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스포츠로서의 ‘스타계’에 큰 일이 벌어졌다. WGC 스타크래프트 부문 프로 선수 예선에서 여성 프로게이머인 서지수가 홍진호를 2대 0으로 물리치는 파란을 일으켰다. 그동안 단 한번도 남성의 벽을 넘지 못했던 프로게이머의 벽을 서지수가 깨버린 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남성 프로게이머를 이긴 선례는 있다. 김지혜가 겜티비의 이벤트전에서 나경보를 물리친 일이 있었고, 서지수는 MBC게임 마이너리그 예선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최진우를 이긴 바 있다. 그렇지만 현역 저그 가운데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홍진호가 공식 경기에서 여성 게이머에게 패한 것은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를 놓고 말들이 많다. 팬들 사이에서는 일대 폭풍이 몰아친 듯 술렁이고 있다. 홍진호 선수에 대한 조롱과 옹호가 부딪치고 있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홍진호의 컨디션이 최악이었다는 분석에서부터 홍진호가 십자가를 메고 일부러 져주었다는 추측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설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건 일부러 져주는 일은 명예를 먹고 사는 프로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최근 나오는 여러가지 추측이나 분석들은 모두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왜 다들 서지수가 아니라 홍진호의 관점에서만 보는 것일까? 바둑계에서도 유사한 일이 있었다. 세계 최강인 이창호 9단이 여류기사인 루이나이웨이 9단에게 패했을 때 사람들은 이창호 9단의 실력을 깎아 내리지도, 음모론을 제기하지도 않았다. 이창호 9단이 여성 기사에게 패한 것도 사건이고, 이창호 9단이 세계 대회에서 우승한 것도 사건이다. 승부란,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것이다. 단지 그뿐이다.
이번 서지수의 승리도 같은 맥락으로 바라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서지수가 엄청난 연습을 하는 각고의 노력 끝에 홍진호를 이겼다고 바라봐야 한다. 이는 잘하면 여성 프로게임계를 위해서는 큰 전환점이 되는 계기로 이어질 수도 있는 사건이다.
이러한 좋은 일에 왜 옆 사람 다리나 긁고 앉아 있는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또 얼마나 힘들었는지, 실력발휘는 얼마나 됐고, 어느정도의 행운이 따랐는지 등 서지수의 입장에서 이번 일을 바라보면 또 얼마나 많은 얘기를 할 수 있겠는가. 누가 뭐래도 승자는 서지수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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