 한국의 산업 경쟁력을 위해서 같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상태기자@전자신문, stk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