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망 개방인가.’
지난 2002년 정부가 SK텔레콤의 신세기이동통신 합병 인가 조건으로 내걸고 추진해온 무선 인터넷망 개방 정책이 자칫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망 개방 열쇠를 쥐고 있는 SK텔레콤과 인터넷기업 간 협상이 여의치 않은 데다 콘텐츠제공업체(CP)들의 외부 독립 포털 사업에 대한 회의감마저 짙어 현실적인 대안 없이는 개방의 본래 취지가 무색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인터넷기업과 이통사 간 협상이 남긴 것=주요 인터넷 포털과 SK텔레콤은 올해 들어 망 개방 후속 쟁점에 대해 지속적으로 협상을 벌인 결과 나름대로 성과를 도출해냈다. 올 초만 해도 전혀 가닥이 잡히지 않았던 다운로드 서버 이용 방식에 대해 ‘모바일ASP(mASP)’로 합의한 것이 대표적이다. 협상 초기보다 mASP 다운로드 서버 임대료와 콜백URL 단문문자메시지(SMS) 요금을 각각 4%, 5원 인하한 것은 인터넷 업계로서는 그 나름대로 얻은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터넷기업들은 협상이 진척되면서 망 개방 서비스에 대한 의지가 오히려 한풀 꺾인 모습이다. 이통사와 CP 간 불공정한 시장 경쟁 구조 탓에 망 개방이 이루어지더라도 당분간 뚜렷한 수익을 내는 데 한계가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다음커뮤니케이션 등은 최근 SK텔레콤과 mASP 관련 계약을 정식으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망 개방 서비스를 개시했지만 적극적인 대외 홍보는 전개하지 않고 있다.
포털 업계 한 관계자는 “포털 업체의 모바일 콘텐츠는 이용자들에게 체험 기회를 주는 데 초점을 맞춘 부분적 서비스일 뿐 수익을 내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인터넷기업들은 최근 서비스를 개시한 기간통신사업자 온세통신의 무선포털 ‘쏘원’의 경우도 수익 배분 구조 등을 따져볼 때 당분간 이익을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CP, 망 개방 ‘글쎄’=중소 CP들에서도 ‘무선 콘텐츠 시장 활성화’라는 정책 추진 초기의 장밋빛 기대는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CP들은 이통사 자체 무선 포털에서 이미 검증된 서비스가 아닌 신규 서비스 제공은 엄두를 내지 못하는 데다 망 개방이 실현되더라도 상위 몇몇 CP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CP가 외부 독립 포털로서 수익을 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산업연합회 자율심의위원회에 접수된 콘텐츠만 보더라도 기존 무선 콘텐츠인 벨소리, 캐릭터, 미팅을 제외하면 새로운 유형의 킬러 콘텐츠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무선 분야 CP 관계자는 “마케팅 수단도 없고 여전히 이통사나 포털의 눈치를 봐야 하는 독립 CP들이 진정한 망 개방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콘텐츠뿐만 아니라 수익 분배 구조 문제 등을 선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망 개방, 외형보다 내실을=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인터넷·콘텐츠 업계에서는 정부가 형식적인 일정을 맞추기보다 시일이 좀 걸리더라도 근본적인 걸림돌을 제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CP들도 킬러 콘텐츠 개발 등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인터넷 업계 한 관계자는 “일부 사업자가 망 개방 서비스에 들어갔지만 절름발이 형태를 띠는 데다 의욕도 부족해 점점 당초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서비스가 왜곡되는 양상”이라며 “이대로 방치해 뒀다가는 정부가 추후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경기자@전자신문, yuky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