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현실의 괴리로 잠재적 범법자를 양산하는 국내와 달리 다른 나라들은 다양한 텔레매틱스 단말기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기기나 설치 행위 자체를 규제하기보다 안전 운전을 보장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 공통된 특징이다.
◇미국 ‘운전에 도움 되면 합법’=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이 올 2월 작성한 ‘이동중 TV 시청이 차량 운전에 미치는 영향 분석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04년 4월 현재 미국 내 총 38개주가 차량 내 비디오 모니터 설치 위치를 규제함으로써 운전중 TV 시청을 금지하고 있다. 21개주는 TV모니터가 운전자에게 보이는 것 자체를 금지하고 있었으며, 나머지 17개주는 모니터가 운전자에게 보이지 않도록 운전자석 뒤에 위치해 있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주목되는 것은 같은 디스플레이를 통해 시각적 정보를 제공하더라도 GPS, 내비게이션을 ‘안전운전기기’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주는 TV 등을 장착한 자동차의 운전을 금지하고 있지만 인공위성추적표시장치(Global Positioning Display), 운전경로탐색장치(Mapping Display)는 예외로 규정했으며 펜실베이니아, 오리건, 텍사스 등도 내비게이션 사용을 합법화했다.
특히 텍사스주는 운전중 TV 시청 금지는 물론이고 휴대형 단말기 등 모든 디스플레이를 운전석에 부착하는 것을 금지하는 강력한 규제책을 쓰고 있지만 운전자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를 사용하는 것은 합법화했다.
◇일본 ‘행위 자체를 규제’=미국과 달리 일본은 기기 자체에 대한 규제보다 운전자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법을 마련하고 있다.
일본은 1999년 11월 1일 도로교통법을 개정해 ‘운전중 오랜 시간 자동차의 내비게이션 화면 및 TV 등 디스플레이 장치를 주시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이를 어길 경우 5만엔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평상시에는 자동차 내비게이션 사용이 허용되지만 운전중일 때나 목적지 탐지를 위해 장치를 작동하거나 목적지로 이끄는 길에 대한 정보를 입력하기 위해 디스플레이를 계속 보는 것을 금지한다’는 더욱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했다.
신용균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수석연구원은 “일본은 교통사고에 대처하기 위해 기기를 사용하는 운전자의 책임성을 법으로 명확히 했다”고 설명했다.
◇국내 현실은=현행법상 자동차에 장착을 금지하고 있는 불법부착장치의 범위가 포괄적이어서 산업계와 사용자가 혼란스러워 하고 이로 인해 법 집행과정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내비게이션, 텔레매틱스 단말기 등이 운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사례가 없다. 올 2월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이 작성한 보고서가 그나마 이와 연관이 있는 최초의 연구다.
경찰청 관계자는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연구 외에도 안전 운전에 대한 영향을 조사할 것”이라면서도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밝힐 수 없다”고 전했다.
윤건일기자@전자신문, ben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