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백의 武林紀行](19)흑도방파는 `조폭`에 가까워

흑도 방파의 대부분은 요즘의 조직폭력배 집단에 가깝다. 특정한 이권을 점거하고 주민에게서 세금을 받아 조직을 꾸려나가는 게 이들의 생존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무협에서는 방파의 우두머리를 방주, 혹은 회주라는 명칭보다 대당가(大堂哥)라는 명칭으로 자주 부르는데 이건 우리말로 하면 두목 내지는 큰형님이라는 뜻이다.흔히 무협에 등장하는 순의방(巡衣幇)이라는 게 있다. 유흥가를 순찰하면서 보호세를 뜯는 단체다. 딱 조폭 아닌가. 이런 흑도 방파의 이야기를 즐겨 써온 작가로 대만의 유잔양이 있다. 그의 대표작은 ‘혈립’, ‘천괴성’ 등이 있는데 앞의 작품은 우리나라에 ‘독고구검’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고, 뒤의 것은 원제 그대로 번역되어 있다.

그는 자신이 ‘흑도의 협을 그리고 있다’고 공언할 정도로 흑도의 이야기에 집착하고 있는데, ‘혈립’과 ‘천괴성’만 봐도 그게 잘 나타나 있다. ‘혈립’은 여기 등장하는 주인공의 별호이기도 하고 그의 독문무기이기도 하다. 모자챙에 칼날과 방울이 달려있어서 던지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아가서 적의 목을 벤다. 결국 혈립이란 피 묻은 모자를 가리킨다.

주인공은 살인을 밥먹듯하며 방파를 세우고 세력을 키워 흑도에서도 꽤 큰 방파의 대당가로 있다. 그런데 다른 방파와 다툼이 생겼다고 해서 나갔다가 돌아와서 쉬려고 하는데 독을 마셨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독을 탄 사람은 놀랍게도 피를 섞은 친누이다.

알고 보면 이 누이동생은 조직의 2인자에게 강간을 당한 후 꼬임에 넘어가서 친오빠를 암살하려 한 것이다. 결국 주인공은 형제처럼 지내던 2인자와 친누이에게 배반당한 것이다.

다행히 주인공은 죽지 않고 도망쳐 나간다. 그리고는 강호를 떠돌며 친구들을 만나 도움을 부탁한 다음 그렇게 모은 친구들과 함께 자신의 방파로 돌아가서 복수를 한다는 내용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피가 튀는 소설이다.

‘천괴성’ 역시 비슷한 스토리이긴 하지만 약간 다르다. 이번 주인공은 원래 사건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어야 할 사람이다. 그냥 강변의 정자에 앉아 술을 마시는데 누군가가 쫓겨 들어온다. 추격한 사람들은 다수고 이쪽은 한 명이라는 이유만으로 주인공은 쫓겨 온 사람을 도와 추격자들과 싸운다.

추격자들은 상대가 안 되자, 도주했다가 그날 밤 일당을 모아 주인공의 집을 습격한다. 그들은 흑도 방파 소속이었던 것이다. 주인공은 자신이 구해준 사람과 같이 탈출하지만 아내는 적들에게 납치되고 만다. 그 후 주인공은 강호를 돌아다니며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아내를 납치해간 흑도방파를 기습해서 초토화 시키고 아내를 구해낸다.역시 간단한 스토리지만 이 두 작품에는 자존심과 우정을 중요시하는 흑도인들의 가치관과 삶이 잘 드러나 있다. 조금이라도 당했으면 그 열 배로 보복해야 흑도인으로서 고개를 들고 살 수 있다.

목숨보다 자존심이 중요하다는 게 흑도인들의 가치관이다. 영화 ‘친구’의 마지막 장면에서 장동건을 죽인 이유에 대해 물어보자 유오성이 말하지 않는가. “깡패는 쪽팔리면 안된다 아이가.” 이게 흑도인의 방식이고 가치관이다.

흑도 방파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무림 단체도 있다. 바로 이들을 단속하고 잡아들여야 하는 경찰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포도청이라고 했지만 중국에서는 포도아문(捕盜衙門)이라고 했다. 포도대장에 해당되는 직위는 대포두(大捕頭), 혹은 포두다. 그 아래에는 형사에 해당되는 포쾌(捕快)가 있고 다시 그 아래에 포졸, 순경에 해당하는 정용이라는 직책이 있었다.

사실 이런 포도아문의 사람들은 무림인이라 부르기엔 좀 꺼림칙한 면이 있다. 하지만 홍콩의 온서안은 이들을 주인공으로 해서 ‘사대명포’ 시리즈를 썼다. 차인표가 출연한 바로 그 ‘사대명포’의 원작이다. 그리고 대만의 사마령은 ‘명포심신통전기’라는 작품을 썼다. ‘명포두 심신통의 이야기’라는 뜻의 제목이다.

포도아문이 오늘날의 경찰이라고 한다면 CIA나 국정원같은 오늘날의 정보기관이라 할 단체도 있었다. 동창(東廠)이 그것이다.

동창은 원래 명나라의 영락제가 조카를 내치고 정권을 찬탈하면서 정권유지를 위해 만든 정보기관이다. 그 자신이 모반을 일으켰기 때문에 또 다른 모반음모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첩보를 수집하고 수상한 자는 보고 없이 잡아가서 고문하고 죽일 수도 있었다고 하니 대단한 권력이다.

영화 ‘신용문객잔’에서 주인공들의 적대세력으로 나오는 이상한 집단이 바로 동창이다. 동창의 수장은 제독동창(提督東廠)이라고 불렀는데 주로 황제가 신임하는 환관, 즉 내시가 임명되었다. 영화에서도 가마를 타고 다니는 제독동창이 화장 뽀얗게 하고 손톱소제에 열심인 환관이잖은가.이 제독동창 밑에 첩형(貼刑)이라 부르는 관리가 2명, 그 아래 두(頭)라고 부르는 지휘관급 요원이 100명, 다시 그 아래에는 일선 첩보원이라 할 번역(番役)이 1000명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필요하면 언제든 오늘날의 수도방위사령부, 혹은 황제의 친위대라고 할 금의위(錦衣衛)에서 요원을 데려다가 부릴 수 있었다고 하니 군대급 조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무림 방파에 대한 이야기의 마지막으로 아주 유명하지만 매우 독특한 방파를 하나 소개하겠다. 바로 거지들의 단체인 개방이다. 달리 궁가방이라고도 하는데, 둘 다 ‘거지들의 방파’라는 뜻이다. 거지들이 무슨 방파를 만든다는 건지. 거지들 중에 무슨 고수가 있을까 의문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유명한 소화자도 바로 거지 아닌가.

무협에 등장하는 개방은 거지왕 김춘삼에서 보듯이 거지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조직한 자구조직이기도 하고 일종의 이념 집단이기도 하다. 그들은 도교 팔선 중에 거지였다고 하는 철괴리(鐵拐李)를 시조로 모시고, 강호에 정의를 구현한다는 목표를 가진 집단이다. 반드시 더러운 옷을 입어야 하고 재산을 모아서는 안 되며, 먹을 것이 생기면 나눠 먹어야 한다는 규칙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사실 거지 집단은 언제든 범죄집단이 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스스로 단속하기 위해 그렇게 엄격한 규칙을 제정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개방은 무협 속에서는 소림, 무당 등 구파와 더불어 정파의 한 축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이들을 함께 구파일방(九派一幇)이라고 부른다.

개방의 인물이 중요하게 등장하는 것은 김용의 ‘사조영웅전’이 대표적이다. 사대고수 중 하나인 북개 홍칠공이 바로 개방 방주였다. 주인공 곽정의 연인 황용이 그 뒤를 이어 방주가 되기도 하고.무협작가로 ‘대도오’, ‘생사박’, ‘혈기린외전’ 등의 작품이 있다. 무협게임 ‘구룡쟁패’의 시나리오를 쓰고 이를 제작하는 인디21의 콘텐츠 담당 이사로 재직 중이다.

[사진설명 : 사진 순서대로..]

◇ 사마령의 ‘명포심신통전기’ 1편 ‘검우정무’ 중국어 원판 표지.

◇ ‘신용문객잔’ 포스터. 포스터 하단의 말 탄 사람들이 동창 위사들.

◇ ‘사대명포’에 출연한 차인표.

◇ 유잔양의 ‘천괴성’ 번역판 표지.

◇ ‘신용문객잔’의 또 다른 포스터. 이번에는 포스터 상단이 동창 위사들. 하단에서 주인공 둘과 싸우고 있는 환관이 제독동창.

◇ 소화자가 성룡의 사부로 나오는 영화 ‘취권’ 포스터.

<좌백(佐栢) jwabk@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