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게임업체의 IPO는 불가능하다고 봐야 합니까?” “코스닥 상장이 나스닥 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설마 설마했던 윈디소프트의 IPO(코스닥 상장) 꿈이 무너지면서 게임업계가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졌다.
200억원을 넘는 매출에 50%대의 당기 순이익을 자랑하는 윈디소프트 마저 상장을 못한다면 과연 누가 IPO를 꿈 꿀 수 있겠느냐며 볼멘소리다. 작년말 참여정부가 ‘벤처 르네상스’를 기치로 내걸고 코스닥 등록 요건을 대폭 완화했던 터라 업계에 전달된 충격파는 더 클 수밖에 없다.
코스닥위원회가 윈디소프트 예비 심사 결과 ‘보류’ 판정을 내린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특정 게임(겟앰프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겟앰프드’의 매출이 절대적인 데다가 후속 게임의 성공을 담보할 수 없어 결과적으로 사업성이 너무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코스닥위원회의 이같은 잣대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앞으로 게임 개발사들의 정상적인 IPO는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울 전망이다. 하나의 게임도 성공하기 어려운데 최소 2개 이상의 히트작을 내야 한다는 얘기이기 때문. 실제 현재 국내 게임업계 중에서 2개 이상의 대박 작품을 갖고 있는 기업은 엔씨소프트와 넥슨 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기존의 하드웨어적인 업체와 동일한 기준 및 관점에서 심사가 이루어진다면 현재 특정 게임으로 성공해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는 게임업체들의 코스닥 진출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 게임산업 육성에 치명타를 가할 것으로 우려된다. 한국게임산업협회 임원재 사무국장은 “게임이 원소스멀티유즈가 가능해 다양한 비즈니스모델이 가능하다”면서 “게임이라는 콘텐츠의 성격과 개발사의 특수성을 고려한 심사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게임비즈니스에 대한 ‘잘못된 해석’(?)
윈디소프트의 코스닥 예심 보류 판정 이유가 알려지자 업계 관계자들은 “온라인게임 시장의 매커니즘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전문성이 떨어지는 판정”이라며 흥분하고 있다. 업계는 무엇보다 코스닥위원회가 온라인 게임의 특수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심사에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온라인게임은 기존 패키지게임과 달리 라이프 사이클이 보통은 3∼5년, 길게는 10년 가까이 지속되며, ‘종주국 프리미엄’을 바탕으로 국내서 성공할 경우 해외 진출로 제 2의 고수익을 창출할 수 있어 특정 게임 의존도가 높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 업계 1위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하나로 5년 이상 고수익을 지속하고 있으며, 코스닥 시장에서도 황제주로 오래도록 군림했다. 코스닥과 나스닥에 동시 상장(듀얼 리스팅)한 웹젠 역시 주수익원은 ‘뮤’ 하나이며, 올초 나스닥에 직상장한 그라비티도 ‘라그나로크’ 하나로 고수익을 창출하며 세계 시장을 활보하고 있다.
1∼2년후를 목표로 IPO를 추진 중인 한 중견 게임 개발사의 관계자는 “온라인게임은 특정 장르에서 1위를 차지할 경우 선점 효과가 아주 큰 ‘블루오션’ 기업이 다수 나올 수 있는 분야다. 최근엔 수익모델이 PPL광고와 캐릭터 상품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어 특정 게임 의존도가 높은게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영향력있는 게임을 만드느냐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문화관광부 게임과 김정훈사무관은 “게임산업은 기존 제조업과 달리 창의력을 바탕으로 하는 지식집약형 고부가 산업으로 코스닥 심사 기준이나 접근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전통적인 심사기준을 고집한다면, 제대로된 평가가 이루어질 수 없다. 따라서, 게임은 물론 문화산업 분야에 대한 체계적인 투자가치모델과 기준이 마련, 적용될 수 있는 환경이 조속히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자본시장 ‘먹구름’ M&A시장 ‘쨍쨍’
작년 컴투스에 이은 윈디소프트의 코스닥행 보류는 해당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게임업계 전체에 상당히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우려된다. 우선 최근 물꼬를 트기 시작한 게임투자 시장에 찬물을 끼얹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투자자 입장에서 우량한 실적을 보유한 선발기업마저 코스닥 상장에 급제동이 걸린다면, 누가 과연 후발 중소 개발사에 투자를 하겠느냐는 얘기. 실제 작년 코스닥 상장이 유력했던 컴투스가 코스닥 예심에서 보류 판정을 받은 이후 모바일게임 투자 시장에 급랭했던 전례가 있다.
IMM창투 게임펀드 매니저인 이상우 심사역은 “여러개의 성공작을 갖고 코스닥행을 추진할 기업은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다”면서 “그러나, 세계 온라인 게임시장에서 한국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선순환적인 투자 생태계는 매우 중요하며 우량회사의 IPO는 필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주식 시장이 활황세를 계속하면서 IPO의 꿈에 젖어있던 중견 게임업체들의 IPO전선에도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질 전망이다. 윈디소프트의 바통을 이어받아 코스닥 진출을 노렸던 게임업체들 중에서 윈디보다 실적과 조건이 유리한 기업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히 정상적인 IPO보다는 M&A를 통한 간접 상장이 급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윈디소프트와 마찬가지로 대박게임을 보유하고 있고, 실적이 우량한 개발사들이 코스닥기업을 역으로 인수하는 이른바 ‘백도어리스팅’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 M&A부띠크는 “현재 코스닥 내엔 운좋게 상장은 했지만, 이렇다할 사업 아이템을 보유하지 못한 기업이 부지기수다. 그러나, 게임은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총아로서 수익성이 뛰어나다. 따라서 정상적인 IPO가 힘들어진 게임업체와 코스닥기업과의 짝짓기가 유행처럼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 게임업계 ‘자승자박론’도 고개
이번 윈디소프트 사태를 계기로 앞으로 ‘게임 IPO’에 대한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코스닥 상장 추진시 게임과 다른 업종과의 형평성 문제가 도마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실제 코스닥 내 전통적인 제조업체들의 경우에도 핵심 캐시카우가 특정 제품이나 아이템에 국한된 곳이 부지기수란 점에서 이번 윈디소프트의 보류 판정은 형평성에 어긋나며, 논리가 빈약하다는 지적이 팽배하다.
이와관련, KTB네트워크 원대로차장은 “게임의 특수성을 고려해 코스닥위원회가 별 이유를 달지 않고 보류나 기각을 하기 보다는 구체적인 조건을 달고 조건부 승인(?)을 내주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게임업계 스스로도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치않다. 무엇보다 투명성 문제를 거론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게임업체는 비교적 단기간에 고성장을 하는 기업이 많은데다 기업이라기 보다는 스튜디오 형태의 창업이 많기 때문에 예측 가능한 투자가치 모형 개발, 회사 내부의 경영 마인드와 수익 및 재무 관리에 대한 체계적 관리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내수 중심의 매출구조를 개선해 글로벌 마케팅을 강화해 사업 안정성과 수익성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도 필요하다.
게임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제고하는 노력도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한다는 지적이 많다. 게임이 21세기 디지털 콘텐츠 중심 시대의 핵심이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청소년의 정신 건강에 해를 끼친다는 부정론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모바일게임협회 오성민회장은 “IPO는 성장의 과정일 뿐이다. IPO를 위해 당장 이익을 얼마만큼 냈느냐 보다는 얼마만큼 이익을 극대화하고 이를 다시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중배기자 이중배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