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휴대폰 시장이 세계 각국 휴대폰 사업자들의 경쟁의 장으로 변모하면서 일본 휴대폰 업체들이 ‘생존이냐, 도태냐’의 갈림길에 놓였다.
니혼게이자이 등 일본 언론들은 NTT도코모에 이어 이동통신사업자 2위인 KDDI가 최근 팬택계열로부터 휴대폰을 조달키로 함에 따라 사실상 일본 휴대폰 시장의 빗장이 활짝 열렸다고 보도했다. 앞서 도코모는 LG전자로부터 휴대폰을 조달하기로 계약했다.
지금까지 일본은 도코모의 세계 최초 3세대(3G) 서비스 등을 배경으로 NEC, 파나소닉모바일커뮤니케이션스 등 자국 업체들에 대한 기술적 믿음이 확고했다. 또 일본 소비자의 까다로운 품질 요구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점도 자국 업체가 활약할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하지만 해외 업체들이 앞선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시장 공략에 나서자 이통통신사업자들로선 저가 구매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는 상황이다.
앞으로 KDDI는 팬택계열로부터 3G 서비스인 ‘au’용 저가 단말기를 공급받아 연내 출시할 계획이다. 가격은 지금까지 구매해 오던 일본 업체들 제품보다 1000엔 정도 싼 것으로 알려졌다. KDDI는 전신인 일본이동통신 및 DDI셀룰러가 미국 모토로라로부터 조달했지만 지난 2000년 3사 합병으로 KDDI로 사명을 변경한 이래 일본 업체들의 휴대폰만을 고집해 왔다.
해외 업체들의 잇따른 진출로 일본 휴대폰 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최근 2∼3년간 해외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 데 이어 믿었던 자국 시장에서조차 설 땅이 없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모토로라, 노키아 등 앞서 일본에 진출한 업체들이 수량을 제한적으로 공급한 것과 달리 팬택은 차세대폰도 공급할 계획이어서 일본 업체들을 잔뜩 긴장시키고 있다.
팬택 등 해외 업체들이 단번에 일본에 상륙할 수 있었던 것은 ‘3G 휴대폰 보급’이 배경으로 분석된다. 2G와 관련해서는 ‘PDC’로 불리는 일본 독자 통신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에 일본 업체들의 독무대였지만 3G에서는 국제 표준의 통신방식이 채택돼 진입 장벽 자체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업체들은 일단 해외 업체들의 휴대폰이 어느 정도 팔릴지 지켜볼 생각이다.그러나 여파가 작지 않을 것임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다.
특히 일본 휴대폰 보급이 포화 상태에 달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출하 대수가 전년 대비 11.5%나 격감했기 때문에 납품가 경쟁에서 해외 업체들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점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일본 최대 업체인 NEC와 파나소닉모바일커뮤니케이션스의 경우 세계 점유율이 2%를 넘지 못하고 있다. 생산 규모도 해외 업체들에 비해 훨씬 뒤진다. 이미 가격 경쟁이 촉발된 해외 시장에서 고전하는 것은 당연하다. 두 회사 모두 올 1분기(4∼6월) 휴대폰 사업에서 영업적자를 냈다.
현재 일본 휴대폰 업체는 총 10개사. 해외 업체들로부터 국내 시장마저 잠식당한다면 사업 포기나 통합 등 재편 과정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NEC 관계자는 “유럽 시장 등에서 날로 경쟁력을 잃고 있는 일본 업체들이 본토에서도 숨을 쉬기 힘들게 됐다”면서 “후발 일본 업체들과의 사업 제휴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교세라·마쓰시타 등도 휴대폰 제조 분야 협력을 강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명승욱기자@전자신문, sw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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