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구구 기술평가 이제그만](1)시스템 부재가 기술금융 위기 초래

같은 기술에 대한 평가지표 기관마다 `제각각`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신용보증지관의 대위변제 및 보증사고 현황

기술개발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우수한 기술을 바탕으로 한 제품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집중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중소기업도 기술을 밑천으로 혁신형 기업으로 변신해야 한다며 당근과 채찍질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기술을 현재와 같은 시스템에서 찾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진정한 기술강국의 필수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기술평가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대해 3회에 걸쳐 짚어 본다. 편집자주

 

 “국내 30여개 기술평가기관 중 기술 공급자나 수요자에게 모두 공신력을 인정받는 전문기관은 거의 없다.”

 박기영 대통령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이 지난 5월 청와대칼럼 ‘기술 담보로 융자받을 수 있다면?’이란 기고에서 지적한 것이다. 모 벤처업체 대표는 “도대체 기술평가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동일한 기술에 대해 기관마다 평가가 제각각”이라고 불만을 토로한다. 실제로 산업자원부 관계자도 최근 “국내 주요 5개 기관이 평가지표를 내놓았는데 사실 이 지표들이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 없다”고 인정했을 정도다.

 ◇벤처 P-CBO의 교훈=기술 벤처기업의 확실한 자금줄이 작년 이후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 지난 2001년 2만여개 벤처기업에 보증한 2조억원 규모의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 여파다. 당시 기술신용보증기금(이하 기술신보)이 보증을 선 벤처기업의 상당수가 문을 닫거나 상황이 결코 나아지지 않아 회수를 할 수 없게 됐다. 당연히 화살은 기술신보로 날아갔다. 애초에 평가를 제대로 했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그러나 기술신보는 억울하다. 당시 정부가 지시한 정책에 맞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보증했기 때문이다. 기술신보 관계자는 “언론은 마구잡이식 보증을 했다고 비판하지만 당시 벤처 육성 핵심기관으로 공정한 평가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항변했다.

 ◇문제는 기술 평가도구=기술신보가 만약 P-CBO 발행시점에 제대로 된 평가 툴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물론 100%는 불가능하겠지만 현재보다는 훨씬 많은 업체가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사실 P-CBO를 통해 현재 성공 벤처기업의 대열에 오른 업체도 상당수다. 그만큼 P-CBO가 담보력이 부족한 기술 벤처기업에는 그 어느 것과도 비교되지 않을 좋은 당근이었다.

 기술 평가도구는 기술강국의 핵심인프라다. 좋은 기술이 있더라도 이 기술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도구가 없다면 좋은 기술은 빛을 발하기 어렵다.

 정부의 최근 움직임을 보면 ‘기술’에 승부수를 던진 것 같다. 기술개발만이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말이 힘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더는 좋은 기술평가 시스템 구축을 위한 노력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특허기술 사업화 전문업체인 서주원 웰쳐기술 사장은 “기술이라는 것이 앞으로의 시장을 반영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그런 것 같지 않다”며 “정부가 신기술 개발지원뿐만 아니라 이를 검증한 인프라를 갖춰 범용적으로 보급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바야흐로 정부에는 기술강국 건설을 위한 핵심인프라로 기술평가시스템 구축이라는 화두가 던져졌다.

 김준배기자@전자신문, j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