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백의 武林紀行](18)농민의 정신적 지주 `마교`

한자는 잘 알지만 무협은 모르는 사람이 마교(魔敎)라는 단어를 본다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교라는 글자가 붙은 걸 보면 종교인 것 같은데 마귀의 종교라니. 마라는 글자에는 더 나아가서 나쁘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스스로의 종교를 나쁜 종교, 악마의 종교라고 하는 종교인이 있을까?알고보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마교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그들 스스로가 아니라 황제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역사에서 마교는 하나의 종교집단, 혹은 하나의 단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역사상 무수히 많은 종교들이 조정에 의해, 또 백성들에 의해 마교라고 규정되고, 배척받고, 토벌되었다.

마교라는 단어는 처음에는 당나라 때 페르시아에서 건너온 마니교(摩尼敎 : 마니라는 인물이 페르시아의 전통적 종교인 조로아스터교를 재해석해서 만든 종교라고 한다)를 마교(摩敎)라고 부르는 것에서 변화된 단어로, 당시 마니교가 농민들의 불만을 대변해 농민반란을 주도하자 조정이 아예 마교(魔敎)로 규정하고, 이를 신봉하는 것을 금지함으로써 마니교를 대표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나중에 마교는 불교의 미륵신앙(彌勒信仰)에서 출발한 미륵교(彌勒敎), 당송 당시 세력을 떨쳤던 명교(明敎)와 백련사(白蓮寺) 등을 지칭하는 단어가 되었는데, 이들 종교가 하나같이 ‘끽채사마(喫菜事魔)’를 한다, 즉 채소만 먹고 마귀를 섬긴다. ‘혹세무민(惑世誣民)’, 즉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현혹시킨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런 종교단체 중에 사교(邪敎)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조정이 이들 종교를 금지시킨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이들 종교가 마니교처럼 당시 조정의 수탈에 반란을 일으킨 농민집단의 정신적 지주였기 때문이었다.

송말의 혼란과 원나라의 종교적 분위기로 인해 몽고치하에서는 유례없이 많은 종교들이 부흥, 난립했다. 왕중양(王中陽)이 전진교(全眞敎)를 세우고 일곱 제자를 거느린 때가 이 때고, 라마교의 극성기가 또한 이때였다.

한편으로는 사교, 혹은 마교라 불리는 종교집단들도 많이 일어나 절강의 모니교(牟尼敎 : 마니교를 의미), 강서의 금강선(金剛禪), 게제제(揭?齊), 태주의 백의불회(白衣佛會) 등을 비롯한 많은 단체가 마교라고 불리웠다.

그러니 결국 마교라는 것은 그것이 민중종교든 혹은 사이비 종교든 조정이 지정해서 금지시킨 종교단체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김용은 ‘의천도룡기’에서 상기한 마교설, 특히 마니교에서 파생한 명교가 마교라고 채택하여 명교가 마교라 불리게 된 이유를 길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명교가 원말에 일으킨 농민반란의 우두머리들 중 하나인 주원장이 결국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명(明)이라 지은 이유를 반란에 있어서 명교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명교는 달리 일월신교라고도 부른다. 명(明)자가 일(日), 월(月)을 합쳐서 만들어진 글자이기 때문이다. 김용은 ‘소오강호’에 일월신교를 등장시키는데 여기서는 일반적으로 무협에 알려진 나쁜 종교라는 형태에 좀 더 가깝게 묘사한다. 물론 여기에도 납득할 수 있는 이유는 있다.

한 종교가 오랫동안 금지 당하고 억압받다 보면 자기방어 수단을 필요로 하게 되고, 자연 특정한 계기를 통해 그 힘은 폭력으로 터져 나올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무장집단이 된다면? 그래서 애초의 교리와는 다르게 이익집단이 되고 폭력집단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소오강호’에 등장하는 마교는 이미 그렇게 되어버린 종교인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은 자신이 곧 진리라고 믿는 임아행으로부터 어디를 둘러봐도 적수가 없다고 자신하는 동방불패에게로, 그리고 다시 주인공 영호충의 힘을 빈 임아행에게로 넘어간다.

영호충은 임아행의 딸 임영령과 함께 힘과 거짓, 폭력만이 난무하는 강호를 비웃으며 먼 바다 너머로 떠나버린다. 그래서 제목이 ‘소오강호’, 즉 강호를 비웃는다는 뜻이 된 것이다(물론 내용 중에 소오강호곡이라는 노래도 나온다. 이것 때문에 제목을 이렇게 지었을 수도 있지만 결국 같은 이야기다).

이와 달리 역사적 배경에서 단절된 순수하게 무협에서 그려지는 마교도 있다. 스스로 마도를 지향하는 종교단체로서의 마교다.

한국작가 금강의 ‘천마경혼’은 아래와 같은 선언으로 시작된다.

‘태초에 악이 있어 저주로 천하를 피에 잠기게 하고자 하니 이를 마(魔)라 부르며, 이 마의 추종자들이 모여 거대한 힘을 형성한 것이 전율과 공포의 상징인 마교의 시작이다.’

김용의 ‘의천도룡기’가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전에는 거의 대부분의 무협소설이 이 개념의 마교를 등장시켰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허구라고 볼 수만은 없다. 사이비 종교, 특히 악마주의(惡魔主義)의 전통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금을 통틀어서 존재해 왔다. 그런 류의 종교단체를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이름이 마교라고 한다면 이해하지 못할 설정은 아닌 것이다.

실제로 후자의 마교와 비슷한 성격의 단체로 역사상 실존했던 종교가 배교(拜敎)다. 이 것은 원래 도교 종파의 하나인데, 방술(傍術)과 부적(符籍), 악마주의적인 의식으로 혹세무민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배교가 중심소재로 등장한 일은 중국무협보다 오히려 한국무협에 많았다.흔히 무림을 정파와 사파로 구분하는 경우가 있다. 혹은 정파, 사파, 마도로 구분하기도 한다. 정파와 사파로 나눌 경우에는 정파가 아닌 모든 방파를 사파라고 하는 것이지만 정, 사, 마의 셋으로 나눌 때는 보통 배교 같은 사이비 종교를 사파, 마교를 비롯해서 패권을 차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방파를 마도라고 부르는 것이다.

흑도와 백도로 무림방파들을 구분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정파를 백도라고 하고 정파를 제외한 모든 방파, 혹은 정파 출신이 아닌 모든 무림인을 흑도로 구분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구분법은 지나치게 인위적이고 흑백논리에 기반한 것이라 무리가 있다. 예를 들어 녹림맹 같은 경우는 어디에 넣어야 할까? 정파가 아니니 사파? 마도?

이렇게 딱 잘라서 나눠놓고 양쪽이 서로 무리지어 싸우며 원수처럼 대하는 것은 주로 대만무협의 경향이다. 그리고 이런 경향의 시초는 바로 대만작가 와룡생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는 국민당과 공산당이 중국에서 내전을 벌일 때 국민당군의 장교로 참전한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그가 그리는 흑도 백도의 다툼은 공산당과 국민당이 싸우는 것을 연상케 한다. 특히 그의 작품에서는 자주 정파의 명숙들이 섭혼술에 걸려 흑도무리의 지휘를 받는 강시가 되어 오히려 정파를 공격한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이는 공산당의 세뇌공작을 의미한다는 설도 있다.

아군과 적군이라는 이런 이분법은 비슷한 분단국가라서 그런지 몰라도 한국에서도 쉽게 인기를 얻고 자주 사용된 설정이다. 그래서인지 무협게임들에서도 이런 설정을 따라하는 경우가 많다.무협작가로 ‘대도오’, ‘생사박’, ‘혈기린외전’ 등의 작품이 있다. 무협게임 ‘구룡쟁패’의 시나리오를 쓰고 이를 제작하는 인디21의 콘텐츠 담당 이사로 재직 중이다.

[사진설명 : 사진 순서대로..]

◇ 이연걸이 주연한 영화 ‘의천도룡기’. 마교인 명교의 교주가 되는 주인공 장무기 역을 이연걸이 했다. ◇ 무협드라마 ‘의천도룡기’. 무협소설은 대부분 대하장편이라서 영화에서는 일부분만 잘라 보여주거나 심하게 축약해서 원작과 많이 달라진다. 그래서 차라리 드라마가 원작의 스토리를 잘 구현한 경우가 많다.

◇ 양우생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백발마녀전’. 마교의 신비하고도 음산한 분위기를 잘 살린 영화다. 특히 남녀의 등을 잘라 붙여놓아서 평생 누울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는 마교 교주의 이야기는 엽기적이지만 내용에 빠져 읽다보면 감동을 느낄 수 있다.

◇ 동방불패와 임아행, 원래는 사제지간이었지만 일월신교 교주의 자리를 놓고 싸운다.

◇ ‘묵향’의 주인공 묵향 역시 마교 소속이다.

◇ 필자가 쓴 ‘천마군림’은 마교가 무림을 정복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상상해본 것이며 마교의 복잡한 구성에 대해 나름대로 설명해 놓았다.

<좌백(佐栢) jwabk@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