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거듭 밝혀온 이동전화 도·감청을 국가정보원(옛 국가안전기획부)이 자체 장비까지 개발, 사실상 수년간 도·감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정보원(원장 김승규)은 5일 ‘옛 안기부 X파일 사건’과 관련해 그동안 도청에 개입했던 전현직 직원 43명과 도청실태 등에 대한 조사 결과와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국정원은 96년 1월 이탈리아로부터 도청장비 4세트를 들여와, 아날로그 방식의 이동전화를 도청했고 99년 12월 아날로그 서비스가 중단되고 CDMA 방식의 디지털로 모두 전환된 이후에도 자체 도청장비를 개발해 기지국과 기지국을 잇는 유선중계통신망과 가입자와 기지국을 잇는 이동통신망에서 광범위하게 도청을 시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만복 국정원 기조실장은 “CDMA로 완전 전환된 99년 12월 이후에도 60여명의 감청조직을 운영하면서 유선중계망 도청장비 6세트와 무선 도청장비 20세트를 개발해 주요 인사들에 대한 정보 수집을 위해 다각도의 방법으로 이동전화 도청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후 CDMA2000이 상용화되는 등 이동전화 기술이 대폭 업그레이드된 데다 무선 구간에서의 도청은 기지국을 중심으로 반경 200m 이내, 도청 대상을 정점으로 120도 범위를 유지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 사실상 성공하기가 쉽지 않았다”면서 “2000년 9월 무선 장비를, 2002년 3월 유선중계망 장비를 각각 폐기했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그러나 “2003년 국정감사에서 복제휴대폰에 대한 도·감청 의혹이 제기됐으나 대상지 20m 이내에 장비가 위치해야 하고 이동통신업체들이 복제신호에 대한 방지책을 내놓으면서 사실상 시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실은 정부와 국정원이 국정감사 등에서 이동전화 도·감청에 대해 이론적·기술적으로는 가능하나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데다 국민의 정부 이후에는 하지 않았다고 밝혔던 기존 입장을 번복한 것으로 국민을 속였다는 도덕적 비난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진 이동전화 도·감청을 유선중계망 구간뿐만 아니라 기지국과 가입자를 연결하는 무선 구간에서 시도, 일부 성공했다는 점에서 기술적 논란도 가열될 전망이다. 그동안 관련업계에서는 CDMA 방식은 음성을 암호화된 코드로 전달하기 때문에 중간에 낚아채(intercept) 해독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주장해왔다.
업계 전문가는 “이동전화 도·감청이 사실상 실현됐다는 점이 만천하에 드러난만큼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대응 기술 개발과 이통망 보안을 위한 업그레이드 요청 등이 새로운 이슈로 부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지연기자@전자신문, jy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