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희 의원이 가칭 ‘미디어융합서비스법’을 이번주 발의하겠다고 나섬에 따라 방송·통신 통합규제기구 설립 논의가 국회로 넘어갈 가능성이 커졌다. 정보통신부·방송위원회 주도로 방송·통신구조개편위원회 설립을 위한 TF까지 총리실 산하에 만들어 정부 차원의 해결책을 모색했지만, 최근 들어 전혀 진전을 보지 못하면서 현 정권 내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양대 주관기관 가운데 통합규제기구의 조기 설립을 주장했던 방송위도 내년 선거정국과 방송위원 임기 만료 등을 앞두고 최근 내부에서 다음 정권에 넘기자는 쪽으로 후퇴하는 분위기다. 정통부·방송위 두 기관의 조직 이기주의가 통합규제기구 설립을 연기하자는 ‘암묵적 합의’까지 만들어 내는 것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이다. 이에 따라 이번 미디어융합서비스법이 발의될 경우 그동안 정부 테두리에서 이뤄져오던 통합규제기구 설립 논의가 국회 차원으로 넘어가 급류를 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물 건너가는 현실=정통부와 더불어 방·통구조개편위 설립 TF의 주체이자 지금까지 통합기구 설립을 서둘러 왔던 방송위는 최근 들어 “설립을 현 정권 후로 미루자”는 쪽으로 내부 기류가 급속히 쏠리고 있다. 물론 겉으로는 여전히 통합규제기구가 시급하다는 입장이지만 속내는 달라졌다. 한 방송위원은 “통합규제기구의 설립 명분에는 아직도 공감하고 있지만 방송위 내부에서도 다음 정권으로 넘기자는 게 솔직한 목소리”라며 “TF 운영과 타 부처와의 협의과정에서 최근 분위기는 오히려 현상유지가 낫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털어놨다. 내년 5월 현 방송위원 임기 만료와 곧바로 불어닥칠 선거정국을 감안하면 연내 구조개편위 설치가 마무리돼야 하지만 지금 분위기로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현 위원들의 대폭적인 물갈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내년 새롭게 구성될 방송위원들로선 방·통구조개편위가 발족하게 되면 임기를 보장받기 어렵다는 점에서 결코 반길 일이 아니다. 정통부는 통합규제기구 설립은 늦추는 대신 경제논리를 내세워 IPTV 등 신규 융합서비스는 통합기구 설립과 무관하게 우선 추진하자고 줄곧 주장해 왔다. 정통부 고위 관계자는 “방송위가 통합규제기구 설립을 서둘러 추진하면 주도권을 쥘 것으로 생각하지만 방·통 융합산업 발전이라는 추세 속에서 정통부 입김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우선 융합서비스의 물꼬를 튼 다음 차기 정권에서 방송개혁과 함께 정통부 주도의 통합기구 설립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통합규제기구 설립에 대해서는 산업발전 논리와 개혁의 사각지대인 방송계의 대립으로 몰고가는 한편, IPTV 등 신규 융합서비스로 주도권을 쥔 뒤 기회를 노린다는 게 정통부의 의도다. 이에 따라 조기 설립을 주장해 왔던 방송위가 최근 정통부와 내심 같은 처지로 바뀌면서, 결국 두 기관의 현상유지 전략이 맞아떨어져 산업발전 추세에 맞는 새로운 통합규제 틀을 마련하자던 당초 정책 취지마저 퇴색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대안은 국회에서?=지금까지 정통부와 방송위는 표면적으로는 방·통구조개편위의 소속·성격·기능 등 통합기구 설립의 ‘방법론’을 놓고 평행선을 달려왔다. 지난 19일 국회 디지털뉴미디어포럼(공동위원장 류근찬 의원)에서 유승희 의원이 발의하겠다고 한 미디어융합서비스법은 공전을 거듭하고 있는 통합규제기구 설립 논의를 국회로 가져오겠다는 신호탄으로도 해석된다. 법안의 핵심 5가지 내용 가운데 △미디어 융합사업자에 의한 침해구제방안 △공정경쟁촉진 및 분쟁조정절차의 구비 등은 결국 통합규제기구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통합규제기구 설립 논의에 시동을 걸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그러나 유 의원의 법안은 ‘선(先) 시범서비스, 후(後) 규제기구 통합논의’를 주장하는 정통부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도 비쳐 국회의 법안 심사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문제는 통합규제기구 설립논의가 파행을 겪으면서 양 기관의 공통된 이해관계에 휘말려 시청자들은 물론이고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는 통신·방송 산업에 고스란히 그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는 점이다. 황근 선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통합기구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현실을 보면 방송위나 정통부 모두 이 상태가 편하다”면서 “이대로 고착되면 다음 정권에서는 국가적인 피해를 절감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당장 규제기구 통합이 어렵다면 신규 서비스를 우선 도입하는 대신, 통합규제기구 논의를 병행할 수 있는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한·김용석기자@전자신문, hseo·y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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