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을 여니 단단히 잠긴 문이 보이고 겨우 그 문을 여니 또 사립문이 남아있더라.”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가 ‘줄기세포 연구의 실용화 단계가 어느 수준에 와 있나’라는 질문을 받고 한 말이다. 은유적이지만 이 대답이 전하는 내용은 ‘실용화는 현 시점에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최근 바이오열풍의 가장 큰 문제점은 마치 모든 바이오업체의 연구성과가 곧바로 막대한 수익을 낳을 것이라는 성급한 기대감이 앞서는 데 있다.
◇갈길 먼 상용화=지난해 이후 황 교수의 연구성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지만 이를 지금 당장 상용화하기는 무리라는 지적이다. 줄기세포 배양 이후에도 △실용분화 세포 추출 △치료과정 표준화 △성과 메커니즘 확립 등 가야할 길이 멀다. 일부 전문가들은 빨라도 9년 후인 2014년에나 줄기세포 치료가 가능할 것으로 예측한다.
사정이 이런 데도 벤처캐피털이나 상장사들은 투자자금 조기 회수에만 열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최건섭 벤처지원팀장은 “아무리 견실한 바이오벤처라 해도 ‘머니게임’을 목적으로 뛰어든 투자세력에 휘둘린다면 연구개발 로드맵에 맞춰 착실히 상품화에 전념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투자 부실화 우려=바이오기업은 물론 이들에 투자한 IT기업의 실적도 좋지 않다. 투자기반을 갖추고 장기적인 신사업육성 차원에서 바이오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유행을 좇는 기업이 많기 때문.
코스닥 제약업종 26개사 중 절반은 상반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뒷걸음질쳤다. 또 하반기 들어 바이오기업에 투자한 IT기업 15개사 중 3분의 1은 상반기 적자를 기록했고 나머지 10개사 중 영업이익이 늘어난 곳은 네 곳에 불과하다.
바이오투자가 투기적 성향을 띠면서 불법·편법행위도 속출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바이오업체 S사가 줄기세포기술 개발 사실을 허위 유포하는 등 불법행위를 통해 시세를 조정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바이오 환기 효과=바이오열풍은 여러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정보기술(IT)과 문화콘텐츠기술(CT)에 가려있던 생명기술(BT)을 수면 위로 부상시키는 역할을 했다.
황 교수의 연구결과는 세계적인 과학저널이 거푸 표지논문으로 게재될 만큼 성과를 인정받았다. 덕분에 우리나라 바이오 기술 수준이 전세계에 알려지고 국내 바이오업체들도 해외에서 새롭게 조명받았다. 연구비 마련에 허덕이던 벤처들의 자금난도 일부나마 해소됐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이 자체가 지금 당장 바이오산업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이 한국이 바이오산업 강국으로 가느냐, 가지 못하느냐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 가장 중요한 시점이다.
이호준·조윤아기자@전자신문, newlevel·forange@
사진: 최근의 바이오열풍은 현재 연구개발중인 바이오기술이 지금 당장 막대한 수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착각’을 확산시키고 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줄기세포 치료의 경우 빨라야 2014년에나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가 지난 3일 ‘스너피’로 명명된 복제 개를 소개하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