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 설명했듯이 ‘데몬’과 ‘데블’은 확실히 다른 존재다. 다시 설명하자면, 데몬은 ‘다른 종교의 무서운 신’에서 유래된 것이며 데블은 ‘기독교의 적’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오늘날 데몬과 데블, 악마 등은 구분없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기독교에서 데블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자신의 유일신에게 대적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를 제외한 다른 신앙이나 전설에서 보면 악마나 악한 존재가 반드시 신과 적대관계였던 것은 아니였다.
지옥을 다스리는 신이라고 해서 천국의 신과 반드시 원수같은 사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세계관에서는 천국과 지옥은 무조건 적대적인 관계이고 결국 최후의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등 타종교와 개념의 차이가 있다.악마는 보통 지옥에 거주한다. 지옥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기독교 문명에서는 3가지 장소를 지칭한다. 그리스 신화의 하데스가 지배했던 저승세계와 그 저승세계 밑에 존재하는, 티턴 신족이 유폐되었던 장소 탈라로스다. 또 성서 속에 등장하는 헤나(예루살렘 근방)를 지옥으로 본다. 지옥에 거주하며 데블로 유명한 악마에는 사탄, 루시퍼, 벨제부브, 메피스토펠레스, 아스모데우스, 몰록, 베리얼 등이 있다.
사탄은 헤브라이어로 ‘적’이라는 의미다. 원래 천국에 살았던 사탄은 루시퍼가 신에게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반란군의 사령관이 돼 선봉을 섰다. 그래서 루시퍼보다 행동대장이었던 사탄이 훨씬 더 두려운 존재로 각인돼 있다. 그의 이력은 무척 화려하다.
구약성서에서 초자연적인 존재인 하느님의 아들(천사)의 하나로서 욥에게 대항했고 야훼신 앞에 선 여호수아에게 대적한 것으로 등장한다. 신약성서에서는 예수를 시험하는 자로 나타났으며 하느님의 도(道)가 자라는 것을 방해하는 자, 허위, 살인의 선동자, 악을 행하는 자, 끊임없이 집요하게 사람을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멸망으로 인도하려 했으며, 많은 사람들을 멸망으로 끌고 가는 자로 묘사된다. 그러나 사탄은 지옥에서 벨제웁에 밀려 서열 3위에 올라있다.루시퍼는 라틴어의 ‘빛(lux)을 가져오는(ferre) 것’에서 나온 말로 ‘샛별’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이런 예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사탄보다 상위의 존재다. 루시퍼는 악마의 대명사인 사탄을 만들어 낸 원인을 제공한 타락한 대천사다. 루시퍼가 악마로 활약한 이야기는 거의 없는데 그도 사실은 대천사였고 인간을 너무나 사랑했다는 설이 있기 때문이다.
루시퍼가 반란의 깃발을 높이 든 이유는 다음과 같다. 루시퍼는 창조주가 실제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물리적 중력과 공간, 에너지가 우주의 기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절대신에 대해 불신을 하고 말았다. 또 창조주 아들인 미카엘이 지배하는 체제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쿠데타를 일으켰는데 루시퍼가 칼을 겨눈 상대는 절대신이 아니라(존재하지도 않으니까) 미카엘이었다. 루시퍼파와 미카엘파는 천상의 대전쟁을 벌였고 여기서 패한 루시퍼는 빛을 잃고 지상으로 떨어지게 된다.메피스토펠레스는 독일의 전설에서 등장하는 악마로 괴테의 ‘파우스트’에 출연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흔히 메피스토라고 한다. 전설에서는 파우스트가 악마와 계약을 체결해 환락에 빠지지만 그의 영혼은 계약 기한이 끝나는 순간 악마의 소유로 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괴테는 이를 변형했다. 나약한 인간이 자신의 영혼을 악마와 거래해 욕망을 충족시키고 끝내 파멸한다는 통속적인 스토리를 극적으로 반전시켰다. 악마도 신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설정을 가지고 메피스토가 파우스트를 유횩해 파멸시키려고 하는 것을 도리어 파우스트를 구제하는 것으로 결말을 낸다.
마지막으로 아스모데우스가 있다. 이것은 유태인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악마의 왕으로 페르시아어 ‘아에시마 데바(정욕의 마신)’를 어원으로 한다. 이 악마는 이름처럼 호색의 기질이 너무 강해 자기 자신을 스스로 망친 존재다. 아스모데우스는 유대의 왕이자 전설적인 존재 솔로몬 왕을 권좌에서 쫓아내려고 했으나 대천사 가브리엘이 이를 눈치채고 아스모데우스를 공격했다. 가브리엘을 상대할 수 없었던 그는 꽁지가 빠져라 도망쳐 이집트의 타티타 마을 동굴에 숨었다고 전해진다.
데블은 기독교 세계관에서 등장하는 악마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팬터지 세계관에는 맞지 않는다. 팬터지를 배경으로 한 롤플레잉 게임에 전혀 등장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탄이나 루시퍼 등 이러한 존재는 주로 호러 게임의 무시무시한 배경 스토리에 등장하며 실제 형상화돼 몬스터로 출연하는 사례는 없다.
‘사탄의 인형’ ‘가브리엘 나이트’ ‘사탄의 태양아래’ ‘루시퍼의 연인’ ‘드래곤 나이트’ ‘워록’ 등등 각종 영화와 게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이름과 분위기만 차용될 뿐이다. 그러나 그 이름만으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까닭에 굳이 실제 몬스터로 등장하지 않아도 공포의 효과는 충분한 존재다.
<김성진기자 김성진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