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엘아이 김달수사장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은 세계 최강입니다. 디스플레이 산업 뒤에서 경쟁력을 받쳐주는 부품업체들도 1등이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경쟁이 심한 디스플레이용 반도체시장에서는 ‘기술적 우위’ 정도로는 안심할 수 없습니다. 최소한 한 분야에서 우리 회사이름이 특정 기술의 ‘대명사’로 불리는 날까지는 결코 한가하게 보낼 수 없습니다.”
농구 선수를 연상케 할 정도로 건장한 체격을 가진 김달수 티엘아이 사장(45)은 사무실이 울릴 정도의 큰 목소리로 국내 반도체 산업과 티엘아이의 미래에 대해 자신있게 말했다. 그의 자신감 있는 어투는 ‘시원시원하다’라는 소리를 듣는 성격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최근들에 좋은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는 것도 작용한다.
올 들어 자사의 주력 제품이 불티나게 나가면서 회사의 매출이 급성장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지난 5월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규모 디스플레이 행사인 ‘SID 2005’에서 발표한 TLDS(Ternary Lines Differential Signaling)가 세계 업계의 시선을 받았으며 최근에는 미국 칼라일그룹과 인텔캐피탈에서 700만달러(한화 70억원)의 투자를 유치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기술을 대외적으로 인식하는 단계였습니다. 새로 투자받은 자금으로 이제는 양산 능력, 품질 관리 능력 등을 끌어올릴 것입니다. 그래야 세계 1등인 우리 고객사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거든요.”
티엘아이가 이처럼 관련 업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사실 최근 일이다. 하지만, TLI는 지난 98년에 설립돼 시스템반도체 업계에서는 제법 오래된 회사에 속한다. 지난 98년에 설립돼 올해 만 7세가 된 티엘아이는 MP3P 반도체 등을 생산하기도 했고, 셋톱박스 등의 칩을 만들기도 하면서 어려움도 많이 겪었다.
“반도체 업체 구조조정 당시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독립을 했습니다. 당시 저는 LG전자의 메모리설계 실장이었습니다. 우선 회사를 차리고 실력 있는 엔지니어를 찾아다녔습니다. 얼굴도 이름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몇 번씩 찾아서 설득해 티엘아이에 합류했고, 그들과 함께 아이템을 찾아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보통 자신이 대기업에서 하던 품목을 들고나와서 회사를 차리는 것이 다반사지만, 김달수 사장은 일단 우수 인력끼리 만나서 머리를 맞대고 ‘대박’ 아이템을 고르기로 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선택한 것이 MP3P용 반도체다. 김 사장은 MP3P가 아날로그 오디오를 대체할 것으로 확신했고, 그에 사용될 프로세서를 만들기로 했다. 국내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일이었다고 김 사장은 전했다.
“당시 개발한 칩을 들고 삼성전자를 찾아갔습니다. 삼성전자 측과 협의해 이익을 나누기로 하고 제품을 공급했습니다. 모두 100만개 정도의 칩이 팔렸습니다. 일단 창업 후 첫 번째 아이템으로 자금은 순환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MP3P 칩이 티엘아이를 완전한 궤도에 올려놓지는 못했다. 너무 시장에 일찍 진입한 탓에 시장이 열리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고, 막상 시장이 열리자 이 분야는 이내 경쟁이 많은 ‘레드오션’으로 변해 수익성이 저하됐기 때문이다.
김사장은 회사는 바삐 돌아갔지만 손에 남는 것이 별로 없자 지난 2001년 티엘아이라는 그릇에 새로운 것을 담기로 결심했다. MP3P처럼 많은 고객을 상대하기보다는 대형 업체 한두 곳에 대량으로 제품을 공급할 분야를 찾았다. 기술인력이 영업까지 모든 것을 하기는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또한, 국내 업체가 세계를 주도하는 분야여야 하고 국내 업체간 경쟁이 적은 블루오션이어야 했다. 기술력만은 자신할 수 있었던 김 사장은 결국 디스플레이용 반도체에서 희망을 찾았다.
“변신을 시도하고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문전박대를 받기도 했지만 유명 디스플레이 패널업체들을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하니까 기회가 오더라고요. 전환한 지 10개월 만에 주문을 받았습니다. 대형TV용 주문형반도체(ASIC)였습니다. 일단 고객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던 중 현재의 티엘아이를 만든 17인치 모니터용 타이밍 컨트롤러(일명 T콘) 주문을 의뢰받는다. 2년여 개발 끝에 지난해 8월부터 양산에 들어갔고 이제 한 달에 100만개씩 공급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해 63억원의 매출을 올렸던 티엘아이는 ‘T콘’ 등 주력 제품 매출은 신장에 따라 올해는 이보다 4배 이상 많은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김 사장은 이 같은 도약 뒤에 창업 초기 멤버들의 아픔이 숨어있다고 털어놨다. 김 사장은 회사의 주사업을 디스플레이용 반도체로 전환하면서 MP3P 칩을 함께 개발했던 동료와 헤어지게 됐을 때 가장 가슴이 아팠으며, 이들이 티엘아이를 위해 해 놓은 많은 일들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제 비행기의 시동을 걸고 막 이륙하는 모습입니다. 안전궤도에 오르기 위해서, 안전벨트를 풀 때까지는 안심할 수 없습니다. 이륙한 상황에서 티엘아이호가 문제가 생기면 우리뿐 아니라 우리의 고객까지도 함께 다칩니다.”
티엘아이의 제품이 세계 평판디스플레이패널 업계에서 모두 쓰는 표준품이 될 때까지 안심할 상황이 아니며, 더 많은 힘을 쏟아야할 때라고 김사장은 강조했다. 그는 또 이는 TLI이 뿐 아니라 이제 고개를 들기 시작한 국내 시스템반도체 업계 모두의 일이라며 진정한 반도체 강국을 위해 업계가 뜻을 모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티엘아이는
티엘아이(대표 김달수 http://www.tli.co.kr)는 지난 98년에 설립된 반도체 설계 전문회사다. 창업 초기인 지난 99년 티엘아이는 국내 최초로 32비트 플로팅 포인트 디지털신호처리프로세서(DSP)를 개발하고 다양한 아날로그 기술을 확보하면서 사업적 기반을 구축했다. 이후 2002년부터 축적한 자본과 기술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TFTLCD 분야로 진출, 지난 2003년부터 LG필립스LCD에 타이밍 컨트롤러(일명 T콘)를 공급하며 급성장했다.
초기에는 대형 LCD TV용 패널의 응답속도를 크게 향상시킨 ODC T콘을 공급하는 것을 계기로 기술력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점차 주력모델인 17인치, 19인치 모니터에 적용했다. 당시 전적으로 TI·내셔널세미컨덕터 등 외국에 의존했던 타이밍 컨트롤러를 본격적으로 국산화한 것이다
티엘아이는 특히 T콘과 LCD드라이버 IC사이의 전송방식 개선을 위해 T콘에 미니LVDS 방식을 도입, 그동안 해외에 서 수입하던 제품을 대체했다. 최근에는 COG(Chip on Glass) 방식에 특별한 효과를 보이는 TLDS(Ternary Lines Differential Signals) 기술을 채택한 시리얼 인터페이스를 자체 개발해 양산을 앞두고 있다. 회사 측은 다양한 아날로그 반도체설계자산(IP)을 기반으로 고객의 취향에 맞는 ‘원 칩 T콘’도 개발하는 등 제품도 다양화하고 있다. 이 회사는 최근 지난달 칼라일과 인텔 등 해외 유수의 투자기업으로부터 기술력과 잠재성을 인정받아 700만달러에 이르는 외자를 유치하기도 했다.